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은 너무 큰 사회적 압력에 시달리고 그것에 익숙해진다.
그래서인지 상당히 '꼬인' 사람이 많다.
예컨대 '내가 이만큼 고생했으니 너도 그래야 해' 같은 식이다.
그런데 아무리 개인주의 문화가 기본이라 하더라도, 사회의 존재 자체가 결국 필연적으로 사회적 압력에 대한 순응을 요한다.
사람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더라도 사회에 맞게 행동하도록 압력을 받고, 삶은 어떤 사회건 시련과 고통이 있다.
인간이 만든 사회로 인해 인간이 고통을 받는 것은 고금을 통틀어 비극적이고도 오묘한 진실이었다.
하물며 한국사회는 더 압력이 커서 어떤 면에서 보면 사람들이 구속되어 있다.
학생들의 예를 생각해보자.
학교는 어른ㆍ교사라는 이중의 사회구조ㆍ사회제도로부터의 권력에 의해 미성년ㆍ학생이 영향 받도록 되어 있는 것이 디폴트값이다.
학생은 '일탈'을 하지만 교사는 '훈육'을 한다.
새로운 제도나 문화가 기존의 제도나 문화와 만나면 부정합을 일으키기 마련이고 그것을 조정하는데 시간ㆍ경험을 필요로 하게 된다.
학생의 자율성ㆍ인권을 존중한다는 취지로 학생인권조례를 도입한 것을 종래의 논리로 학생의 교사에 대한 과도한 일탈행동(폭력) 등의 문제의 원인으로 돌리는 흐름이 있다.
또 전반적으로 아이들의 자율성과 선택을 존중하는 교육철학이 오히려 아이들을 못 쓰게 만들고 공부 부담도 너무 적게 만드는 등 '고생을 너무 덜하게' 만든다는 지적도 있다.
하지만 교육이라는 제도ㆍ구조의 본질, 우리나라의 위계 문화는 본질적으로 변한 것이 없다.
또 앞서 언급했듯 어느 사회라도 시련과 고통은 불가피하다.
여전히 학생들은 입시 중심 경쟁 교육에 시달리고 있으며, 위계 문화 속에 어른의 훈육은 불문곡직하고 당연하게 맞는 것이 되어 있다.
우리나라 교육은 자유로워진 것이 아니라 과도기에 있다.
사회적 압력이 강하면 그것에 적응하고 순응하는 것이 고통이지만, 반대로 선택의 여지가 많고 기준을 스스로 정해야 하면 그것대로 혼란스럽고 고통스럽다.
나아가 그 선택들이 오히려 자신에게 고통을 주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성인이 되면 어느 사회건 종국에는 자신의 인생의 이니셔티브를 스스로 정하고 추진해 나가야 한다.
어른이 되어 고도의 통제로부터 갑자기 모든 자유가 주어지면 결국 헤매거나 꼬일 수 있다.
아이 때부터 그러한 선택의 '연습'을 하되, 성장 중인 만큼 과도한 일탈은 않도록 주위에서 잡아주는 것이 진정한 자율 존중의 교육이다.
선형적 성숙을 전제로 미완성된 존재로 아이들을 가두어 특정 방향으로 훈육하기 보다는, 각자의 삶의 궤적에서 여러 선택들과 그에 대한 대가들을 치르면서 학습해 나가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 기초학력에 대한 말이 많은데, 확실히 학습부담을 줄이면 서구처럼 더 심각하게는 어휘력이나 기초상식조차 부족한 시민들이 많아질 수 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경쟁의 밀도를 줄이면 적재적소로 각 분야의 인력이 배분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너무 경쟁이 심하면 되려 인재들이 너무 튕겨나가 충분히 빛을 발하지 못하고, 다른 분야에서 더 재능을 발휘할 수 있는 이도 불필요하게 낭비될 수 있다.
결국 기초ㆍ전인교육의 내실화와 선택 중심ㆍ경쟁 분산은 적정 수준에서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각자가 원하는대로 살게 하면 당연히 다양성이 증가하면서 사회의 관용이 시험대에 오르게 된다.
과거에는 우리나라에 히피와 같은 반문화(Counter-Culture)가 나타날 조금의 여지조차 없었고 사실 지금도 그렇지만 앞으로는 그렇게 될 수 있다.
지금도 사회갈등이 상당하지만 앞으로 그것을 병존에서 공존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조화시키는 것이 우리 사회문화의 집단학습의 과제가 될 것이다.
어떤 때는 여유 없고 감정적인 우리나라 사람들이 싫다.
다른 때는 나 역시도 여유가 없는 한국인이고 그러한 우리나라 사람들의 특성이 사회문화적 요인에서 온 것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마음이 좋지 않기도 하다.
그러나 또한 우리나라는 역동성을 지니고 있다.
결국에는 긍정적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 힘 또한 우리 사회문화에는 내재되어 있다.
변하지 않는 것처럼 보여도 어떤 때는 순식간에 변하기도 한다.
이러한 양상들을 잘 파악하여 우리의 사회문화가 순리에 따르는 양질의 것이 될 수 있도록 모두가 한 번 더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