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1월에 영국의 존 프레스콧(John Prescott)이라는 사람이 세상을 떠났다.
영국정치에 상당히 관심이 있지 않고서는 잘 모를 사람인데, 그는 1997~2010 블레어-브라운 영국 노동당 내각에서 부총리를 맡는 등 주요 인사였다.
그의 추도사 중에 전 총리 토니 블레어(Tony Blair)는 이렇게 말했다.
"보수당은 최소한 전통적으로는 권력을 휘두르기 위해 존재했고 권력을 잡기 위해서라면 본질적으로 아무 원칙도 없었습니다.
대부분의 진보적 운동들처럼 - 노동당과 권력은 서로에게 불편한 사이였습니다. 대개 장기간을 야당으로 있던 그 시절에도 이성적으로는 우리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권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하지만 노동당은 권력을 불신했습니다. 추구해야 했지만 자기의 가치에 비추어 위험하다고 여겼죠. 왜냐하면 권력을 잡는 것은 변화를 실현할 수 있게 해주지만 동시에 다룰 때에는 보수적이어야(조심스러워야) 하거나, 고통이나 타협이나 거래와 같이 권력에 당연히 수반되는 것들을 감내해야 할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사실상 90년대에 제3의 길(Third Way)이 등장하게 된 정치적 의의 내지 취지라고 할 수 있다.
'집권하는, 그것도 충분히 오래 집권해서 구조와 문화의 변동까지 유도해내는 진보를 보고 싶다.'
서구에서 제3의 길은 베이비부머(Baby-boomer) 정치의 정수 중 하나다.
젊은 시절을 광란(?)의 60~70년대에 보낸 이 진보적인 세대는 나이가 들어 가며 점차 현실에 눈을 떴다.
특히나 그들이 80년대에 마주한 세상은 대대적인 정치사회적 보수화와 경제적 탈산업화였다.
더는 과거의 전후 복지국가와 국유산업 주도 경제로 돌아갈 수 없음을 그들은 체감했다.
동시에 종래의 범좌파가 점점 변동해가는 사람들의 인식을 따라가지 못하고 소수 좌파 엘리트나 계급정치와 노동조합에만 얽매여 있는 것을 답답해했다.
결과적으로 그들은 80년대의 시장 중심 구조개혁을 그 이전으로 되돌리기 보다는, 거기서 더 복지나 교육이나 의료 등의 공공서비스에 사회투자하여 성장-분배가 양립하고 선순환하는 모델을 만들어 냈다.
그런데 비판자들은 제3의 길은 이제까지 수없이 시도된 것이며, '권력에 대한 집착'이 낳은 선거용 구호일 뿐이라고도 한다.
솔직히 아주 틀린 말이라고 하기는 어렵다고 본다.
그런데 그게 뭐 어떻단 말인가?
어차피 정책이나 철학의 창의성이라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마거릿 대처와 로널드 레이건의 신(Neo)자유주의도 과거의 고전적 자유주의를 되살린 것이지 새(New) 자유주의를 만들어 낸 게 아니다.
진보는 항상 주류적 사고에서 벗어나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좀 더 과감하게 '일상의 감각'을 포착해서 그것과 자신들의 사상을 어떻게 좁힐 것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더구나 김대중 대통령이 재임 1년 차 즈음에 밝힌 것처럼, '개혁은 제도나 법만 가지고 되는 것이 아니라 결국 사람들의 의식 변화에 성패가 달려 있다.'
의식 변화는 사회구조의 변화까지 수반해야 하는데, 결국 점진적 개혁을 통해 달성하는 데에는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그리고 좀 더 중도적 입장에 있는 이들은 '한 발자국이라도 나가는 것이 반대자로 남아 퇴보를 지켜보기만 하는 것보다는 낫다.'라는 입장이다.
더 원리적인 좌파들과는 이 지점에서 궤를 달리한다.
더 뚜렷한 좌파들은 거시적이고 추상적인 담론을 즐기지만, 결국 실제로 중요한 건 일상에 영향을 미치는 현존하는 제도와 구조와 정책이다.
예를 들어 추상적인 '불평등 전복'보다는 결국 구체적인 '겨울철 연료 지원'(이번에 영국 노동당 내각에서 예산 삭감에 포함되어 크게 논란이 되었었다)이 더 중요한 것이다.
담론에 있어서의 현실 감각과 구체적인 정책 입안 능력이 없다면 사람들의 사고의 관성에 기댄 보수를 이길 수 없다.
모든 정파는 결국 권력을 지향한다.
좀 더 좌파적인 인사들은 더 큰 역사와 민중의 흐름을 보고 맨 땅에 헤딩하듯 사회운동에 몸을 던지고 그것도 유의미한 사회변동을 이끌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소위 '중도화'를 변절이라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https://youtu.be/b7GUO10dLaE?si=vBSLvf--f2dP3Nz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