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tents
1. 들어가며
2. 우리나라에서의 ‘보수’라는 단어
3. 한국 보수 : 상반되는 패러다임의 병존과 교차
4. 보수의 개념적 정의와 한국 보수
5.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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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며
이분법은 어떤 상이하고 대립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들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정말 그러한가?
우리는 살면서 너무 많은 것들을 당연한 전제로 깔고 살아간다.
그러나 실제로 조금 더 곰곰이 생각해보면 이상한 점들이 있다.
이 글에서는 정치 영역에서의 대표적인 그러한 개념인 보수와 진보에 대하여 말하려고 한다.
지금부터 말할 내용 중에는 이미 이전에 언급한 것들도 있을 것이다.
2. 우리나라에서의 ‘보수’라는 단어
우리나라에서는 생각보다 그렇게 ‘보수’라는 말이 많이 쓰이지 않은 것 같다.
물론 사람들은 보수와 진보라는 말을 대별해 쓰기는 했지만 보수 세력이 스스로 ‘보수’라는 점을 강조한 역사가 그렇게 길지는 않아 보인다.
아주 긴 시간 동안 체제와 냉전의 맥락에서 ‘가부장적 반공주의 & 개발독재 = 자유민주주의 = 정상’이라는 암묵적 도식이 사용되어왔다.
그 반대는 ‘운동권 = 좌파 = 비정상’ 등이었다.
우리나라 역대 ‘보수’ 정당의 당명 중에는 정작 보수라는 말을 쓴 예가 새로운보수당 정도를 제외하면 없다. (그 당명 자체도 그래서 화제가 되었었다)
그런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그러한 당연한 주류적 패러다임이 점차 약화되고 가치가 상대화되었다.
그전까지는 가부장적인 지도자(사실상 독재자)가 이끄는 큰 당이 국민과 국가(그리고 민족)를 대표하고 운영하고 지도하는 것이 상식이었다.
보수정당의 당명에는 ‘민주’, ‘자유’, ‘공화’, ‘한국’, ‘미래’, ‘국민’, ‘한나라’, ‘새누리’ 등 대단히 포괄적이고 ‘큰’ 개념들이 사용되어왔다.
3. 한국 보수 : 상반되는 패러다임의 병존과 교차
시대는 계속 바뀌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제도적 민주주의가 달성되었고(민주화), 약 40년 만에 수평적 정권교체가 이루어졌으며, 심지어 보수정당이 야당일 때도 배후에 있었던 지배적인 정상성의 패러다임이 약화되더니 종국에는 탄핵을 2번이나 겪으면서 완전히 붕괴되었다.
2020년대에 들어가면서 보수정당의 ‘권위’를 인정하는 정도는 예전보다 현저하게 약해졌다고 나는 본다.
그런데 보수정당 내적으로는 정작 어떤 일관된 사상이 있다기보다는, 전체의 공익이라는 이름으로 절대적 보스의 의지에 따라 움직였으므로 레토릭이나 심지어 정책도 달랐다.
예컨대 노태우 정부는 경제기획과 토지공개념 등 개발독재에서의 과도정부로서 아직 큰 정부 패러다임을 유지했지만, 문민정부 들어서는 세계화와 신한국 등 시장과 경쟁의 원리가 강조되기 시작했다.
이명박 정부도 실질은 그러했으나 또 레토릭으로는 일부 비신자유주의적인 면도 있었다.
예컨대 4대강 사업 같은 토건 사업은 신자유주의적이지 않다.
박근혜 정부는 대선까지는 경제민주화 등 좀 더 과거 개발독재 시기의 큰 정부를 재도입하려는 것처럼 보였지만 집권기에는 초이노믹스, 창조경제 등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나아갔다.
물론 패러다임의 큰 변화는 있다.
예컨대 개발독재에서 신자유주의로의 변화가 그렇다.
그리고 사실 우리나라에서의 보수-진보의 이분법은 본래 대북관에서 비롯되는 것이 제일 크다고 했다.
말하자면, 대북 강경파인 보수와 대북 온건파인 진보의 차이.
그런데 나는 이것도 꼭 맞는 건 아니라고 본다.
통일 방안 제시나 대화 제의는 박정희 정부, 전두환 정부, 노태우 정부, 문민정부, 박근혜 정부에서 모두 했다.
