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노태우 대통령 (1988.2.25.~1993.2.24.)
*지극히 개인적인 관심 건들만 모은 것임.
(1) 사회
*1989년
- 1.5. 노태우 대통령이 상공회의소 주최 신년인사회에 참석해 합법적이고 정당한 노조 활동은 계속 보호하고 지원하겠으나 탈법적이고 파괴적인 집단 행동은 결코 허용하지 않겠다고 강조하다.
- 3.15. 노태우 대통령이 상공의 날 수상자들을 청와대로 초청해 다과를 나누면서 노사분규가 장기화될 경우 수출 경쟁력 악화를 초래할 것이므로 노사를 불문하고 불법 행동은 엄단할 것이라고 강조하다.
- 6.16. 노태우 대통령이 교육정책자문회의 의원들과의 청와대 오찬에서 교원노조는 용납 못 한다고 언급하다.
- 12.14. 노태우 대통령이 생산성배가대책회의를 주재하면서 불법 노사분규가 일어났을 때는 공권력을 즉시 투입하라고 지시하다.
*1990년
- 8.21. 노태우 대통령이 교육정책자문회의로부터 남북통일에 대비한 이데올로기적 금기 사항에 대한 국가 차원의 재해석 작업과 농어촌지역 영세 학교 통합 등을 내용으로 하는 교육 방안을 보고 받다.
- 11.29. 한국노총 위원장단 6인과 전국산별노련위원장 18인 등 24인을 청와대로 초청해 오찬을 가지며 노사안정문제에 대해 의견을 교환하다.
*1991년
- 1.8. 노태우 대통령이 연두기자회견에서 1994년부터 대학입시를 완전 자율화할 방침이라고 밝히다.
- 3.19. 노태우 대통령이 노사관계 사회적 합의 형성을 위한 협의회에서 1994년까지 노동자 주택 25만 채 공급, 개방대학 확대 등을 천명하다.
- 6.15. 노태우 대통령이 노동부로부터 직업병 인정 기준 완화와 직업병 유소견자에 대한 산업재해보상보험 혜택 부여 등 직업병 판정과 치료 절차 개선을 골자로 하는 직업병종합대책을 보고 받다.
- 10.9. 국무회의에서 국제노동기구(ILO) 가입을 위한 ILO 헌장 수락 동의안을 심의하다.
*1992년
- 1.22. 노태우 대통령이 부총리, 농림수산, 건설, 교통, 보건사회, 환경, 보훈 등 7개 부처 장관으로부터 국민복지증진과 생활환경대책 합동 보고를 받고 사회간접자본의 지속적 추진을 당부하다.
- 2.12. 노태우 대통령이 노사관계 사회적 합의 형성 회의를 주재하고 업종 간 임금 격차 축소에 주력하라고 지시하다.
- 12.15. 교육정책자문회의가 21세기를 대비해 교육영향평가제도 도입, 초등학교 36학급 이하(중고교 24학급 이하) 축소, 2002년부터 고교 의무교육 단계적 추진 등 교육개혁 방안을 건의하다.
(2) 정치
*1988년
- 4.26. 제13대 총선이 치러지다. 민주정의당 87석 / 평화민주당 54석 / 통일민주당 46석 / 신민주공화당 27석 / 기타 10석.
- 5.28. 노태우 대통령이 야3당 총재(김대중-김영삼-김종필)와 더불어 4자 회담을 가지다. 5공 비리, 구속자 석방, 광주민주화운동, 남북관계, 올림픽에 대한 초당적 대처 등 국정 전반에 걸쳐 의견을 교환하다.
- 7.6. 노태우 대통령이 야3당 총재와 윤길중 민주정의당 대표를 초청해 정부의 남북관계 및 통일정책을 설명하다.
- 8.22. 노태우 대통령이 김종필 신민주공화당 총재와 회담을 가지다.
- 8.29. 노태우 대통령이 김영삼 통일민주당 총재와 회담을 가지다.
- 8.31. 노태우 대통령이 김대중 평화민주당 총재와 회담을 가지다. 올림픽 이전의 노사분규는 바람직하지 않다는 데 의견이 일치하다.
*1989년
- 2.11. 노태우 대통령이 김영삼 통일민주당 총재와 회담을 가지다.
