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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이사장 Apr 05. 2024

남이소소 8.

라구 끓인 날.

발걸음이 빨랐다.

라구를 끓여야 하는 날이고 라구는 시간이 오래 걸리고 준비할 과정도 많고

가게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바쁘게 움직였다.

일단 라구 재료 다 준비해서 냄비를 올린 후 다른 메뉴 준비를 하고

커피를 내려서 자리에 숨 좀 돌리자 싶어서 앉았다.

라구는 내가 진심으로 잘해보고 싶은 소스이다.

이 방법 저 방법 이렇게 저렇게 나답지 않게 연구도 많이 하고 궁리도 많이 하고 하지만 매번 새롭다.

오픈 준비 마치고 커피와 바나나를 곁들여서 속을 채우고 책을 읽을까 싶어 앉아서는 체감상 한참이 지난 듯해서 "오늘은 첫 손님이 늦으시네"하고 있는데 뭔가 너무 조용했다.

세상에 오픈 시간이 되려면 40분이 남아 있었다. "이 멍청한 사장아"

라구는 시작 시간부터 네 시간 정도 끓이는 게 중요하다.

오븐에 넣어서도 해보고 시간을 바꿔가면서도 끓여 봤는데 인덕션 3에 4시간이 내가 정한 제 시간이다.

한 시간 정도 지났으니 냄비 속 한번 확인하고 다시 자리에 앉았다

오픈시간 지나 이웃가게 오하레 사장님이 오셨다.

샌드위치 내어 드리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요사이 가게 정리 중이시라 이 쉬운 맘도 크고 새삼 부럽기도 하고 여러 가지 맘이 교차했다.

점심시간이 시작되기 전 한번 더 라구 체크.

아직은 변화 없고 아랫부분 혹시 탔을까 한번 저어 주고 점심 장사 시작 하고

점심시간 얼추 지나고 라구 막바지 확인을 하고

작은 기름 얼룩이 조용히 뽀글 거리는 상태가 마무리 단계이다,

라구는 끓기 시작하고 3시간 20분이 지나면 갑자기 냄새가 바뀐다.

너무 깊고 풍부한 향으로 토마토와 양파와 소고기가 어우러지는 향이 가게게 쑤욱 퍼지면 번번이 나는 황홀하게 취한다.

라구 불 끄고 점심 장사 마무리 하고 잠깐 외출을 감행하고 돌아오니 기운이 쑥 빠져서 이일 저일 짜증이 나기 시작했고 사전 투표 했다는 경원이 (허교수)한테 괜히 딴지를 거니 경원이 선물 투척.

우울기 동해 몸서리치는 나에게 단것과 산책을 권한다.

가게에서 가장 힘든 건 맹한 시간이 찾아온다는 거다.

일도 손에 안 잡히고 말할 사람도 없고 공중에 훅 떠있는 무거운 그림자가 된 상태.

그럴 때 인스타 보면 세상 다 행복해 보이고 남의 가게들은 죄다 좋아 보이고 내 음식은 후져 보이고 한없이 자아는 쪼그라들고 그 맹한 시간에 난 미영이 한테 괜한 심술을 전화로 전하기도 하고 주위사람들을 들들 볶는 듯하다.

잠깐 외출했을 때 나를 보았다는 손님의 카톡을 받고 한 번 웃고 너무 이쁘게 단장하신 손님께

집에 들어가시긴 아깝다고 하지만 내 손님은 몸이 아프시다고 해서 안타깝고.

이리저리 하루가 지났다.

마감 준비 하는 데 덜렁 온 카톡 하나

이틀 전 가게 앞에 애매하게 주차해놓으시고 한 시간을 뭉갠 차량 신문고에 신고했었는데

그 결과가 오늘 느지막이 카톡으로 와서 웃었다.

작년 계란 28에게 분쟁 조정위원이니 나 주차  문제 있으면 해결해 줄래 했더니

"우리 회사에다가?" "어 너한테"

"네가 직접 전화로 해서 해결하면 5분 내외 걸릴 일을 우리 회사에 넣으면 3년 정도 걸릴걸

 신원 조회 하고 실측하고 상대방 조회하고 상황 보고 들어가고 실측팀 뜨고게다가 사망자가 없는 일은 사건이 더 걸릴 거야 미뤄 지거 든 그리고는 수없이 뭘 보내라 쓰라 할 거야 내가 일을 보더라도"

"직원 세일 뭐 베네핏 있어?"

"생각도 못해봤다."

"그럼 그 회사를 왜 다니니?"


허우대 멀쩡해도 쓸만한 데는 없는 게 너무 많구나.

그나저나 이틀이 지났는데 결과가 불처리로 보내지 다니 오 놀랍다.

오늘의 나를 행복하게 한건 내 라구 밖에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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