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외] 글쓰기와 명상: 해보는 삶의 엔진

by Nami

문득 두려움이 고개를 들 때,

다시 돌아오는 방법은 두가지였다.

글쓰기와 명상.


그래서 생각해본다.


[글쓰기와 명상이 닮은 이유]


1. 나에게로 집중된다.

타인의 시선에서 물러나, 다시 나에게로 돌아온다.
흩어졌던 감각이 한 점으로 모인다.

숨아 차오를 때,

나는 고요히 눈을 감는다.


2. 나를 수용하고 사랑하게 된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게 된다.
부족한 상태로 나를 인식하지 않게 된다.
더 나아지고 싶어지는 이유는
내가 못나서가 아니라,
비로소 나를 인정하고 좋아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3. 바라보고 알아차리게 된다.

상황과 감정에 휩쓸리지 않고
제삼자의 자리에서 나와 상황을 바라본다.
그 과정에서 새로운 관점이 열리고,
익숙했던 장면에서 더 깊은 의미를 알게 된다.


4. 그리고 치유가 일어난다.

힘들었고 불쾌했던 기억도
다시 천천히 들여다보게 된다.
고치려 애쓰지 않지만,
그저 바라보는 동안 치유는 이미 시작되고 있다.


5. 무의식이 모습을 드러낸다.

일상의 표면을 지나
우리를 가장 강하게 움직여온 곳에 닿는다.
말로 다루지 못했던 것들,
그러나 삶을 좌우해왔던 강력한 힘.

그 무의식과 조심스럽게 마주한다.


6. 연결로 확장된다.

명상은 먼저 나를 치유하고
그를 넘어 더 큰 세계로 이어진다.
글 또한 나를 이해하는 과정을 지나
독자와의 공감 속에서
나를 넘어선 연결로 확장된다.


7. 창의성이 깨어난다.

애써 만들어내지 않아도,
내 안에 잠재돼 있던 창조력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온다.
의도하지 않았던 말과 이미지가
제자리를 찾아 앉는다.


8. 감정이 종결된다.

매듭짓지 못해
그림자처럼 남아 있던 감정들이
천천히 풀리고, 흘러가고, 놓인다.
평생 사라지지 않을 것 같던 덩어리는
가슴 한켠에 고이 접혀 정리된다.




그리고 결국,

나는 뛰어들게 된다.


글을 쓰고,
명상을 하고 나면

나는 꼭 무언가를 하게 된다.


무언가를 정리하기 위해서도 아니고,
무언가를 바꾸기 위해서도 아니다.


그저
뛰어들 준비가 되어 있기 때문이다.


나를 수용하고,
감정을 종결하고,
안쪽에 쌓여 있던 것들을 흘려보내고 나면
나는 더 이상
붙잡을 것이 없다.


그래서
새로운 것 앞에
활짝 열린 상태가 된다.


두려움보다

호기심이 앞서고,
계산보다
몸이 먼저 움직인다.


그때의 나는
잘해보려는 사람이 아니라,
순수하게
해보는 사람이 된다.


글쓰기와 명상은
나를 고요하게 만들기 위한 일이 아니었다.


그것들은
마침내

삶으로 가장 열정적으로 뛰어들기 위한
조용한 준비였다.

월, 화, 수, 목, 금, 토, 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