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에 집착할 필요 없다고 생각한다.
첫째로 결혼을 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생각이건 그 반대이건 둘 다 불필요하다.
둘째로 사회적 차원에서 재생산 때문에 결혼을 장려하는 것도 잘못이다.
좀 더 과감히 말해, 오히려 '정상적인' 혼인에 대한 여러 요소들(헤테로, 적령 등)에 대한 생각을 버리고 그냥 각자의 선택이라는 점만 두면 된다.
우리나라는 유독 연애에서부터도 정상성에 대한 집착이 아직 남은 편이다.
또 사회적 차원에서도 저출생 문제를 혼인-출산보다 더 거시적으로 보아야 한다.
저출생은 단지 '결혼을 안 하고 하더라도 아이를 낳지 않는 문제'로 정의되고 저출산이라는 '가임기 여성이 아이를 낳지 않는 문제'로 구체화되어서, 결혼에 대한 지원과 출산에 대한 지원으로만 귀결된다.
저출생을 구조개혁이 아닌 저출산과 결혼ㆍ출산 장려에만 초점을 두고 대응하려는 것 자체가 우리 국가사회의 수준이 근시안적일 뿐만 아니라 여성을 사회적 재생산 기제로 보아 소외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의심하게 만든다.
양적 문제가 아니라 질적 문제로 접근할 때에만 비로소 이 문제의 해결의 실마리가 보일 것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세상에는 다양한 유형의 가족이 있으며 출산이 일반적인 가정에서만 이루어지지 않음도 현실이다.
또 일반적인 결혼과 가정이라 하더라도 그것을 구성하는 사람들의 현실에부터 주목할 필요가 있다.
공자의 말을 가져다 비틀면, 산 사람도 모르는데 어찌 생전의 사람을 신경쓰겠는가?
결국 부모 특히 어머니가 복리를 누리지 못하면 자식 또한 매한가지이다.
여성의 생애주기별 구조적ㆍ문화적 환경과 영향 및 사회문제 등을 분석해 제도개혁과 캠페인 등을 진행해야 하는, 그리고 이를 위해 여성가족부가 필요한 이유이다.
다시 거시적 차원으로 조금 옮겨와, 그러한 남녀부부의 가정에서도 여전히 맞벌이 상태에서의 여성의 돌봄ㆍ가사노동 등 과중, 가정폭력, 여성 경력단절 및 유리천장, 동일노동 동일임금 등의 문제는 현존하며 이를 해결하는 것의 파급효과로서 저출생의 개선을 고려할 수 있을 것이다.
더 거시적으로 나아가면 입양, 이혼율 증가, 다양한 성적 정체성ㆍ지향성의 부상, 다문화 등의 요인들로 양자가족ㆍ 한부모가족ㆍ조손가족ㆍ다문화가족ㆍ성소수자가족 등 다양한 형태의 가족들은 이미 있어 왔다.
이러한 가족들과 특히 여기에 속한 아이들은 계속 사회적 시선을 걱정해왔으며 이것이 사적 영역에만 머물러 있는 한 이 문제는 계속될 것이다.
비혼출산으로 가족 구성 없이 자녀만 있게 되는 경우도 지난 정우성-문가비의 경우처럼 나타나게 되었는데 백 번 양보해 두 사람을 비난할만하더라도 그 비난의 결과로 이미 태어날 자녀에게 피해가 가는 건 잘못된 일이다.
나아가 이러한 경우에도 포용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학교 밖 청소년과 학교 안 학생 등을 모두 포괄해 교육 차원만이 아니라 청소년의 종합적인 권리ㆍ참여와 생활을 증진할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
우리나라가 아직도 청소년을 상당 부분 계도의 대상으로만 여기고 있고 우리 어른들이 과연 성장 중인 인격체로서의 청소년에 대해 자율성(방임이 아니다)을 보장받는 환경으로서 작용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별도로 여성 그 자체에 대한 폭력은 현존하며 이에 대한 사회문화적ㆍ정치적ㆍ행정-정책적ㆍ사법적 대응도 모두 전체적으로 매우 미진한 상태이다.
안전한 이별이라던가, 피해자인 여성과의 교제 상태 등이거나 등이었던 상태가 아닌 상해ㆍ살인까지 나타나고 있다.
이런 상황에 대한 대응 미진에는 경찰ㆍ검찰ㆍ법원 등의 책임도 크고 그들의 대책에도 한계가 있으며 여러 요인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여성 자체에 포커스를 둔 행정기능을 집중해서 맡을만한 부처는 달리 없다.
이러한 사회문제ㆍ정책의제는 모두 필연적으로 교육ㆍ노동ㆍ복지 등의 사회제도ㆍ사회구조와 연계된다.
그러나 동시에 관계와 문화 등에 초점을 맞추는 동시에 관계ㆍ문화와 제도ㆍ구조 양자를 종합적으로 연결하여 총체적 안목으로 이해하고 기획할 수도 있어야 하며 그것이 여성가족부의 존재 이유이다.
학문적으로는 사회학과 사회복지학이 분리되고 또 다시 여성학이나 퀴어연구 등이 복합학으로서 분리되는 이유이다.
지속가능한 사회라는 목적의 궁극적 실현을 위해서는 젠더 불평등 및 성소수자 차별, 정상성 이데올로기에의 구속 등의 문제를 직시해야 한다.
동시에 이것이 포용적이고 모두의 삶의 질 개선이라는 방향으로 해결될 수 있도록 유도되어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와 실천이 필요하다.
사회ㆍ문화는 경제와 달리 질적 성향이 강하므로 현재의 백래시처럼 언제든 퇴보할 수 있고 이에 신중하고 차분한 논의ㆍ관심과 꾸준하고 장기적인 노력이 요구된다.
이러한 연유로 선진국에서도 여성ㆍ청소년ㆍ가족 정책 기능을 폐지한 것이 아니며 선진국을 포함해 세상이 '여성운동과 여성정책이 필요없는 사회문화'가 되려면 멀었다.
그런 말이 대체로 핵심 당사자들이 아닌 사람들의 입에서 인위적으로 나온다는 것부터가 아직 이 세상에 그러한 담론과 실천이 필요하다는 방증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