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문제인가'에서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로

거버넌스 시대, 비판적 사고를 넘어 '대안적 사고'가 시민의 핵심역량이다

by 남재준

Contents

1. 개설

2. 비판적 사고

3. 정치과정/정책과정과 사회적 차원의 정보 처리

4. 거버넌스의 시대, '정책 중심 정치'를 위한 '대안적 사고'의 중요성

5. 나가며 : 현명한 계약자가 되기 위하여, 대안적 사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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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설


이 작은 책은 한 시민의 국가에 대한 신념과 이상을 담은 글들을 체계적으로 모은 것이다.


신념과 이상이라는 것은 말하자면 사고로부터 비롯된다.


어떤 방식으로 사고하느냐에 따라 신념과 이상의 내용과 방향 등이 매우 달라진다.


결론부터 말하면, 나의 신념과 이상은 ‘대안적 사고’로부터 시작된다.


대안적 사고란 무엇인가?


이러한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다른 사고의 유형과 대안적 사고를 비교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사고의 유형 또는 종류에는 어떤 것이 있는가?


2. 비판적 사고


우리가 ‘사고’라는 이름이 붙은 것 중 가장 전형적으로 들어보았을 법한 것은 ‘비판적 사고(Critical Thinking)’이다.


최근에 학교교육부터 일부 인적성시험에 이르기까지 비판적 사고는 중요한 역량으로 다루어지고 있다.

그런데 정작 비판적 사고가 무엇인가 하고 물으면 간단히 답하기 쉽지 않다.


비판적 사고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정의가 있는데, 그 중 1987년에 마이클 스크리븐과 리처드 폴이 쓴 “비판적 사고의 탁월함을 위한 국가 협회에 의해 정의된 비판적 사고”가 비판적 사고 재단(The Foundation for Critical Thinking)의 홈페이지에 게시되어 있다.


그 정의는 다음과 같다.


“지적으로 훈련된 적극적이고 능숙하게 개념화, 적용, 분석, 종합하는 과정, 그리고/또는 관찰, 경험, 성찰, 추리 또는 의사소통으로부터 수집되었거나 생성된 정보를 평가하는 것으로서 믿음과 행동의 지표로 삼는 것”


워낙 길고 복잡한 정의라 읽어서 직관적으로 이해하는 것조차 쉽지 않다.

그렇다면 이를 좀 더 분석하고 단순화할 필요가 있겠다.


사고라는 것은 다르게 표현하면 정보 처리의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정보 처리라는 것은 다음의 순서로 이루어진다.


1. 정보의 수집과 인식

2. 정보의 검토와 분석

3. 결론의 도출과 행위

4. 행위의 성찰과 평가 (피드백)


일반적으로 사고 또는 정보 처리의 과정이 이와 같다면, 비판적 사고는 그러한 정보 처리의 과정 중 하나이다.


우선 비판적 사고는 정보의 수집과 처리에 있어 연역적, 귀납적으로 타당성과 신뢰성 등을 지니는 정보를 선별할 수 있는 역량을 요구한다.


현대사회에는 이미 정보의 홍수라는 말이 너무나 식상하게 느껴질 정도로 수많은 정보들이 존재하며 우리는 그중에 그 자체로 자명한 정보나 경험적으로 타당한 정보, 또 상호 모순되거나 거짓이 아닌 정보 등을 분별할 줄 알아야 한다.


그러고 나면 정보를 검토하고 분석해야 하는데, 통상적으로 어떠한 맥락에서의 검토와 분석인가에 따라서 검토와 분석의 방향이 다를 수 있다.


대학입시에 있어서 최근 경향을 분석해 입시 전략을 결정하는 것일 수도, 사회적 이슈에 대해 호기심을 가지고 자신의 입장을 정하는 것일 수도, 사내의 연간 프로젝트 기획을 수립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한 개별적인 검토와 분석의 맥락에 따라 그 방향이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논리적 오류를 범하지 않고 효율성이나 효과성 등 기준과 목표 등에 따라 타당하고 합리적으로 진행하여 결론을 도출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결론은 결론으로 끝나는 경우도 있지만 구체적 행위로 더 나아가는 경우도 있다.