- 3.1. 노태우 대통령이 3.1절 기념사에서 민주 체제 전복 세력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고 천명하다.
- 3.7. 노태우 대통령이 김종필 신민주공화당 총재와 회담을 가지고 중간평가로 인한 극한 대립을 자제하자고 합의하다.
- 3.10. 노태우 대통령이 김대중 평화민주당 총재와 회담을 가지고 전날과 마찬가지의 합의를 하다.
- 3.20. 노태우 대통령이 대국민특별담화를 통해 중간평가를 위한 국민투표를 유보한다고 발표하다.
- 6.21. 노태우 대통령이 김영삼 통일민주당 총재와 회담을 가지다.
- 5.31. 노태우 대통령이 김영삼 통일민주당 총재와 회담을 가지다. 초당적 북방외교에는 합의하였으나 5공 청산 방법 등에서는 이견을 보이다.
- 6.8. 노태우 대통령이 한국일보 창간 기념 회견에서 국론분열, 사회 혼란이 우려된다며 중간평가 거부 의사를 밝히다.
- 7.10. 노태우 대통령이 김종필 신민주공화당 총재와 회담을 가지다. 좌익에 대처하기 위한 보수연합이 필요하다는 데 합의하다.
- 10.10. 노태우 대통령이 국회 국정연설에서 5공 청산이 상당히 이루어졌다고 언급하다.
- 12.15. 노태우 대통령이 야3당 총재와 회동하고 5공 비리 청산 문제의 완전한 타결 및 정국 안정을 위한 11개항에 합의하다.
*1990년
- 1.1. 노태우 대통령이 신년사에서 12월 31일 전두환 전 대통령의 국회 광주 및 5공특위합동청문회 증언으로 지난날의 문제를 완전히 종결하자고 언명하다.
- 1.5. 노태우 대통령이 신임 민정당 대표최고위원에 박태준 의원을 임명하다.
- 1.11. 노태우 대통령이 김대중 평화민주당 총재와 회담을 가지다.
- 1.12. 노태우 대통령이 김영삼 통일민주당 총재와 회담을 가지다.
- 1.13. 노태우 대통령이 김종필 신민주공화당 총재와 회담을 가지다.
- 1.22. 민정-민주-공화 삼당합당 및 신당 창당 추진이 합의되다.
- 2.3. 노태우 대통령이 김영삼 통일민주당 총재, 김종필 신민주공화당 총재와 회담하고 삼당합당과 신당의 진로 문제 등을 협의하다.
- 5.9. 민주자유당이 첫 전당대회를 열고 노태우 대통령을 총재로, 김영삼-김종필-박태준 의원을 최고위원으로 선출하다.
- 6.16. 노태우 대통령이 김대중 평화민주당 총재와 회담을 가지다.
*1991년
- 2.9. 노태우 대통령이 민주자유당 창당 1주년 기념식에 참석해 수서특혜의혹, 의원뇌물외유, 대입부정 등 잇단 비리 및 의혹 사건곽 관련 법대로 처리할 것과 민주자유당이 개혁의 선봉이 될 것을 강조하다.
- 3.22. 노태우 대통령이 김영삼 민주자유당 대표와 회동하고 지방선거와 낙동강 식수 오염 문제 등을 논의하다.
- 7.9. 노태우 대통령이 김영삼 민주자유당 대표와 회동하고 조기 경선 등 후계 구도를 둘러싼 정치 일정 논의를 중단하기로 합의하다.
- 7.16. 노태우 대통령이 김대중 신민주연합당 총재와 회동하고 내각제 개헌 문제, 총선 등 정치 현안을 논의하다.
- 11.18. 노태우 대통령이 이우재 민중당 상임공동대표 등과의 회담에서 진보정당 원내 진출 위해 노력할 것과 보수-혁신의 조화 필요성을 강조하다.
*1992년
- 1.4. 노태우 대통령이 경제 장관에 기업자금의 정치권 유입을 철저히 차단하라고 지시하다.
- 1.9. 노태우 대통령이 김영삼 민주자유당 대표, 김종필-박태준 민주자유당 최고위원을 만나 여당의 차기 대통령후보 결정 문제를 협의하고 ‘선 후보 가시화, 총선 후 전당대회 개최’ 원칙에 합의하다.
