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태조왕건>의 견훤의 후계 구도 정리 평가
드라마 태조왕건에서 견훤ㆍ최승우 모두 충분히 모질지 못하고 심하게 방심한 결과 군신이 모두 화를 당하였다.
견훤이 금강을 황태자로 세우고자 하면서 신검의 불만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되었다.
신검이 그간 전투 경력이 많고 조정ㆍ군부의 지지를 얻은데다 아비가 미필적 고의로 죽는 것을 방조하려 들 정도로 옥좌에 대해 집착하고 부왕을 원망해오지 않았나. (근본적으로 극중에서 적장자에게 불필요하게 엄하고 사랑을 주지 않은 견훤의 잘못이었지만 이미 엎어진 물이니 별 수 없었고 일이 그리 된 이상 신검을 죽여야 했다)
그런 상황에 금강을 황태자로 봉하면서 최승우의 말대로 갑자기 신검 형제를 참살하거나 견훤이 결국 뒤늦게 결정한 것처럼 셋을 멀리 보내는 것은 명분도 실리도 없었다.
죽이면 조정ㆍ군부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나 대안이 없으니 일단 따르겠지만, 견훤이 이미 칠십을 바라보는 즉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에서 금강이 보위에 올랐을 때 기반이 없어 위험하다.
셋을 멀리 보내는 건 황태자 책봉 문제의 결단이 임박한 상황에 너무 빤히 의도가 읽히고 더하여 지방의 군을 이끌고 또는 가기 전에 군부와 내응하여 반란을 일으킬 수 있었다.
사실 제일 신검 형제를 죽일 명분이 있던 때는 고창전투 패배 때였다.
그때야말로 진정 신검 형제건 조정ㆍ군부건 누구도 할 말이 없는 때였다.
견훤이 그때 격노했지만 실질적인 일은 그냥 거기서 흐지부지 끝내버렸는데, 이건 아들이라서 넘어갈 문제가 아니었다.
이치상으로 왕의 적장자가 군사작전에서 최소한 미필적 고의로 부왕을 죽게 하려 했음이 짙게 의심되는 사안으로서 객관적으로 군법ㆍ국법 모두 문제되었다.
더구나 양검ㆍ용검도 그 행위를 거들었고 신덕ㆍ애술 등 제장들도 방조했다.
결국 견훤이 진지하게 금강을 왕위에 올리고 싶었다면 그 사안을 가지고 대규모 숙청을 단행하는 것이 불가피했다.
신검 형제와 신덕 등 제장들을 모두 주살하고 조정의 능환ㆍ능애ㆍ영순 등도 그간 신검을 비호하고 왕에게 무엄하게 황태자의 일로 겁박한 책임을 물어 제거해야 했다.
그리고 조정을 금강을 도울만한 사위 박영규나 파진찬 최승우 등을 중심으로 재편해야 했다.
최승우도 걱정만 했을 뿐 이미 후계 문제가 후백제에 큰 장기적인 정치적 위기를 가져올 것을 짐작했으면서도 정작 명분이 갖추어진 고창전투 이후에도 가만히 있었다.
그러고는 신검의 정변이 임박했을 때에야 명분 없고 반란 가능성이 있는 계책을 냈으니, 군신이 모두 화를 자초한 일이었다.
게다가 후계 문제가 아니더라도 왕이 조정ㆍ군부 특히 능환을 대하는 태도에는 문제가 많았다.
능환은 조정의 영수였는데 왕의 의중과 달리 신검을 지지했으니 죽이던가 달래던가 해야했다.
당대는 예순도 이미 엄청난 노인이었는데 하물며 전쟁이 빈번한 시대였다.
견훤은 언제 죽어도 이상할 게 없는 노인이었는데 능환에게 매번 늙었다고 면박을 주면서도 정작 내치지 않았다.
능환이 견훤에게 악감정을 품는 건 자연스러운 이치였고 결국 견훤은 방심을 너무 심하게 한 결과 화를 자초한 것이었다.
금강은 왕재이긴 했으나 장점은 그것 하나 뿐이었고 막내인데다 서자이고 조정ㆍ군부의 지지를 받지 못한다는 등 나머지 조건은 전부 약점이었다.
그것을 메우기 위해서는 죽을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견훤으로서는 하루라도 빨리 정국을 정리해 금강에게 정치적 기반을 마련해 주어야 했다.
금강 본인이 박영규에게 토로한대로 신검이건 금강이건 빨리 결정하고 후계 구도를 정리했어야 하는 것이었다.
마초적이고 무인적인 기질을 뽐냈던 전쟁군주 견훤이 결국엔 자신의 손으로 자신이 창업한 왕조의 문을 닫는 비참한 말로를 맞았다.
극중 견훤 본인의 말과 달리, 전국시대라 하더라도 군주는 군재ㆍ무재만 가지고는 아니되고 정무적 감각이 있어야 했음을 입증하는 사례이다.
본인 사후에도 중앙집권에 시간이 걸리긴 했어도, 호족들이 이합집산하는 복잡한 상황 속에 전쟁에 능한 견훤까지 넘어서 통일이라는 대업을 이룬 고려 태조 왕건과 비교되는 대목이다.
이 점만큼은 구체적인 인과와 주체들이 제시된 극중이건 피상적인 역사적 사실만 있는 정사건 마찬가지라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