그러고 나서는 결론과 행위 등을 성찰하고 평가하여 선택하는 과정을 통해 다시 시작될 정보 처리의 과정을 발전시키고 더 합리화, 성숙화할 수 있게 된다.


비판적 사고는 이렇듯 정보를 단순히 믿어버리지 않고 분별력 있게 타당하고 합리적으로 의심하고 검토하는 자세가 골자라 할 수 있다.


3. 정치과정/정책과정과 사회적 차원의 정보 처리


개인의 정보 처리 과정이 이와 같다면, 사회의 정보 처리 과정도 있다.

정치학자 데이비드 이스턴의 정치과정과 정책과정 모형을 보면 사회도 유사한 정보 처리 과정을 수행한다.

정치과정/정책과정은 다음과 같이 구성된다. (이론적 순서일 뿐이고 실제로는 여러 정책들이 교차적으로 서로 다른 단계에 있게 되는 순환적 과정)


A. 이익 표출

B. 여론 수렴과 이익 집약

C. 정책결정과 정책집행

D. 정책평가와 피드백


정치과정/정책과정은 사회적 정보 처리 과정의 한 유형이라 할 수 있다.


예컨대 연예인의 스캔들 등의 사건을 다루는 여론의 사회적 정보 처리 과정 등이 있을 수 있고, 회사의 연간 재무기획을 수립하는 사회적 정보 처리 과정이 있을 수 있다.


이 책은 공공 차원의 정보 처리 과정을 다룬다.


앞서 밝혔듯 정보 처리 과정은 개별적인 맥락에 있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이 경우, 정치과정/정책과정은 ‘정책’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정책은 정보와 행위의 특성을 동시에 가진다.


즉 그 자체로 실천이 되지만 또한 분석과 평가와 의사결정 변수의 내용 등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또한 정치과정/정책과정의 중요한 특성은 아마도 개인의 사고 과정과는 달리 각 단계의 수행 주체가 기본적으로는 다르다는 점이 있을 것이다.


통상 이익 표출은 시민이, 여론 수렴과 이익 집약은 시민단체 등 사회운동조직/이익집단/언론/정당 등이, 정책결정과 정책집행은 국회/정부가, 정책평가와 피드백은 모든 정치주체들이 하게 되지만 특히 시민들이 하게 된다.


민주국가의 정치과정/정책과정은 그러한 정책평가와 피드백이 활성화된다는 점이 매우 중요하다.


시민이 주권자이고 국가의 존재 이유가 시민의 복리에 있으므로 대의제에서 시민의 목소리를 반영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할 것이다.


국가 전체 차원에서는 이것이 바로 ‘소크라테스적 삶’ 내지 ‘검토된 삶’ 즉 비판적 사고를 수행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시민의 관점에서 다시 미시적으로 들어가 보면, 이익을 다양한 방식으로 표출하거나 정책평가와 피드백을 할 때 처음에 언급한 비판적 사고를 활용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게 된다.


희소한 자원의 권위적 배분이라는 정의로 정치를 정의하는 이스턴의 관점에서 이익 표출이라고 표현하기는 했지만, 사실 결국 이 단계는 ‘사회문제의식의 표출’이라 할 것이다.


예컨대 ‘송파 세 모녀 사건’처럼 사회적으로 충격을 안겨주는 사건은 빈곤과 복지국가와 사회복지의 사각지대 등 사회문제의 단면을 보여준다.


이에 시민들은 그 문제 자체의 해결을 요구하게 되고, 또한 경우에 따라서는 구체적인 해결방안까지 제시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익의 차원에서 보면 그러한 문제해결을 통한 복리 증진이 국민의 이익이 되므로 사회문제의식의 표출은 이익 표출이 된다.)


또 시민은 국가가 그 문제에 대한 대응으로서의 방침과 실천으로서의 정책을 결정과 집행하면 그 뒤에 그 효과 등에 대해 피드백을 제공한다.


이때 정보를 합리적으로 처리하고 분석하여 타당한 결론을 도출하는 비판적 사고 역량이 중요해지는 것이다.