그것이 실현된 것이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 문재인 정부였을 따름이다.
내셔널리즘적인 감성은 민주-보수 양 진영에 상당히 있었기 때문에 ‘민족통합’의 기치는 세대가 올라갈수록 더 설득력을 얻는다.
그렇다면 사회정책이나 문화 방면은 어떨까?
그나마 이쪽이 제일 일관되기는 하다.
가부장제나 위계적 사회질서, 애국심 등을 강조하는 정서는 우리 보수 세력을 관통해 왔으니까.
하지만 세대가 내려가면서 점점 그런 경향도 옅어진다.
최근의 2030 남성 등의 ‘청년보수’들은 사회문화적으로 극렬한 집단 중심인가 하면 또 그렇지도 않고 오히려 개인 중심적이다.
그리고 사실 정치적으로 보수 세력은 전통적으로 계속 권력을 유지해 왔다기보다, 단절적으로 물리력 즉 군사 정변과 독재를 통해 강하게 사회를 통제하고 그 뒤로도 그것의 관성을 패러다임 삼아 지배해왔다.
박정희 정부 시절 이촌향도 현상에 대응하기 위해 실시한 새마을 운동은 농촌을 근대화 및 개조시킨 측면이 있다.
또 1969년부터 존재했던 ‘건전가정의례준칙’같은 것도 실은 전통이란 이름의 ‘고비용 저효율’의 ‘허레 허식’을 극복하자는 취지가 아니었던가?
이런 부분들을 보면, 실은 오히려 ‘진보주의’ 사상에 기반했다고 볼 수도 있다.
진보주의의 사전적, 이론적 정의는 인위적 국가 개입, 과학기술 발전 등을 통해 사회가 진보한다고 믿는 사상을 의미하는데 근대화론도 이러한 사조의 일부였다.
결국 산업화 세대를 놓고 보더라도 우리 보수 세력이 ‘전통에 기반했다’라는 말은 애매할 수 있다.
우리나라 보수 진영에 영향을 많이 끼치는 종교가 개신교라는 점을 생각해보아도 그렇다.
마지막으로 짧게 한 측면을 더 보자면, 외교는 어떠한가?
이야말로 ‘한미동맹’을 강조하는 보수 진영을 생각하면 명확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중국과 수교한 정부는 노태우 정부였고 이후에 보수 정권 때에도 우리나라는 사드 사태 이전까지는 중국과 가까운 관계를 유지했다.
논의를 좀 종합해보면, 우리나라 보수 진영은 이념적, 정책적으로는 일관된 점이 별로 없다.
사회문화적으로 전통과 근대가 교차해왔고, 경제적으로 개입과 방임이 교차해왔으며, 대외적으로 이념외교와 균형외교가 교차해왔다.
우리나라 보수 세력이 다른 세력과 구분되는 유일한 지점은 아마도 ‘자유’에 대한 강조와 물리력을 통한 정권 장악과 권위주의적 관성에 기댄 정치일 것이다.
4. 보수의 개념적 정의와 한국 보수
이번에는 ‘보수’의 개념적 정의를 한 번 살펴보자.
1959년에 영국 보수당 의장이었던 퀸틴 호그는 말하기를, “보수주의는 철학이라기보다는 태도, 지속적인 힘, 자유로운 사회의 발전에서의 시간을 뛰어넘는 기능, 그리고 깊고 영구적인 인간 본성 그 자체의 요구에 대한 대응”이라고 말했다.
무슨 말인지 잘 이해가 되지 않는데, 다른 정의를 하나 더 보겠다.
1956년 철학자 마이클 오크숏이 쓴 「보수주의자가 됨에 관하여」를 보면, “보수주의자가 된다는 것은 미지보다는 익숙을, 시도하는 것보다는 시도된 것을, 신비보다는 사실을, 가능한 것보다는 실재하는 것을, 무제한보다는 제한을, 먼 것보다는 가까운 것을, 풍부한 것보다는 충분한 것을, 완벽보다는 평안을 선호한다는 것이고 유토피아적 행복에 대해 조소를 보이는 것이다.”
여전히 추상적이기는 하지만, 몇 가지 특징 정도는 짚을 수 있을 듯하다.