- 1.10. 노태우 대통령이 연두기자회견에서 지방선거 연기, 자유 경선으로 차기 대통령후보 선출 등을 발표하다.
- 3.24. 제14대 총선이 실시되다. 민주자유당 149석 / 민주당 97석 / 통일국민당 31석 / 신정당 1석 / 무소속 21석. 민주자유당의 참패로 평가되다.
- 3.27. 노태우 대통령이 김영삼 민주자유당 대표와 회동하고 당무 일체를 김영삼 대표에게 일임하다.
- 3.28. 김영삼 민주자유당 대표가 대통령 후보 경선 출마를 공식 선언하다.
- 3.31 노태우 대통령이 민주자유당 총선 당선자 149인과 당선 대회를 가지고 이번 총선의 민의에 승복할 것을 당부하다.
- 4.7. 노태우 대통령이 민주자유당 총선 낙선자들을 초청해 당내 대통령후보 자유 경선 의지를 전달하다.
- 5.19. 김영삼 민주자유당 대표가 제2차 민주자유당 전당대회에서 대통령후보로 선출되다.
- 6.29. 노태우 대통령이 제14대 국회 개원식 연설에서 선거 풍토 일신 위한 대통령 선거법 개정을 당부하다.
- 8.25. 노태우 대통령이 민주자유당 총재직을 사퇴하고 김영삼 민주자유당 대표에게 승계토록 하다.
- 9.18. 노태우 대통령이 김영삼 민주자유당 총재와 만나 중립내각 구성과 민주자유당 탈당을 통고하다.
- 10.5. 노태우 대통령이 민주자유당사를 방문해 탈당계를 제출하고 김대중 민주당 대표와 만찬을 겸한 회동을 갖고 중립내각 인선 문제와 정국 운영 방안 및 대선에서의 공정성 확보 방안 등을 협의하다.
- 10.7. 노태우 대통령이 정주영 통일국민당 대표와 만나 중립내각 인선 문제와 정국 운영 방안 및 대선에서의 공정성 확보 방안 등을 협의하다.
- 12.18. 제14대 대통령선거가 실시되다. 김영삼 민주자유당 후보가 당선되다.
- 12.21. 노태우 대통령이 대국민담화를 발표해 선거 기간 중 생긴 갈등을 메우고 국민 화합과 단합을 이룰 것을 거듭 강조하다. 노태우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김영삼 대통령 당선인과 회동을 가지고 선거 분위기 수습 방안과 정권 인수 문제를 협의하다.
(3) 경제
*1988년
- 8.8. 노태우 대통령이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하면서 부동산 가격 상승을 제도적으로 막을 수 있는 제반 조치 및 부동산 과다 보유에 대한 세제 대책 강구를 지시하다.
*1989년
- 3.30. 최저임금제를 1990년부터 10인 이상 모든 사업체에 확대 적용하기로 하는 법안이 입법예고되다.
- 4.12. 노태우 대통령이 경제사회균형발전확대회의를 주재하고 빈부격차 해소 방안 및 부동산 투기 근절을 위한 재산 보유 과세 강화와 토지공개념 도입을 적극 추진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하다.
- 8.21. 노태우 대통령이 라디오 주례방송에서 정치적 논쟁보다도 경제와 수출 문제에 눈을 돌려야 할 때임을 강조하다.
- 12.22. 노태우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열린 경제난국 극복을 위한 특별보고회의에서 1990년도 경제성장률 6.5%, 경상수지 흑자 20억 달러, 실업률 3.5% 등 경제운용계획을 확정하다.
*1990년
- 5.8. 여신 관리를 받고 있는 49개 계열 기업군에 대해 비업무용 토지와 건물을 6개월 이내에 매각하도록 조치하는 5.8 부동산투기대책을 확정 발표하다.
*1992년
- 3.20. 노태우 대통령이 20개 기본생활품목의 가격을 안정화하라고 지시하다.
- 4.1. 노태우 대통령이 제조업 경쟁력 강화 대책회의를 주재하고 까다로운 규제나 행정절차를 개선하라고 지시하다.