4. 거버넌스의 시대, '정책 중심 정치'를 위한 '대안적 사고'의 중요성

그러나 사실 ‘전통적’ 정치과정/정책과정 모델을 보면, 시민은 이익을 표출하고 정책을 피드백하는 역할에 있어서는 본인들이 ‘결정’을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비판적 사고는 일상을 살아가는 시민의 관점에서는 ‘사회문제를 제대로 이해’하는 데에서 그칠 수도 있다.


실제로 시사에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돕는 많은 매체에서는 사회문제의 대강을 다루면서 그에 대한 정책은 곁들여 다룬다.


그런데 동시에 시민은 선거에서의 투표를 하여 간접적으로 국가의 정책 방향을 결정하게 되는데, 이에 공약과 매니페스토 즉 정책의 사전 예고가 중요해진다.


만약 시민이 문제에 대해서는 의식이 충분하더라도 대안에 대한 사고가 충분치 못하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그러면 정치인들은 시민의 문제의식이나 그로부터 비롯된 불만만을 과도하게 자극하면서 정작 공약과 정책 등은 부실하게 될 수 있고, 결과적으로 정치와 정책이 따로 놀게 된다.


또한 정책결정의 수준이 떨어지면 정책집행도 이와 따로 놀게 되며 결국 행정의 민주적 통제도 약화되면서 정치가 관료에 포획될 수 있는 것이다.


이미 행정국가화 현상이 강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이러한 현상은 결코 좋은 것이 못 된다.


다른 한편으로, 앞서 ‘전통적’ 정치과정/정책과정을 언급했는데, ‘현대적’ 정치과정/정책과정도 존재한다.


그것을 행정학이나 정책학에서는 ‘거버넌스(Governance)’ 내지 ‘뉴 거버넌스(New Governance)’라고 부른다.


본래 거버넌스라는 말은 우리나라의 학문적 맥락에서는, 우리나라와 같이 중앙집권적 봉건제나 군사/개발독재 등을 겪은 사회에서 국가와 국민은 서로 상하관계를 전제로 하여 국가가 국민을 ‘통치(Govern)’한다는 패러다임에서 이제는 정부도 국민 속의 주체로서 수평적으로 ‘협치(Governance)’한다는 패러다임으로 나아간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설명된다.


그런데 이 개념의 원산지인 서구의 경우 장기간에 걸쳐 이미 근대부터 대의민주주의가 자리 잡았으며, 특히 자유주의적 사고가 강해 국가도 개인이 구성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보는 영미권에서는 ‘국가’라는 개념을 정부와 국민을 포괄한다기보다 국민 속에 있는 정부라는 한 주체에 불과하다고 이해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governing이라는 말과 governance라는 말은 구분되지 않는다.


그러나 또한 어느 사회에서건 국가의 본질은 국민에 대한 권위적 강제력의 독점이었으므로, 예컨대 미국의 뉴딜 시대를 보면 서구에서도 거버넌스는 정부의 기획과 국민에 대한 ‘적용’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80년대에 민간의 경제적 독자성과 자율성을 강조하는 신자유주의와 이를 행정에서 경쟁과 기업 원리의 도입을 강조하는 신공공관리론(New Public Management, NPM)이 나타났다.

우리나라에서도 90년대에 민주화와 더불어 개발 시대의 종식과 국가의 ‘슬림화’를 위한 ‘정부개혁’이 강조되었다.


더 나아가 90년대 말에서 2000년대에는 빌 클린턴, 토니 블레어 등을 필두로 제3의 길(Third Way) 조류가 등장했는데 이것의 행정학적 함의는 바로 ‘뉴 거버넌스(New Governance)’로서, 제1의 길은 국가, 제2의 길은 시장이라면 제3의 길은 시민사회를 중심으로 국가와 협치하는 참여민주주의, 숙의민주주의로 나아가겠다는 것이었다.


우리나라에서도 마찬가지 맥락으로 삼김시대까지의 권위주의와 구조화된 국민의 정치적 무관심을 극복하고 국민이 시민으로서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것을 중시하는 참여민주주의를 노무현 대통령이 제시하면서 새로운 패러다임이 열렸다.


