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9월.
MBA는 유난히 극 E, 외향적인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었다.
말이 유수하고, 자신감이 넘치고, 경력이 화려한 사람들.
나 또한 원래는 극 E였지만,
지난 10년간의 이민 생활을 거치며
어느새 반반쯤이 된 것 같다.
그나마 버클리는
사람들이 조금 더 온화하고 친절하다고 알려진 학교였다.
그래서인지,
이상하게도 큰 불안은 없었다.
두두두….
드디어
앞으로 1년을 함께할 스터디 그룹을 만나는 날.
야외에 마련된 테이블로
이름이 하나씩 불렸다.
“Nami Kim.”
자리에 앉자마자
나는 자연스럽게 사람들을 훑어보았다.
흑인 남자 셋,
백인 여자 한 명,
그리고 나.
신기하게도
이 그룹에서 인터내셔널 학생은 나뿐이었다.
나를 제외한 모두가 미국인이었다.
왠지 모르게
그 사실이 안심이 됐다.
비슷한 문화의 사람들 속보다
오히려 이방인들 사이에서
나는 더 편안해진다.
첫 만남은 어색했다.
그중 한 사람,
처음부터 나를 향해 환하게 웃어준 사람이 있었다.
Kendall, 캔들.
통통한 체구에
곱슬거리는 갈색 머리,
사람을 단번에 안심시키는 푸근한 미소.
나중에 알게 됐지만
그녀는 나보다 열두 살이나 어렸다.
그럼에도 이후로 캔들은
늘 나를 챙기는 사람이었다.
건전한(?) 가십을 좋아하고,
홈파티를 즐겨 열고,
요리를 잘하고,
필요할 땐 엄마처럼 등을 내주는 사람.
나에게는
이 낯선 학교에서 처음 생긴
‘기댈 수 있는 사람’이었다.
다른 한 명, Mwita, 뮈타.
케냐 출신이지만
거의 평생을 미국에서 자란 엔지니어.
음악과 춤을 사랑한다고 했다.
영화에서만 봤던 뉴욕 슬램가에서 살다왔다 한다.
훗날
가장 많이 웃고,
가장 솔직해질 수 있었던 친구다.
온갖 영어 슬랭을 1:1 코칭해주고,
내가 한국 문화를 더 사랑하게 만들어준 사람.
또 한 명은
공군 출신의 키 큰 남자였다.
공군 시절 한국에서도 1년을 보냈다고 한다.
말수는 적었지만
늠름했고, 단단해 보였다.
그리고 Emanuel, 이매뉴얼.
농담을 좋아하고
분위기를 풀 줄 아는 사람.
내가 긴장할 때마다
아무렇지 않게 웃게 만들어주던 친구.
“나~미—”
항상 장난스럽게 내 이름을 불러주던 사람.
사실 그들 대부분은
나보다 열 살 가까이 어렸다.
나는 반에서 300명중
두 번째로 나이가 많았다.
경력만 놓고 보면
학교에서는
파트타임 임원 MBA를 권하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굳이 풀타임 MBA를 선택했다.
다시,
처음부터,
혼자서,
이 미국땅에서 살아내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 스터디 그룹은 이후 2년간,
내 MBA 생활의 ‘안전지대(Safe Place)’가 된다.
이민자로서의 열등감,
영어에 대한 두려움,
사회생활에 대한 긴장감.
그 모든 것을
이 사람들 앞에서는
조금씩 내려놓을 수 있었다.
그들은 나를
증명해야 할 사람으로 보지 않았다.
그냥,
좋아하는 친구이자
함께 성장해갈 동지로 대했다.
그 덕분에 나는
그동안 나를 옭아매던
지독한 공황과 불안을
하나씩, 조금씩 벗겨낼 수 있었다.
나의 스터디 그룹 친구들.
그들은 정말
나의 수호천사들이었다.
고맙고,
또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