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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리는개복치 Sep 07. 2017

그 돌담에서 우리가 대면했을 때,

[남이사 세계여행] 남는건 이야기 그리고 사진들 - 포르투갈 포르투

그 돌담에서 우리가 대면했을 때

비가 세차게 내린다. 낮선 도시에 선 이방인에게, 예보에 없던 비는 당혹스럽기 그지없다.

막연하게 따뜻한 남유럽의 기후를 상상하고 찾아간 그 곳의 3월은, 겉잡을 수 없는 비와 바람과 심지어 우박으로 나를 거칠게 밀어내었다.


허름한 베이커리 앞에 펼쳐진 차양 한켠에서 세찬비에 이어진 우박을 피해본다. 아름다운 도시의 색감도 향긋한 나타의 향도 차디찬 폭격에 황폐해진 마음을 다스려주지 못한다. 

오가는 발걸음 가운데 목적없이 내버려진 신세란.


몇 시간을 허송한 후 길을 나서는데 구름 사이 하늘이 파랗다. 겹겹이 서로 기댄 고택들은 본래의 색을 발하고 높게 솓은 시계탑은 구름을 가른다.

시간이 늦었기에 일정들은 내일을 기약하고 도시의 전망을 보러 성당에 오른다. 


포트와인의 생산지이자 역사 깊은 포르투는 항구도시이다. 그 사실을 깨닫게 해주는 건 독특한 가로등 모양도 바다 내음도 아닌, 갈매기이다. 도시 곳곳에 갈매기들이 있다. 그들은 도시를 세워온 이들의 동상위 높은 곳에서 지나는 우리를 바라본다. 그들 역시 이 도시를 세워왔다고 말하는 것 처럼.


세상의 모든 색이 있는 도시의 전경에 감탄할 새도 없이, 난간 한 켠에 갈매기가 날아와 앉는다. 나는 조심스레 카메라를 꺼내본다. 허나 조심할 것도 없다. 조나단 리빙스턴이 나는 것을 사랑했듯, 그는 ‘사진 찍히는 것’을 사랑하는 듯 했다. 포즈를 취하듯 이리저리 둘러보던 녀석과 잠시, 아니 꽤 오랜시간 눈을 마주본다.


그 돌담에서 우리가 대면했을 때
각자의 갈 길이 있다는 것을 직감했다.
그럼에도 서로를 제법 오랜 시간 마주 했었다.

너의 뜻이 어땠는진 몰라도
나에겐 꽤 따뜻한 눈길이었다.


리빙스턴 가문의 일족은 아닐까 우스운 상상을 하며 그를 배웅한다.


로마 시대부터 항구로 자리매김해온 포르투. 

달콤 쌉쌀한 포트와인, 에펠이 지었다는 야경이 눈부시던 루이 1세 다리, 부드러운 식감과 달콤하고 고소한 나타, 초봄의 선선하고 예측불허한 날씨, 무너져 가는 오래된 건물들을 지키려는 노력들.

그 모든 것과 함께 그 날의 눈맞춤이 생생하게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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