노무현 대통령은 또한 이전에 국민의 정부에서도 강조된 국민에게 열린 정부, 봉사하는 정부를 강조하며 다면적 인사평가제도 도입 등 정부개혁을 지속하기도 했다.


다시 정치과정/정책과정과 사고의 문제로 돌아와서, 이제 시민의 역할은 단지 이익을 표출하고 정책을 피드백하는 데에서 그치지 않고 적극적으로 정책결정에도 영향력을 행사하는 데에 이르게 되었다.


시민의 수준과 정치의 수준 사이의 관계가 더 깊어진 것이다.


그런데 정책결정에 있어 큰 틀에서 비판적 사고는 중요하나 앞서 언급했듯 ‘제한된 조건하에서의 최적 정책의 도출’이라는 맥락 또는 방향이 존재하고 이 때문에 시민들은 ‘문제 중심 사고’에서 ‘대안 중심 사고’로 넘어갈 필요가 있다.


사회가 고도화될수록 정치-사회-경제 등은 하나로 통합된 차원으로 나아간다.


정치의 내용이 스캔들이나 정당 간 대립이 아니라 사회문제나 경제문제 위주로 되고 또한 경제성장에 있어서의 교육제도나 복지국가를 통한 인적자본 형성의 토양 마련 등이 강조되는 등의 양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시민의 정치적 의식 수준이 최저부터 최고까지 각각 ‘정치적 무관심 – 호사가적 정치 소비 – 사회문제의식과 비판적 사고 – 비전 및 정책과 대안 중심 사고’로 나누어질 수 있다면, 우리나라는 지금 2단계와 3단계 사이 정도에 있다고 볼 수 있을 듯하다.


이제는 4단계 즉 비전 및 정책과 대안 중심 사고로 나아가야 한다.


규범적인 것이 아니라 실제로 정치의 실질은 시민이 결정한다.


공약이나 정책은 팽개쳐두고 정치인 개인의 비리나 인성 및 다른 정치인이나 정당 등과의 관계에만 집착하는 감정 중심의 정치는 결국 정치인이 공약과 정책 및 비전을 체계적으로 준비하고 변론하지 않게 한다.


그러면 당선 뒤에 결국 사전 준비의 부재가 드러나게 되고 설령 어느 정도 준비했다 해도 당초에 당선을 위해 국민에게 선전한 것만큼의 효과는 나타나지 않는다.


국민은 실망하고 이런 상황이 계속 반복되면 정치적 무관심이나 더 심하게는 정치혐오가 만성화될 수도 있다.


그러면 이익 표출과 정책 피드백이 더 없어지거나 질적으로 저하될 것이므로 전체적으로 정치과정/정책과정의 질적 하락은 물론이거니와 더 나아가서는 민주주의 자체의 구조적 위기로까지 심화될 수 있다.

이제는 시민이 ‘문제만이 아니라 대안적 방향도 생각한다’라는 자세로 거버넌스에 적극적으로 여러 방법(나는 심지어 내가 지금 이 글을 쓰는 것도 ‘나서는’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생각한다)을 통해 나서야 한다.


5. 나가며 : 현명한 계약자가 되기 위하여, 대안적 사고로


선거를 청약자인 대표자와 승낙자인 시민과의 계약이라 한다면, 실은 그 계약은 바로 공약이나 매니페스토가 되는데 이는 다수 당사자를 위해 마련된 약관과 비슷하다.


우리는 약관을 잘 읽거나 검토하지 않는데, 만약 그렇게 되면 약관의 내용은 부실해질 수 있거나 심지어 승낙자에게 불리하게 될 수 있고 이를 사법적으로 통제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결국 스스로 이를 검토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래야 약관을 마련하는 측에서도 좀 더 성의를 가지고 이에 임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제까지 나는 비판적 사고에 이은 ‘대안적 사고’의 중요성에 대해 말하였다.


즉 이제는 ‘이러한 문제가 있다’라는 점 못지않게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가 중요한 시민적 역량이 된 것이다.


그렇다면 이 시대를 관통하는 제일 중요한 궁극적 정책의 지향 가치는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

이에 관하여서는 다음 장에서 다루도록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