- 5.14. 노태우 대통령이 전국 중소기업자대회에 참석해 중소기업 공제사업기금을 대폭 확대를 강조하다.
- 7.2. 노태우 대통령이 최각규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장관과 공정거래위원장으로부터 대기업들의 상호지급보증 규제 등을 골자로 하는 공정거래법 개정 및 공정거래제도 운영 방향을 보고 받다.
- 7.23. 노태우 대통령이 30대 재벌 그룹 총수들과의 간담회에서 북한 진출 관련 과당 경쟁 자제를 요청하고 기업 규제와 간섭에 대한 과감한 축소를 약속하다.
- 12.28. 노태우 대통령이 93년 경제운용계획 보고 회의를 주재하고 관계 장관의 노고를 치하하면서 물가와 임금 안정에 노력해 줄 것을 당부하다.
(4) 행정
*1988년
- 2.25. 노태우 대통령 당선인이 제13대 대한민국 대통령으로 취임하다. 제6공화국의 출범과 ‘위대한 보통 사람들의 시대’를 열 것을 천명하다.
- 2.26. 노태우 대통령이 첫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폭력과 물가 등 국민 걱정거리의 해소를 강조하다.
- 10.27. 청와대에서 고위당정회의가 열리다. 노태우 대통령이 5공과의 단절을 강력하게 시사하면서 5공 시절 부정 비리 척결을 지시하고 국가보안법 개정 착수도 지시하다.
- 12.10. 청와대에서 당정연석회의를 가지다. 개각 및 민정당 당직 개편 이후 첫 당정회의를 주재하면서 소신 있는 정국 운영을 강조하다.
*1989년
- 3.22. 노태우 대통령이 공안관계장관회의를 주재하면서 좌경 폭력 세력의 강력 제재를 지시하다.
- 4.6. 노태우 대통령이 좌익폭력세력대책회의를 주재하면서 사법적 대응 차원에서 벗어나 근본적으로 좌익 세력을 봉쇄하기 위해 범정부 차원에서 모든 역량을 결집해야 한다고 강조하며 우선 과제로 중고교 의식화 교사 축출을 지시하다.
- 5.3. 노태우 대통령이 동의대 사건 관련 긴급 치안장관회의를 주재하며 화염병 투척, 방화, 납치, 감금, 국가재산 파괴 등 일체의 폭력을 척결해 나가기로 결정하다.
- 5.9. 노태우 대통령이 긴급 국무회의를 주재하면서 방위산업이나 국민의 일상생활이나 국민경제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기간산업, 공공운수사업, 의료사업 등의 불법파업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며 학생들의 좌익 활동을 불허하겠다고 강조하다.
- 6.5. 첫 주례 라디오 국정방송에서 노태우 대통령이 좌익폭력세력의 도전 극복이 이 시대의 과제라고 강조하다.
- 6.26. 노태우 대통령이 민주주의 파괴 행위에 단호하게 대처하겠다고 주례 방송을 하다.
- 7.20. 노태우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좌익 세력의 폭력 활동과 체제 전복 기도에 대해 국가 수호 차원에서 엄정 대처하고 주동 핵심 세력과 배후 조종 세력을 색출하라고 지시하다.
- 11.11. 노태우 대통령 주재로 긴급 고위당정회의를 가지고 5공 청산 대책을 협의하다.
*1990년
- 5.7. 노태우 대통령이 특별담화를 발표하여 경제 현안과 노사분규 등 강경 대처를 언명하다.
- 8.2. 노태우 대통령이 민주자유당 수뇌부와 청남대에서 당무를 보고 받고 남북교류, 지방자치제 등 법률의 후속 조치 문제, 경색 정국의 타개 방안 등 국정 현안에 대해 논의하다.
*1991년
- 2.19. 노태우 대통령이 대국민담화를 가지고 수서택지사건 문책 및 경제정책 활성화 등을 위해 장차관급 11인에 대해 인사 조치를 단행하다.
- 4.27. 노태우 대통령이 시위 중 전경들의 집단 구타로 사망한 명지대 강경대 사망 사건(4.26.) 관련 안응모 내무부장관을 경질하고 후임에 이상연을 임명하다.
- 5.2. 노태우 대통령이 강경대 사망 사건 관련 유가족에게 애도의 뜻을 표한다며 대국민 사과를 하다.
