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9월.
내일은 MBA 오리엔테이션이다.
공식 일정을 시작하기 전,
잠시 버클리 MBA에 있는 한국 사람들과 만나기로 했다.
작년에 만났던 1년 선배가 나왔다.
내가 작년에 자퇴하지 않았다면,
동기가 되었을 사람이었다.
그녀는 이번에도 남편과 함께 왔다.
나는 이번엔 혼자였다.
남편이 잠시 화장실에 간 사이,
선배가 웃으며 말을 건넸다.
“다시 만나서 너무 반가워요.
올해 시작하신다니 축하드려요.
파트너분도 같이 오셨죠?”
잠깐의 공백.
“아… 헤어졌어요.”
말을 꺼내는 내 표정이
어땠을지 모르겠다.
아마도 어색한 웃음이었겠지.
잠시 후, 남편이 돌아와
같은 질문을 한다.
“파트너분은 오늘 안 오셨—”
말을 끝내기도 전에
선배가 남편의 다리를 꽈악 꼬집는다.
배려하려던 몸짓이었겠지만
너무 잘 보여서
나는 더 머쓱해졌다.
잠깐, 수치스러운 감정이 올라오려 했지만
곧 마음을 다잡았다.
괜찮다.
이건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내 볼에 뜨거운 열기가 느껴진다.
조금 어색한 식사가 끝나고 나서야
비로소 안심이 되어
‘하—’ 하고 숨을 내쉰다.
사실 나는 이민 생활 동안,
한국 사람을 만나는 게 늘 어색했다.
캐나다에서도, 미국에서도
한국 친구는 한 명도 없었다.
대개 처음 만나면
나이를 묻는다.
그리고 곧 호칭이 정해진다.
‘언니’, ‘누나’.
그 순간부터
보이지 않는 위계가 생기고,
나는 그 상하 관계가 부담스러웠다.
또 하나는 사생활이었다.
정이 많은 한국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개인적인 이야기를 묻는다.
특히 지금의 나는
아직 그런 이야기를
꺼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그리고 다음 날,
오리엔테이션이 시작됐다.
올해 우리 반은
290명이 조금 넘는다.
300명이 채 안 되는,
미국 탑 MBA 중에서는
아주 작은 규모의 프로그램이다.
나는 올해
버클리에만 지원했다.
오래전부터
마음속에 품어온
꿈의 학교였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이 작은 규모였다.
하지만 더 큰 이유는
버클리가 가진 상징성과 문화였다.
버클리는
1960년대 ‘자유 언론 운동(Free Speech Movement)’을 시작으로
저항과 도전의 전통을 가진 학교다.
똑똑한 학생들이 모여 있지만
사회 문제에 대한 관심이 깊고,
유난히 특권 의식이 드러나는 분위기는 없다.
매우 자유롭고 캐주얼한 문화다.
캠퍼스도 마찬가지다.
화려하지 않고,
수수하지만 알차다.
스탠포드 캠퍼스를 처음 봤을 때
완벽하고 거대한 아름다움에 감탄했지만,
동시에 숨이 막히는 느낌이 들었다.
마치
영화 속 상류층의 세계에
초대받은 기분이었다.
버클리는 달랐다.
조금 덜 세련되고,
조금 덜 정제되어 있지만
숨을 쉴 수 있는
아늑한 공간이었다.
MBA에서
가장 중요한 건
첫 해의 스터디 그룹이다.
총 5명.
1년 동안
모든 프로젝트를 함께 한다.
발표도, 토론도, 실패도 함께 한다.
가족처럼
붙어 지내게 되는 사람들.
곧
그 스터디 그룹을 만난다.
심장이 천천히
두근거리기 시작한다.
어떤 사람들을
만나게 될까.
나는
이제 정말로
혼자서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