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존에서 공존으로 나아가기 위한 새로운 패러다임
Contents
1. 정의라는 '본질'에서 지속가능성이라는 '실존'으로
2. 지속가능한 사회의 의의
3. 지속가능한 사회를 위한 한국정치의 혁신 방향
4. 인본국가(Humanist state)와 일국보수주의(One-nation Conservat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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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정의라는 '본질'에서 지속가능성이라는 '실존'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은 어떤 연역적 전제로부터 비롯되는 것일 수도, 문제의식에서 비롯되는 해결책의 진단일 수도 있다.
이러한 질문을 전자는 ‘정의’, 후자는 ‘지속가능성’의 차원에서 접근하고 싶다.
무슨 말인가 하면, ‘이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야 하는가?’라는 질문은 결국 ‘이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야 옳은가?’라는 질문이고 이는 곧 ‘옳음’ 즉 ‘정의’의 문제로 귀결될 수 있다.
사회가 지향해야 할 본질적 상태에 관한 물음이다.
그러나 오늘날 인류사회의 실질적 문제는 본질의 문제보다 실존의 문제가 앞서 있다.
‘이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야 하는가?’ 보다는 ‘이 사회가 지속될 수 있는가?’, ‘이 사회가 지속되는 의미를 어디에 둘 것인가?’의 문제가 중요하다.
나는 그것을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에 둔다.
2. 지속가능한 사회의 의의
지속가능성의 개념은 반드시 생태계와 연관되어왔다.
인간의 물리적 조건으로서의 생태가 인간으로 인하여 위기에 처해 있으며, 이제는 생태와 문명의 공존을 인위적 차원에서 접근해야 할 지경에 이르렀고 이로부터 지속가능성 개념이 도출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속가능성은 다른 차원에서도 접근되는데, 그것이 사회적 그리고 경제적 차원이다.
그 두 지점을 강조하고 싶다.
앞서 ‘이 사회가 지속될 수 있는가?’, ‘이 사회가 지속되는 의미를 어디에 둘 것인가?’가 중요하다고 하였다.
우선 후자의 경우를 보면, 나는 철학적-역사적으로 사회의 존재 의미는 꽤 자명해졌다고 본다.
사회는 개인의 복리와 자아실현을 위해 존재한다.
그 최소한의 조건은 물질적 생존이며 그 최대한의 조건은 자아의 실현에서 나아가 성숙에 이르도록 하는 것이다.
지속가능한 사회는 주객이 전도되어 전체가 개인보다 우선하지 않고 또한 개인들이 너무나 이기적이어서 사회가 껍데기만 남아 붕괴되기 직전이지도 않아야 한다.
이것은 지속가능한 사회의 철학적 존재 의의이며 조건이다.
사회학에서 사회를 보는 관점이 크게 구조기능주의(Structural Functionalism)와 갈등이론(Conflict theories)으로 나뉜다고 하는데, 양자를 극단적으로 가정하고 볼 경우 둘 모두를 지양하는 것이 또한 지속가능한 사회이다.
아예 영구적 갈등과 투쟁으로 한 쪽이 이기거나 부분을 억압하여 전체만을 위하도록 하는 것은 지속 불가능하다.
또한 양자 모두 앞서 설명한 주객전도에 해당하며 사회의 존재 의의에도 위배된다.
전체가 각자의 이해가 어느 정도 비례적 균형을 맞추는 수준에서 개인도 이익을 어느 정도 지키면서 사회도 개인의 복리의 조건으로서 안정화되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러한 조건의 실질적 달성ㆍ합의에 정치과정ㆍ정책과정은 초점을 두어야 한다.
좀 더 구체적으로, 최근 인류사회의 정치적 차원에서의 지속불가능성의 문제는 무엇보다 다원화를 넘어선 파편화와 양극화에 있다.
지금 우리가 합의해야 하는 것은 각자의 일치되지 않는 정의관의 우열을 가리는 것이 아니라, 그렇듯 단순히 병존하는 상태를 넘어 공존으로 나아가는 초석이라도 만드는 것이다.
이러한 상태로 가서는 모두가 공멸한다는 실존적 위기의식을 느끼지 않으면 안 된다.
3. 지속가능한 사회를 위한 한국정치의 혁신 방향
결론이 나지 않는 정체성과 권력투쟁이 아닌, 결론의 도출을 목표로 정책과 숙의가 중심이 되는 정치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적어도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아직 중도적 민의를 믿어볼 만하다.
우리 국민은 생활의 문제, 삶의 질의 문제에 관심이 지대하며 또한 그러한 사회와 경제의 문제에 관하여 논의할 능력이 있다.
그러나 온라인 커뮤니티와 당원 중심 정당 등을 중심으로 하여 정치를 연예나 스포츠처럼 관람자나 응원자의 입장에서 접근하는 국민이 상당히 많은 상황이고, 정치인들은 점점 이를 동원하여 더 강하고 투쟁적인 정치적 수사를 사용한다.
정당은 국민의 이익과 의견을 집약하는 본질적 기능으로 돌아가 국민과의 타운 홀 미팅 등 공청회를 더 많이 가져야 하고, 또한 특히 대형 정당의 경우에는 국회의원 후보자 공천 등에 있어 비당원 지지층까지 포괄적으로 그 의견을 반영할 수 있도록 표의 비율을 정하거나 아예 완전국민경선제를 생각할 수도 있다.