1. 보수주의는 이론과 기획이라기보다 태도와 자세에 가깝다.
2. 보수주의는 매우 정중동(靜中動)을 지킨다.
개인적으로 생각하기에 1번의 의미는, 보수주의는 세계적으로 보편적이고 견고한 이론이나 체계가 있는 게 아니라 공통적으로 관찰되는 경향과 비슷한 것이라는 것이다.
2번의 의미는, 어찌 되었건 보수주의는 ‘기존의 것’을 지켜간다는 점을 핵심으로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말하더라도 여전히 이해되지 않을 것인데, 그 이유는 이러한 설명을 듣더라도 ‘그래서 결국 구체적으로 보수는 뭘 지향한다는 거야?’라는 질문이 나올 것이기 때문이다.
내 생각에 그건 ‘정해져 있지 않다’라고 말하는 게 제일 타당하다.
왜냐하면 지극히 당연하게도 국가사회마다 형성되어 온 역사와 전통이 매우 다르기 때문이다.
20세기에 보수주의가 이론화되기 전에도 이미 보수는 존재했다.
영미권은 이미 수백 년간 자연스레 ‘기존의 것’이 된 기독교와 개인주의, 시장경제 등을 보수의 ‘내용’으로 삼았다.
반면에 일본은 스스로 근대화를 단행하면서 서구의 개인주의와 전통적인 동아시아의 공동체주의가 조화를 이루고 있다.
유럽 대륙에선 기독교적 공동체 윤리 질서가 곧 보수의 ‘내용’이다.
일례로 프랑스 우파 대통령이었던 자크 시라크는 마거릿 대처의 신자유주의를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인도나 중동에서는 힌두교와 이슬람교 전통 및 윤리 등이 곧 보수의 내용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전통은 정확히 무엇인가?
오랜 식민지 경험과 분단 및 전쟁, 거기에 단절적 근대화까지 겪은 우리나라다.
이러한 굴곡진 역사의 맥락을 보면 우리나라를 정의할 장기에 걸친 전통이나 국교가 자리 잡기는 어려웠을 것 같다.
‘보수’ 세력이 주도한 ‘산업화’는 ‘근대화’로서 결국 최소한 일정 부분 전통과의 단절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결국 실존하는 보수 세력의 ‘태도’로서의 내용은 수십 년간 고착화된 권위주의적 관성에 ‘자유민주주의’라는 이름을 붙여 놓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리고 최근의 ‘우파 청년’들은 이보다도 더 애매하다고 나는 본다.
왜냐하면 일단 기성세대의 그러한 권위주의와 산업화의 감성을 전혀 공유하지 못한 세대니까.
이준석 개혁신당 국회의원의 사상을 보면, 그나마 서구에서 최근에 등장한 연성극우(Soft Far-right)나 자유지상주의(Libertarianism) 비스무리한 주장들이 섞여 있는 느낌 정도이다.
그런데 중요한 건, 그들이 발화하는 사상이나 언어 즉 ‘공정한 경쟁’ 또는 그들을 평가할 때 쓸 수 있는 ‘극우’ 등의 표현이든 스스로 ‘보수’라고 부르기에는 산업화 세대보다 더 난망하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는 이어 나갈 만한 장기에 걸쳐 형성된 유기적 전통이나 태도 같은 것이 있다고 보기 힘든데, 그렇다고 신세대가 기성세대의 가부장제나 권위주의 등을 그대로 답습하는 것도 불가능할 것이다.
관념적으로 ‘자유시장경제’ 등을 강조한다고 해서 보수가 되는 것도 아니니, 결국 그들이 보수를 자처하는 것은 좀 이상하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5. 결론
이제까지 우리는 보수의 사전적 정의, 우리나라에서의 역사적 개념, 신세대 ‘보수’ 등의 흐름을 복합적으로 살펴보았다.
내 분석이나 평가에 독자들이 동의하실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어쨌든 이렇게 본다.
우리나라 보수는 정의하기 매우 힘들고, 그나마 기성세대까지로만 본다면 ‘산업화에 대한 향수와 권위주의적 관성’ 정도이고 신세대까지 합하면 ‘반(反)민주당’ 정도밖에는 남지 않는다.
어떻게 생각하시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