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나 리버럴을 자처하는 인사들이라면 단순히 정치적 올바름(PC)를 공격하는 데 쉽게 동참하는 것에서 끝나는 것은 아무 의미도 없다고 생각한다.
소수자 인권 증진이라는 핵심 대의를 지키면서 자연스러운 사회적 흐름ㆍ관습과 이를 어떻게 조화할 것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젠더와 인종을 둘러싼 정체성 정치에 나를 포함해 많은 '리버럴' 인사들은 관심이 없다.
적어도 지금 무슨 대단한 하나의 기득권처럼 여겨지고 있는 '진보/좌파/리버럴 기득권'이라는 것은 실체가 없다.
어느 선진국이건 제도권 진보 인사들은 권력이나 현실적 고려 때문에 정체성 정치를 부상시키고 싶어 하지 않고, 재야 인사들은 그들이 그러는 것을 변절이라고 생각하고 비판한다.
대개 그런 재야 인사들은 시민단체, 노동조합, 학계 등에 속할텐데 그들이 무슨 대단한 힘을 가졌다고 보기도 어렵다.
미국 언론이나 학계가 리버럴에 장악됐다고 하지만, 결국 그런 기득권이 실존한다 치더라도 샌더스나 트럼프의 부상으로 쉽게 눌릴 수 있었다.
최근의 심각한 문제는, 자유라는 형식을 빌려서 혐오라는 내용을 정당화하는 경향이 짙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PC의 많은 부분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는 것에 동의하고, 나 역시 그 흐름의 일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문제는 PC가 가져온 파급 효과를 공격하는 것이 전면적이 되면서 근본적 취지인 소수자 보호까지 공격을 당한다는 것이다.
극우 인사들은 PC에 대한 '불편함'을 적극적으로 이용하고 부추기고 있고, 진보적인 인사들도 기득권에 대한 저항처럼 생각한다.
특히 진보적 인사들이 PC에 대한 불편함에 가담하는 것은 문제가 더 심각하다.
적어도 진보적이라고 하려면 PC에 대한 비판을 인정하면서도, 결국 본래의 취지인 소수자 인권 보호를 살리면서 사회의 자연스러운 흐름을 어떻게 존중할 것인지를 고민하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한다.
그러지 않는다면 그냥 우익-극우적 흐름의 정치사회적 가스라이팅에 동조하는 것에 다름 아니게 된다.
스탠드업 코미디언들은 소수자 보호의 필요성을 반대하지 않지만 PC의 부자연스러움이나 과도한 제약에 대해서는 비판한다.
그들은 자신들의 코미디가 소수자 혐오의 취지가 아니라는 것을 언급한다.
굳이 말하자면 나도 비슷하게 생각한다.
누구든 자기가 말하고 싶은 것을 말할 수 있어야 하지만, 소수자 보호는 그와 별개다.
문제는 그 사이의 균형이 어렵다는 데 있고 우리는 그 균형이 어디인지를 계속 고민해야 한다.
안창호 국가인권위원장은 차별금지법 반대론을 말하면서도 그렇다면 법조인으로서 반대론자들의 인권과 소수자들의 인권을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도적으로 답을 하지 않는다.
한 보수 언론 사설에서는 차별금지법처럼 포괄적, 전면적으로 표현의 자유 등을 제한하는 입법이 아니라 개별적으로 소수자들을 보호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라고 주문했다.
그런데 정작 그게 무엇인지는 말하지 않는다.
예컨대, 나는 차별금지법 제정보다 동성혼 법제화에 찬성하는 입장이다.
이런 방안에 대해 그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의도적으로 피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극우 세력의 표적으로 지목된 대개의 리버럴 인사나 세력의 관심사에서 소수자 문제는 여러 관심 의제 중 하나일 뿐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소수자는 수적 열세이기 때문이 아니라 권력에서 열세이기 때문에 사회문제와 사회적 안배의 대상이 된다.
소수자가 소수자인 한, 그들이 정치와 사회의 핵심으로 부상하는 순간 구조적 혐오의 표적이 되기 쉽다.
그리고 그들을 옹호하고자 하는 이들 역시 함께 표적이 된다.
이런 점에서 소수자들이 정치ㆍ사회의 핵심으로 부상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소수자 인권의 증진을 위해 리버럴 정치인들은 소수자 의제가 과도한 관심을 받지 않게 하면서도 자연스럽게 진보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어려운 외줄 타기를 해 왔다.
그러나 그러한 흐름들이 불가피하게 사회의 전면에 등장하게 되자 사회의 구조적, 제도적 문제들에 대한 불만을 등에 업고 극우 세력들은 쉽게 그런 과정들을 정치적 자양분으로 삼았다.
최근의 동화주의, 인종주의, 국민주의 등의 부상은 길지도 않았던 일각의 진보적 흐름이 얼마나 쉽게 뒤집힐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2022년 대선에서 '진보기득권론'이 거짓말이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전 세계적으로 퍼지고 있는 좌파 기득권이니 하는 것이 거짓말이라는 점은 명징하다고 생각한다.
실질적으로 범좌파 세력이 집권한 기간이 길지 않을 뿐더러 집권 세력 자체도 범좌파 내부에서 최소의 기준에서 진정한 좌파라고 할 수 있는지의 논란이 많았다.
게다가 극우 세력은 너무나 쉽게 부상했고 아직도 공공연히 자신이 파시스트라고 말하고 다닐 수 있는 세상이다.
어떤 점에서 세계가 '좌파 기득권'의 세상인 것일까?
적어도 선진국의 리버럴이나, 진보나, 좌파는 우파와 달리 이처럼 공공연하고 광범위하게 자신들을 공격할 수 있게 내버려 둘 수밖에 없질 않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