국회와 정부 역시 주요 입법이나 정책 사안 등(대표적으로 개헌)에 있어 공론화와 거버넌스 등을 활성화하여 국민이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숙의하면서 민주주의의 질을 높이고 사회문제도 해결하는 일거양득을 도모할 필요가 있다.
예컨대 개헌은 정치인 주도 개헌이 아니라 국민 주도 개헌이 되어야 하며, 그 과정 자체가 민주주의를 개혁하고 거버넌스와 숙의민주주의로 나아가는 장이 되어야 한다.
오늘날의 정치는 파편화, 양극화를 넘어 국민의 숙의와 정치인의 논의 주도 리더십이 균형과 조화를 이루면서 지속가능한 사회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
4. 인본국가(Humanist state)와 일국보수주의(One-nation Conservatism)
지속가능한 사회라는 개념은 결국 지속가능성 그 자체에 목표가 있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인본주의(Humanist) 원리를 전제에 두고 인간존엄성 보장의 조건으로서 사회가 존재해야 한다는 규범적 전제에 종속되어있는 것이다.
따라서 구체적으로 작동하는 정부로서의 국가는 결국 개인의 삶의 질을 증진하고 동시에 이를 위한 조건이 되는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제고하기 위해 신중하게 정책 이니셔티브를 도모하는 인본국가(Humanist state)가 되어야 한다.
비록 다소 새로운 용어로 정의하고 있으나, 이는 또한 어제오늘의 개념은 아니다.
영국에서는 19세기 산업혁명의 결과로 계급 분화가 일어나면서, 노동-자본의 갈등이 첨예해졌다.
즉 국민국가(Nation)가 일국(One-nation)이 아닌 이국(Two-nation)으로 분열된 것이다.
수많은 이들의 피를 요구하면서도 결국 당초 목표했던 기존과 완전히 다른 사회라는 이상은 처음부터 달성이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순리에 역행하는 것이라 본 보수주의자들은 이러한 불안정성을 염려했다.
이에 벤저민 디즈레일리(Benjamin Disraeli, 1804-1881/영국 총리 1874-1880)는 이른바 ‘일국보수주의(One-nation Conservatism)’를 창안했다.
귀족층과 자본가 등 상류층은 ‘귀족은 의무를 갖는다(Noblesse oblige)’의 원리에 따라 누진세와 노동규제 준수 등 사회적 책임(Social Responsibility)을 다하고, 국가는 시장경제 원리를 준수하면서도 그 외에 보건과 복지 및 교육 등 공공서비스를 제공하고 사회적 취약계층의 민생을 돌보아 민심 이반을 방지하여 전체적인 사회의 안정성 제고와 유기적 발전을 도모한다.
이러한 모델을 통해 산업혁명이 낳은 사회경제적 병리를 치유하고 진정한 의미의 일국(One-nation)으로 나아간다는 구상이었다.
여기에는 전체 사회는 서로 유기적으로 연계되어 있어 과도한 불균형은 조화와 안정에 해악이 될 수밖에 없다는 전제가 있다.
일국보수주의는 아주 오랜 세월 동안, 정확히는 방법론적 개인주의, 시장과 경쟁 및 기업가정신, 최소국가 등을 지향한 대처주의(Thatcherism)의 부상 전까지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영국 보수당의 주류를 점했다.
그리고 대처의 퇴진 이후에 후임이 된 존 메이저(John Major, 1943-/영국 총리 1990-1997)는 대처주의의 유산을 이어 나가면서도 그것이 낳은 사회적 불안정성과 불만을 치유하기 위해 ‘계급 없는 사회(Classless society)’, ‘스스로 편안하게 느끼는 나라(A Country at ease with itself)’를 내세우며 일국보수주의적 감성을 되살렸다.
브렉시트 협상가로만 여겨지긴 했지만 테레사 메이(Theresa May, 1956-/영국 총리 2016-2019) 역시 ‘작열하는 부정의 해소(Tackling Burning Injustice)’, ‘모두를 위해 일하는 국가(A Country that works for everyone)’라는 국가 비전을 제시하며 브렉시트로 분열되고 상처 입은 국가를 치유하고자 했다.
보수주의라는 점을 떠나서, 나는 오늘날 이 일국(One-nation)이라는 개념이 매우 중요해졌다고 본다.
오늘날 우리는 정의라는 한가로운 본질의 문제가 아닌, 그야말로 전방위적인 실존적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
정치적 극단화와 양극화 및 리더십과 합의의 부재, 자동화와 종래의 경제체제의 근본적 변동, 사회문화적 파편화와 갈등 및 불확실성, 세계화를 둘러싼 계속되는 갈등과 신냉전 시대의 도래 등 참으로 수많은 문제들이 인류사회 전체를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동양과 서양, 젠더, 인종, 계층, 세대, 종교, 민족 등을 막론하고 지속불가능으로 몰아가고 있다.
이러한 사회를 맞아 우리는 새로운 사회적 패러다임이 필요하다.
나는 그것이 지속가능한 사회라고 본다.
그리고 그러한 사회의 실현을 위한 수단으로서 인본국가의 모델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지속가능한 사회와 인본국가의 구체적인 정책 이니셔티브들은 무엇인가?
이에 대해서는 다음 장에서 다루도록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