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칙 있는 시민민주주의로 돌아가자
이재명 정부는 포퓰리즘 정권이다.
우리는 진보로 위장 - 아니 이젠 진보가 아니라 보수라 했던가? - 했지만 실은 우월감 말고는 남은 게 없는 정권 치하에 있다.
정치에서 이념에 매몰되는 것은 위험하지만 원칙이 없는 것은 용납되지 않는다.
멋지게 지는 것은 일단 패배의 당사자가 아닌 타인의 평일 뿐더러, 멋지다는 점이 아니라 '원칙을 지켰다'라는 점에서 유의미한 것이다.
이 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는 점에서부터 친명은 친노ㆍ친문을 이을 자격이 없다.
'깨어 있는 시민'이라는 말에서 '깨어 있음'은 어떤 완결된 상태를 의미하지 않는다.
다만 비판 의식을 가지면서도 다른 이들을 관용하고 그들과 토론하고 논의하며 계속 새로 배워 나가고 고뇌하고 하는 시민의 자세를 말하는 것이다.
요컨대 모든 시민들은 소크라테스가 되어야 한다.
자신의 언행을 검토해보고 개선하는 시민이 되어야 진정으로 깨어 있는 시민인 것이고, 그러한 시민이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인 것이다.
다수의 힘, 보수적폐론, 영웅적 정치인 이런 것들에 천착하는 수백만의 당원들보다 자기 스스로의 이니셔티브를 가지고 살아가는 한 시민이 더 유의미하다.
포용적이고, 리버럴하며, 담백한 시민들과 정치를 보고 싶다.
우리나라에선 이념이 진영과 분리되어 있기 때문에 특히나 역사적 맥락의 진영인 민주당계 정당이 이념 논쟁에 시달려 온 것이다.
이념은 체제의 이념일 수도(사회주의니 자본주의니 하는) 있지만, 하나의 가치관ㆍ세계관의 원칙일 수도 있다.
후자는 필요하다.
진정으로 벗어나야 하는 것은 진영이지 이념이 아닌 것이다.
실용이라는 말도 실은 어떤 관점에서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그리고 어떤 언행을 보이느냐에 따라 실용적일수도 아닐수도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그래도 과거에는 기본소득제 등 자신의 이니셔티브가 있었다.
지금은 정책적으로 성장과 분배를 함께 말하면서도 정작 논리적 연결은 약하다.
성장이 중요하다 말하면서도 분배도 포기한 게 아니라는 식으로 말한다.
정작 '성장이 곧 분배를 개선한다'라는 명제에 근본적 의문을 제기하게 된 고용 없는 성장에 이어 노동의 소멸로까지 이어질 수 있는 경제구조의 추세에 대해 답이 없다.
막대한 재정 전략의 문제에 관하여서도 답이 없고, 기본사회와 종래의 사회보장체계의 정합성과 앞으로의 방향성에 관하여서도 마찬가지이다.
상속세ㆍ증여세ㆍ금융투자소득세의 문제에서 보수 성향임을 어필하기 위해 편리하게 감세 기조를 드러냈지만, 정작 본인의 정책 이니셔티브는 국가 재정 주도 성장이다.
경제정책만이 아니라, 과거에는 소수자정책에 진보적이었는데 현재는 과거 '사회적 합의'를 말했던 문재인 정부보다도 더 뒤로 간 '먹고사니즘이 우선'이다.
가치의 문제를 물질의 문제보다 쉽게 뒤로 미루지 않는다 즉 먹고 사는 문제만으로 모든 문제를 재단하지 않는다는 것이 보수정당에 맞서 온 민주당계의 근본 전제 중 하나였다.
그런 전제가 없었다면 여성ㆍ환경ㆍ인권 등의 사회의 질적 문제는 주목조차 받지 못했을 것이다.
결국 이재명 대통령은 진보와 보수를 아우르는 것이 아니라 진보도 아니고 보수도 아닌 미지수이다.
중도나 실용은 나름대로 논리적ㆍ내적 정합성을 지닌 진보적ㆍ보수적 요소 간 결합을 본질적 특성으로 한다.
이 대통령의 이니셔티브는 그냥 서로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 개념들을 적당히 갖다 붙여 놓고 국민통합이나 실용이나 보수를 말하는 것이다.
결국 선거에서 이기고 보수 진영을 압도하기 위한 것 말고는 그야말로 존재 이유가 없어진 오늘날의 민주당이다.
이것이 포퓰리즘이 아니라면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