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민주주의 그 자체만을 지지하진 않는다.
최근의 흐름을 보면, 현대 민주주의 안에 내포되었다고 생각해 온 소수 존중, 개성ㆍ다양성의 관용, 이성적 숙의의 중시, 법치주의 등 자유주의적 원리들이 분리되어 없어지고 있다.
비자유민주주의이다.
자유주의적 원리들이 실현되는 데 이전에는 한계가 있지만 점진적으로 나아가려고는 했다면 지금은 그마저도 퇴보하는 중이다.
군주주권에서 국민주권으로 넘어왔는데, 주권의 주체는 누구도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없다.
군주가 무오류성을 지니는 것처럼 국민도 그러한 것처럼 보인다.
더구나 군주는 하나이나 국민은 여럿이기에 그 책임도 분산되며 이에 중우정치의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고 그게 실현되었을 때를 가늠하고 지적하기 어려우며 지적하면 민주주의에 대한 도전으로 간주될 가능성이 있다.
기실, 양심적인 소수파와 극단적인 급진파는 민주주의 안에서의 정치사회적 취급이 다르지 않다.
이에 국민은 성찰과 반성 등을 통해 그 스스로 책임감을 가지고 숙의와 책임감이 있는 정치문화를 형성해 나가야 한다.
우리 국민은 수없는 경고에도 박근혜를 택하고 탄핵 후 10년도 되지 않아 윤석열을 택했다.
군주정에서 감히 헌정위기를 군주의 탓으로 돌릴 수 없듯 민주정에서 감히 헌정위기를 국민의 탓으로 돌릴 수 없으며 책임은 결국 정치인에게만 전가된다.
물론 대의제에서 정보의 비대칭, 실질적 권력의 귀속 주체 등의 차이는 있겠으나 결국 민심을 막을 수는 없다.
5공의 강대한 권력은 6공이 시작되고 결정권이 국민에게 돌아가자마자 그 다음 1988년 총선에서 민정당이 과반을 잃으며 무너졌고, 박근혜의 권력 역시 2016년 총선에서 무너졌다.
국민은 자신의 선택에 따라 역사를 바꿀 수 있다.
자신의 힘에 대한 정확한 인식과 그것의 현명하고 생산적인 사용이 중요하다.
그러나 다중은 하나의 인격이 아니기에 그것을 실현해내기 어렵다는 근본적 한계가 있다.
그렇기에 플라톤 등 고대 철학자들이 민주정을 회의적으로 본 듯 하다.
하지만 정치체 중 실질적으로 한 사람 한 사람이 평등하게 모두 주권자로서 영향력을 지닐 수 있는 것 또한 민주정 밖에 없기도 하다.
그러나 결과가 단순히 다수결에 그친다면 민주주의는 인간존엄성의 평등이라는 인본주의, 자유주의와 조화되지 못한다.
이러한 이유로 숙의와 소수ㆍ개성 등의 존중이 매우 중요한 것이다.
몽테스키외는 국민이 국정을 처리할 능력은 없으나 국정을 처리할 자를 고를 능력은 있다고 보았다.
이제는 더 나아가 그 두 능력 사이에 있는, 국정에 목소리를 내고 숙의하는 능력이 중요해졌다.
근대까지는 소수의 대의자의 국정 처리 - 전체 국민의 대의 결정 이라는 상호 균형이었는데 이제는 이 분리와 균형이 소수 대의자의 거버넌스 - 전체 국민의 숙의와 참여라는 좀 더 진화된 민주주의로 나아갈 필요가 있고, 국민주권의 보다 고도화된 형태가 요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