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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이사장 Apr 25. 2024

남이 소소 12

난 너와 생각이 다르네.

가게 오픈하고 첫겨울.

크리스마스 준비하는 날인데 눈이 많이 내려 눈길을 걸어 가게를 가던 중

생각이 났다.

20년 훌쩍 지났는데 또렷하게 생각이 났다.

어찌 잊고 지냈었나 그렇게 아득하게 멀게.


21살 미국 랭귀지 스쿨  23살의 그를 만났다.

수업을 마치고 그와 룸 메이트 이리 셋이서 그의 차로 백화점 앞을 지나가면서

백화점에 세일 광고를 보다가 내가 말했다.

"오빠 쌕 사러 갈까?"

천천히 갓길에 차가 섰고 그는 당황한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왜? 오빠 가방 불편하지 않아요? 책 무거운데 쌕이 편하잖아"

" 아.... 그 이야기였구나 난 여기가 미국이국이구나 했어"

바로 이해 못 한 나는 룸메이트의 설명을 듣고 우리 셋은 웃었다.

"우리 섹스하러 갈까?"로 들렸단다.

그게 기억나는 만남의 시작이었다.


 그 후로 학교에서 그냥 친절한 오빠였고 밋밋했고 우리랑 잘 지내는 오빠였는데

뉴저지에 눈이 어마어마하게 온 겨울.

1층 주택에 살던 우리 집 문 앞에 눈이 쌓여서 집 안에서 문을 열 수가 없었다.

꼼짝없이 갇혀있는 우리에게 창밖에서 우리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그였다.

"너희 이거 받을 수 있겠어?"

"뭐예요?"

"라면"

인도에서 서서 우리 집 창문으로 라면 한 박스를 던져 줬다.

그때부터 인지 정확하지는 않으나 난 그가 좋았다.

안성탕면 한 박스에.

그 눈길을 라면 사들고 와준게 고마웠었다.

 그 이후로 년 정도를 좋아했었다.

뉴저지 랭귀지부터 맨해튼 대학교까지 난 그가 좋았다.

난 좋아하면 그냥 좋아하는 기운을 다 뿜어내는 형의 인간이었으며 열심히 쫓아다녔고

에피소드는 쌓였다.


시간은 무럭무럭 지나

이제와 생각해 보면 내가 좋아한다면서도 늘 거리는 있었다.

그가 집 구하는 동안 일주일 지낼 곳이 없어서 맨해튼 아파트에서 함께 일주일을 지냈는데

마냥 남매 같았고 난 그게 좋았다.

tv 보다가 과일 접시에 서로 손이 닿았는데 둘 다 정말 화들짝 놀라서 내가 "우리 좀 걷다가 들어올까"

하고 한 밤중 맨해튼을 걸어 다녔다.

그날 손이 닿았는데 그와는 더 멀어진 그런 느낌이 어려웠었던 것 같다.

쫓아다닌지 년만에  손이 닿았다.



어느덧 그는 졸업을 했고 한국에 돌아갔고 결혼 소식을 듣고

난 정확하게 뉴저지 반 지하방에서 여드레를 앓았고 내 투병 생활에 학교 언니 오빠들이 번갈아 찾아와

산책도 하고 장도 보고 드라이브도 시켜주었다.

여드레가 지나고 학교에서 유일하게 담배를 못 피우던 나는  담배를 물었고 열심히 피워댔다.



20년이 훌쩍 지났고 비 내리는 어느 날 어둑어둑한 가게에서 커피를 들고 밖을 내다보다가

' 잘 살고 있나 ' 궁금했고 '이혼 네 번 정도 했으면 '이란 생각이 들었었다.

착한 사람이고 모질지 못했던 사람이었으니 그럴 리 없겠지만.

게다가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는 부지런하지 않다.

한국 돌아와 명동에서 만났는데 그가 내게

"난 네가 정말 행복했으면 좋겠어 누구보다 더"

라 했는데  난 "무슨 개소리니 " 싶었다. 내 행복과 너는 관계가 없었으면 했다.



"넌 뭘 매일 그렇게 만드니?"

그는 때때로 신기한 듯 물었다.

나도 최근에 재건과 전화 통화 중에 깨달은 사실인데 난 좋아하는 표현을 뭔가를 만들어 주는 것으로 한단다.

재건이 자신은 뜯기기만 했지 뭔가를 나에게 받은 적이 없다고,

난 패션학과 마르꼬 오빠에게 구박을 철철 히 받아가면서 테이블보와 커튼은 만들었고

김밥은 지구를 두를 만큼 쌌었고 밸런타인데이에 초콜릿을 포장하고 병에 넣었으며 손편지도 많이도 썼었다.

그의 과제 때문에 내가 쳐다보지도 관심 일도 없었던 분재책을 보고 밤새 페이퍼를 썼다.

하루하루가 바빴다. 내 일 내 공부도 해야하니까.

그 오랜 시간 동안 일주일에 한 번 이상을 만나지 않았다.

왜냐하면 너무 설레고 좋아서 힘들었다. 나도 살기는 살아야 하니.

그렇게 뭔가를 계속 만들어 주었었다.


생각보다 잊는 건 쉬웠던 것 같다.

몸속에 있는 모든 수분을 날리듯이 울어댔지만.

재건이는 불은 만두 같다 했었지.

그 후로는 좋아하는 감정을 잊어버린 듯 살고 있다.

그냥 그냥 이렇든 저렇든.

슬프지도 행복하지도 않게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것은 두려운 일이 되어서 한껏 뒤에 서서 있는 게 편안할 만큼.




나의 그가 비참하거나 비루하거나 불행한 삶을 사는 것은 원치 않으나

너무 헤헤덕 거리면서 살 만큼 행복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여유 있고 건강하게 살긴 하지만 간간히 쌉싸르한 삶을 살았으면 한다.

진심이다.

너와 나는 생각이 다르네.

이건 미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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