- 5.3. 노태우 대통령이 한국청소년회의소 간부들을 청와대로 초청한 자리에서 민주화가 이루어진 상황에서 빚어진 강경대 군 사건은 과거 민주화 투쟁 과정에서 있었던 희생과는 구별되어야 한다고 강조하다.
- 5.24. 노태우 대통령이 강경식 사망 사건으로 인한 노재봉 국무총리의 사표를 수리하고 후임으로 정원식 전 문교부장관을 임명하다.
*1992년
- 10.9. 노태우 대통령이 중립내각 구성에 관한 특별담화를 발표하고 현승종 국무총리 등 개각을 단행하다.
*1993년
- 1.1. 노태우 대통령이 신년사에서 국민 대화합과 새 정부의 개혁에 동참을 부탁하다.
- 2.23. 노태우 대통령이 청와대 춘추관에서 TV와 라디오로 전국에 생중계해 퇴임 기자회견을 진행하다.
- 2.24. 노태우 대통령의 임기가 종료되어 퇴임하다.
(5) 법
*1988년
- 3.16. 노태우 대통령이 법무부 업무보고를 받으면서 안보 앞세운 인권침해 및 고문수사관행을 엄단하도록 지시하다.
*1989년
- 7.17. 제41주년 제헌절을 맞아 라디오 주례방송에서 노태우 대통령이 계급혁명으로 민주주의 체제를 뒤엎으려는 세력의 폭력 및 파괴 행동을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하다.
*1990년
- 6.28. 노태우 대통령이 기자간담회에서 올해 안에는 내각제를 고려하지 않겠다고 언명하다.
- 7.24. 노태우 대통령이 민주자유당 수뇌부와 회담하고 내각제 개헌을 둘러싼 정국 운영 방안 등을 협의하다.
- 10.24. 노태우 대통령이 김영삼-김종필-박태준 민주자유당 최고위원과 만나 1990년 중 내각제 논의 중지를 재확인하다.
- 11.6. 노태우 대통령이 김영삼 민주자유당 최고위원과 회담하고 내각제 합의 각서 파문 진화를 위해 내각제 개헌 포기 등 8개항에 대해 합의하다.
*1992년
3.3. 노태우 대통령이 전국 검사장 등 검찰 간부들을 청와대로 초청해 선거법 위반에 대한 엄벌을 강조하다.
(6) 안보
*1989년
- 6.15. 노태우 대통령이 국가안보회의를 주재하며 중국 천안문 사태가 한반도와 동북아 정세에 미칠 영향을 분석하고 대응책을 논의하다.
*1991년
- 1.17. 노태우 대통령이 조지 H. W. 부시 미국 대통령에게 이라크에 대한 미국의 군사 조치를 지지한다는 전문을 발송하다. 걸프전이 발발하자 육해공 3군이 비상 태세에 돌입하다. 노태우 대통령이 오후에 국가안전보장회의를 주재하고 이승윤 부총리를 위원장으로 페르시아만사태 특별대책위원회를 확대 개편하다.
- 1.19. 노태우 대통령이 페르시만사태와 관련하여 김대중 민주당 총재와 회담을 가지고 초당적 대처에 합의하다.
- 1.20. 노태우 대통령이 리스카시 주한미군사령관, 그레그 주한 미 대사로부터 걸프전쟁 전황 보고를 청취하다.
- 2.5. 걸프전 지원 관련하여 부시 미국 대통령의 친서가 전달되다.
- 2.24. 노태우 대통령이 리스카시 주한미군사령관, 그레그 주한 미 대사로부터 걸프전쟁 전황 보고를 청취하다.
- 7.19. 노태우 대통령이 유엔가입신청에 필요한 유엔헌장 의무 수락 선언서에 서명함으로써 유엔 가입을 위한 국내 절차가 마무리되다.
*1992년
- 7.1. 노태우 대통령이 정원식 국무총리로부터 7월 6일 일본 정부가 발표한 ‘정신대’ 조사 결과 관련 주례 보고에서 ‘전반적으로 규모와 강제 동원 관련 자료 파악이 미진’하다며 일본의 진상 규명과 후속 조처를 촉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