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

이것들이 뭐 하는 거야....

by 남이사장

때는 늦가을이었고 찬 바람이 세차 지던 시기였다.

뉴욕 가을은 20살 초반의 우리의 맘을 살랑거리게 만들었고 잘 모르던 술도 천천히 맛을 알게 되었다

뉴욕 학교 앞에 작은 칵테일 바가 있었고 잘 생긴 바텐더 오빠는 친절하고 다정했다.

오후 수업을 마치고 나와 주영이는 "우리 한잔 할까"라는 고급 언어를 내뱉으며 우리가 마치 가을을 즐기는 사람인 것 마냥 어른이 것처럼 몇 번 가보지도 않았던 칵테일 바에 찾아가 바덴더 오빠? 맞은편에 앉았고

무엇을 어떻게 주문해야 하는지도 몰랐던 주영과 나는 메뉴판에 나온 술이름 들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우리는 기껏해야 "피나콜라다"와 "치치"만을 알았었고 그 칵테일 바에는 제법 어른스러운 목록의 칵테일이 메뉴판 일곱 장 정도를 꽉 채우고 있었다.

어리둥절한 우리는 이십 분 정도 후에 바텐더의 도움을 받아 "미도리 사우어"를 주문했고

어렸을 때 먹었던 감기시럽과 맛이 비슷하다면서 좋다 하면서 홀짝 들이켰다.

앤디인지 안토니 인지하는 바텐더는 손님이 한적한 때라서 그랬는지 우리 앞데 앉아서는 이 얘기 저 얘기를

주고받았었고 나와 주영이는 미도리 사우어를 지나 버번 콕을 거쳐 어느새 칵테일 목록을 따라가고 있었다.

얼마나 달큼한 맛이었는지 우리 둘은 마냥 킥킥거리면서 서로 이거 어떠니 저거 어때하면서 간간히 바텐더의 말에 수긍하면서 그날은 영어도 우리말 같았다.

아무 걱정 없이 내내 술잔을 기울이다 보니 시간은 어느새 10시를 넘어가고 있었고 그제야 우리는 걱정을 하기 시작했다.

어림 잡아 술값은 500$이 훌쩍 넘어 있었고 내일은 중간 퀴즈가 있었고 우리는 현실을 믿을 수 없게 둘이 긁어 모아도 돈은 없었고 방법도 없었다.

우리는 둘 다 '꽐라' 상태였다.

무엇보다도 뉴저지로 가는 버스의 시간이 지났고 우리는 맨해튼에 있었으며 돈이 없어서 우선 그 칵테일 바에서 나갈 수가 없었다.

둘은 술기가 없어졌고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해야 하는데 "우리를 도와줄 사람? " 답은 "없구나"였다.

계속 삐삐를 흝어 내리다가 단 한 사람이 떠올랐는데 바로 "백재승"이다.

주영이와 내가 간신히 술 깬 듯한 목소리로 오빠에게 전화를 걸었고 우리는 술기가 휘감긴 목소리로

도움을 요청했다.

어디냐고 묻고 우리가 수업이 4시에 끝났음을 일깨워 주고 화가 하나도 안 난 목소리로 "기다려"라 말을 하고는 끊었다.

"우리가 돈이 없으니 오빠 돈 가지고 오라"는 말에 기가 막히다는 듯이 "얼마나 마신 거니"기 막혀했다.

삼십 분 후에 백 재승이 도착을 했는데 집에서 입는 반바지에 티셔츠 그 위에 아르마니 밤색 코트를 입고 슬리퍼를 신고 술집에 들어왔다.

우리를 보자마자 눈을 부릅 뜨고는 "이것들이 겁도 없이 뭐 하는 짓거리야"라고 큰소리로 나무랐고 아무도 없었던 그 칵테일바 바텐더는 얼어 버렸다.

우리는 할 말 없으니 그저 쭈그리고 일어서서 술집을 나와서 오빠 자동차에 짐짝처럼 실렸고 욕은 하지 않는 선비의 입에서는 야단치는 말들이 계속 쏟아져 나왔다.

"아니 무슨 너희 주제에 인마, 칵테일을 몇 잔을 마신 거야 죄다 유치한 맛으로?"

칵테일 비로 640$을 내고는 어이없어하는 오빠의 잔소리는 제정신이었으면 켜켜이 가슴에 새기겠으나 우리는 취했다.

'너는 떠들어라 근데 오빠 어디로 가 거기 집 방향 아닌데'

차마 입 밖으로 쏟지 못하고 우리는 오빠의 아파트에 입성하였다.

찬물 두 잔을 손에 줘어 주고 오빠가 자신의 침실을 정리하고 티셔츠 두 개와 반바지를 꺼내주고는

" 나 지금 뉴저지 까지 못가 너희 둘, 옷 갈아입고 자 가만히 자. 낼 아침에 이야기하자."

라고 말하고는 오빠는 집을 나섰다.

가지 말라는 말은 우리에게는 사치였다.

그렇게 우리 둘을 오빠의 침대에서 잠을 푹 자고 다음 날 아침 두 손에 맥모닝을 든 재승이를 만났다.

산발한 우리 둘을 앞에서 오빠는 맥 모닝을 풀어서 정리를 하고 커피를 앞에 놓아주면서

"해장국 같은 걸 바라는 건 아니겠지?"

우리는 묵묵부답.

" 아침이라 맥 모닝 밖에 없어 라면보다는 나으니까 이거라도 먹고 수업 가라 이것들아"

고개 숙이고 해시브라운을 뜯는 나.

"오빠 술 값은 바로 못 줘"라고 하면서 미안한 맘이 덮친다.

" 내가 여자랑 같이 있었으면 너희 전화 따위는 받지도 않았어 왜 그러지 정신 차려라"

라고 대답해 주고 우리가 맥모닝을 먹는 동안 들여다보기만 한다.

휴...

그리고 오빠는 학교에서 동료들 그 누구에게도 우리 이야기를 하지 않았고

술 값 이야기도 하지 않았으며 우리 둘과는 한 달 정도 말을 하지 않았다.

나중에 내가 오빠에게 그날 우리 데리러 왔을 때

그 이상한 콘셉트의 복장을 물어보니 철저히 계산된 착장이라 소름이 돋았는데

" 여자 아이들 둘이 술을 마시고 취해 있는데 맘은 급한데 반바지 차림으로 가면 너무 없어 보일까 봐

우습게 볼까 봐 아르마니 코트 꽤 고급이어서 걸쳤는데 슬리퍼는 그냥이야

그리고 너희 그 바텐데 게이인것 몰랐냐 귀 한쪽만 뚫었던데 이 멍청한 으이그"

백 재승 답다. 나는 나답다.

게이라는 바텐더오빠의 나지막한 목소리 다정한 말투. 기억하리라.

늙었겠지만 다정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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