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남이사장 May 01. 2024

짜장면.. 그리고 아빠

나는 사랑하고 기억하고 만날 거야.

아빠 돌아가시기 두어 달 전쯤,

아빠는 한라병원에 입원 중 이셨다.

오전에 아빠 병실에서 함께 있다가 잠깐 집에 다녀오겠다고 나왔고

집으로 오는 길에 아빠에게 짜장면을 해드리고 싶다고 생각을 했었다.

당뇨를 앓으셨고 신장 투석 중이시던 아빠에겐 최악의 음식이셨지만

우리 아빤 짜장면을 정말 좋아하셨다.

보기에도 밍밍한 병원식은 '나도 싫겠다' 싶어 아빠 식사 뜨뜸하게 하시는데 " 더 드세요"라는 말도 안 나왔고 ( 난 그 사람의 딸이다. 게다가 성격도 빼다 박았다) 속이 상했다.

'아빠 기다려 내가 간다' 란 맘으로 동네 마트에 들러  풀무원  레토르 짜장을 샀고 

집에 돌아와 면을 삶고 짜장면을 만들어서 오이채를 얹고 양파를 썰어서 같이 포장을 하고 

병원으로 뛰기 시작했다. ( 공기 차가웠으니 뛰기는 딱 좋은 날씨였다)

모든 중국집 배달하시는 분들과 같은 맘으로  

'불지 말아라 면들아'라는 문장을 되뇌면서 10분 정도의 길을 도시락통을 들고뛰었다.

병원에 들어가 아빠를 곁에 가서 "아빠 짜장면 해왔어" 고하니  아빠의 표정에 은밀한 설렘이 퍼졌다.

도시락을 열다가 갑자기 아빠가 내게 속삭이셨다.

"나가야 할 것 같다. 냄새가 너무 나는데"

해서 우리는 병원 복도 끝 창가에서 창문을 열고 구석에서 짜장면을 열었다.

아빠가 아직은 김이 솔솔 나오는 짜장면을 만났을 때의 표정이란...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아빠가 두어 젓가락 드시자 지나가시던 환자 분들이 슬쩍 보시고 근처에 오셔서 " 짜장면이네요"

물어보셨고 의아해하셨다.

여기서 잠깐, 

미국에서 대학교 수업시간 전에 한인타운에서 짜장면을 먹고 급하게 수업에 들어간 적이 있는데

짜장면 냄새가 냄새가 세상에. 내 피에 단무지랑 양파가 흐르듯이 내가 지나치는 복도와 강의실을 뒤덮었었다. 강의실이나 병원 복도나.

사방에 퍼지는 짜장면의 냄새는 난감스러웠지만 난 우리 아빠의 행복한 식사가 그 순간에는 중요했었다.

그 순간만큼은 그 누구도 어떤 상황도 우리 아빠의 시간을 방해하지 않았으면 했었다.

맘 졸였던 짜장면의 시간은 무사히 끝이 났고 난 아빠의 혈당이 오를까 혹시 퉁퉁 부으실까 그때서야 걱정이 몰려왔는데 우리 아빠는 태연히 " 커피 마시자" 하셔서 보온병에 내려온 커피를 아빠와 나누어 마셨다.

아빠 팔의 링거주삿바늘, 아빠의 병원복, 커피를 드시면서 창밖을 내다보던 표정 십 년이 훌쩍 넘었는데 생생하다.

저번 주 아빠의 기일이었고 가게 출근을 했으며 오픈 준비를 마치고 주섬주섬 짜장 만들 재료를 꺼내놓았다. 전 날 저녁에 아빠 생각에 찌릿찌릿해서 춘장을 한 봉지 사 왔었고 다른 재료는 다 있었다.

이미 돌아가셔서 그냥 맛있게 드시면 되니까 조미료도 넣고 설탕도 넣고 할 수 있었는데 난 아빠가 집에서 

기다리고 계시기라도 한 듯이 조미료 빼고 (실은 가게에는 조미료가 아예 없어서 선택사항이 아니었습니다.) 설탕대신 사탕수수 원당을 넣고 돼지고기 대신 소고기부챗살을 듬성듬성 썰어 넣고 짜장을 했다.

짜장을 만들고 아빠처럼 커피를 한 잔 천천히 드립으로 내려서 창가 테이블에 앉아서 가만히 가만히 아빠에게 다가갔다. '기다려 아빠 짜장 너무 맛있게 되었네 이젠 내가 짜장 할 줄 알아. 빨리 돌아가셨기에 다행이지 몸에 안 좋을 텐데 얼마나 해달라 하셨겠어 기다려 아빠.'

그렇게 그날 아빠의 제사상에는 갈비찜 옆에 짜장면이 올랐다.


그날 아빠는 붓지도 않으셨었고 혈당도 오르지 않으셨다.

그리고 내가 해드린 풀무원 짜장면이 아빠의 마지막 짜장면이었다.

돌아가시기 바로 전에 과외수업하다가 놀라 뛰어 온 내 손을 잡으시더니 앞뒤로 춤추듯이 흔들던 아빠.

사랑하고 사랑하고  다시 사랑하니 내 맘속에 늘 있어주세요.

나도 아빠 옆에 늘 있을게요.

우리 아빠가 내가 기억하는 한 가장 크게 웃으신 기억은

미술관에서 자원봉사 하는 엄마 모셔다 드리고 종종 뛰어오다가 얼음에 미끄러져서 도립미술관 분수에 빠졌는데 아빠 너무 크게 웃어서 난 삐졌으며 아빠는 나에게 미안하셨는지 그날 쌀국수 사주셨었다.

겨울에 비싼 부츠 신고 분수에 빠진 딸 보면서 웃으시다니.

아빤 좋았구나, 그럼 됐어, 나도 좋아.








작가의 이전글 남이 소소 1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