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달리는개복치 Sep 07. 2017

바다를 면한 요새엔 그가 있었다.

[남이사 세계여행] 남는건 이야기 그리고 사진들 - 핀란드, 헬싱키

바다를 면한 요새엔 그가 있었다

누군가 헬싱키에 간다고 하면 반드시 가보라고 하는 곳이 있다.

그 곳은 바로 수오멘린나 요새이다.

스웨덴이 핀란드를 통치하던 시절, 러시아로부터의 공격을 막기위해 헬싱키 주변의 큰 섬을 요새로 만들었다. 허나 후에 러시아가 핀란드를 통치하게 되면서 아이러니 하게도 이 요새를 100년간 러시아군의 주둔지로 사용하게 된다. 당시 헬싱키라는 도시는 작은 마을에 불과했고 오히려 이 섬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고 한다.

이 섬은 요새이자 하나의 터전이었던 곳이다.


후에 핀란드가 독립하고 이 요새를 되찾아오면서 이름을 바꿨는데 핀란드 말로 무장 해제라는 뜻의 '수오멘린나'가 그 것이다.

3월에 찾아간 헬싱키는 겨울 날씨로 살을 에는 듯한 바람이 불던 곳이었다. 그 와중에 바다 한가운데 있는 섬을 갔으니 그 바람의 매섭기는 말할 필요가 있을까.

이왕 이 곳까지 온 거 섬의 남쪽 끝에 가보고 싶었다. 그 곳에 가면 북해를 만날 수있을거란 기대를 품고.


그렇게 섬의 요모조모를 보며 한시간여를 걷고 있었다.

언덕 넘어 바닷바람이 불어오는 그 때 하늘에 무언가 펄럭이는 것이 보인다.

그 곳은 바다임에 틀림없는데 붉은 잔상이 늦겨울 드문드문한 벌판 위로 남는다.


그 곳엔 그가 있었다.


바람에 맞서 걷고 있었다.
차디찬 바람은 뺨을 에는 듯 했다.
언덕 너머로 붉은 날개가 보였다.
처음엔 잘못 본 것이라 여겼다.
가까이 가보니 그는 바람에 맞서 날아오르려 하고 있었다.
아니, 수 많은 시행착오를 견뎌내고 있었다는 말이 더 맞는 걸까.

바다를 면한 요새엔 그가 있었다.


언덕 너머론 요새의 방벽이 바다에 맞서 높게 세워져 있었다.

나 이외에도 몇몇 관광객들이 그를 주시하고 있었다.

맞바람을 이겨내고 그 곳에서 뛰어내릴 거라고 생각한 이는 없었겠지만 내심 모두가 도약의 순간을 갈망하며 숨을 죽이고 있었다. 그는 그 시선들에 아랑곳하지 않고 바다만 바라보았다.

강한 맞바람은 붉은 날개를 펼치기도 눌러앉히기도 하며 씨름하고 있었다.

그렇게 그는 20여분을 맞바람을 맞으며 있었고 비상을 꿈꾸던 이들도 이내 지쳐버린 듯 돌아서는 그 때 였다.


그는 바다를 향해 뛰었다.

순간 현실이 아닌 듯 멍해졌지만 분명 그는 뛰었고 맞바람을 타고 날아올랐다.

그렇게 북해의 바람을 타고 십여초를 하늘을 휘젓던 그는 돌고 돌아 다시 그 언덕에 착지했다.


바다를 면한 요새엔 그가 있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나는 단지 들여다 보고 싶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