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결의 논리’와 ‘집단의 논리’에 맞서야 한다
‘한국인론’.
한국인은 어떤 사람들인가?
비록 국민성을 단정한다는 것이 참으로 어렵고 비합리적인 일일 수는 있겠으나, 어떠한 문화적 코드 또는 경향은 있을 수 있다.
여러 말들이 있겠으나, 한국인은 정(情)의 민족, 한(恨)의 민족이라 한다.
즉 우리나라 사람들은 감정이 풍부하다.
또 하나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집단과 단합 의식이 매우 강하다.
유교 문화권의 동아시아 국가 중 역사적으로 외침도 잦고, 식민에 분단으로 인한 전쟁 경험까지 있었으며, 인고의 정신으로 한강의 기적을 만들어 냈으니 놀랄 일은 아니다.
통상 보수주의 또는 보수성은 이러한 국민성을 사상적 DNA로서 짙게 가져가게 되는데, ‘국민통합’의 논리가 정치에서 이러한 한국인의 국민성을 반영하는 대표적인 정치 코드라 할 수 있겠다.
2025년 3월 3일,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를 앞두고 국민의힘 지도부가 박근혜 전 대통령을 방문했다.
그때 박근혜 전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어려울 땐 대의를 위해 마음을 하나로 모으는 게 중요하다. 돌이켜보건대 개인의 소신이야 항상 있을 수 있지만 집권당의 대표가 소신이 지나쳐서 사사건건 대립각을 세우는 건 바람직스럽지 않다. 집권여당의 의원들이 소신을 내세워서 개인행동을 너무 지나치게 하는 건 위기 극복에 도움 되지 않는다.”
단지 단결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소신이라는 미명 하에 전체의 단결을 저해하는 언행은 옳지 않다.’라고 말한 것이다.
얼마 전, 아버지와 대화할 때 이재명 대통령이 더불어민주당 대표였을 때 내가 그의 비민주성이나 비전 및 정책 이니셔티브의 내적 정합성 부재 등에 대해 지적한 글을 보여주니 아버지는 매우 감정적으로 대응하면서 그것이 ‘이낙연계, 국민의힘, 검찰, 언론 등’에 ‘갈라치기’에 가스라이팅을 당한 것이라고 몰아붙였다.
다른 글에서 언급했듯, 내 아버지는 매우 전형적인 강한 이재명 대통령 지지자이다.
지난 대선에서 직함뿐이긴 하나 무슨 위원회 부위원장을 맡았다고 내게 임명장 사진을 보내기까지 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과 내 아버지는 완전히 반대되는, 더 나아가 상극인, 즉 한 하늘을 이고 살 수 없는 양 진영에 있다.
그런데 두 진영을 지배하는 논리에는 공통점이 있다.
‘내부적으로 다른 목소리를 내는 것은 필히 멸해야 할 적 진영의 갈리치기 수작이며, 그것은 억제되어야 한다.’
우리나라가 많이 서구화되었다는 말이 있지만, 실은 우리나라를 지배하는 문화적 코드가 근본적으로 바뀌었나 하면 그것은 아니다.
아직도 보수주의 또는 보수성에 의해 지배되고 있으며, 이는 포퓰리즘과 결합해 더 강해졌다.
양 진영의 기성세대는 모두 동일한 ‘단결의 논리’와 ‘비판=적or적의 논리에 놀아남’의 도식을 강하게 내세우고 있다.
한편, ‘소신(所信)’이란 무엇인가?
소신이라는 말 자체는 ‘굳게 믿고 있는 바’라는 뜻인데, 흔히 ‘다수와 다른 목소리를 낸다’라는 맥락이 배후에 있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불이익을 감수한다’라는 점이다.
통상 소신 발언이 어려운 이유는 단순히 다수의견과 다르기 때문이 아니라, 그로 인해 다수로부터의 불이익이 올 수 있기 때문이다.
아와 적의 논리와 적대감이 지배하는 상황에서 우리나라에서는 감정적으로 소신 발언을 ‘자신의 이익을 위해 아군을 배신하는 것’으로 몰아붙인다.
박근혜 정부 때 유승민 당시 새누리당 원내대표, 윤석열 정부 때 김상욱 의원, 문재인 정부 때 금태섭 전 의원, 이재명 지도부 하에서 김종민·홍영표 등 비명계 의원들에게 그랬다.
그리고 ‘아군’이라고 표현한 바와 같이, 결국 정치나 사회를 보는 시각이 ‘전쟁’과 같아지는데 단순히 그것만이 문제가 아니라 거기에 ‘감정 중심’이 개입되어 더 심각해진다.
되려 전쟁 상황에서는 더 냉정해져야 하고 무엇이 피해 등 비용을 최소화하면서 최대의 승리를 가져올 수 있는지를 고민해야 한다.
그러나 극단적 전쟁 상황에서 감정까지 개입되면 결국 가장 필요한 사람들, 예컨대 세상을 단순하게 보지 않는 사람들이 당할 수 있는 것이다.
모든 것에 양면성이 있다.
소신 발언은 맥락에 따라 부적절할 수도, 적절할 수도 있다.
그 맥락을 잘 살펴 담론의 질을 잘 관리해야 민주주의가 다수의 폭주가 아닌, 진정한 의미의 국민주권과 국민복리로 나아갈 수가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를 지배하고 있는 이러한 ‘단결의 논리’, 양 진영을 지배하는 그러한 내용의 ‘보수주의’와 맞서 싸워야 한다.
나는 자유주의자로서 이러한 강력한 믿음이 있다.
또한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난다’는 등의 ‘전체의 논리’, 집단주의에도 맞서 싸워야 한다.
집단은 사람에게서 시작되는 것이고, 사회의 모든 조직적 논리나 규범은 사람들의 복리를 위한 사회적 환경의 안정화로서 유의미한 것이다.
대표적으로 우리 헌법이 국민의 기본권(권리)을 본위로 하는 규범이고, 국가는 이를 위한 권한과 의무만 존재하는 기제임을 보면 알 수 있다.
‘국민’ 행복 시대, ‘1억’ 총활약 사회와 같은 전체의 논리를 넘어 ‘한 사람 한 사람’을 소중히 하는 나라로, ‘사람 사는’ 세상으로 가는 것이 맞는 길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취임과 참여정부 출범이 상징한다고 여겨졌던 '코드의 반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 투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