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레어주의 Blairism의 이해

사회주의 Socialism에서 사회적-주의 Social-ism로

by 남재준

https://youtu.be/3QzdtvcYWeM?si=BCzOR-AQrBq78iMt

'따뜻한 보수(Compassionate Conservatism)'와 보수주의의 유일한 차이는, 따뜻한 보수는 '우리는 당신을 도울 수 없다. 하지만 그것을 정말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라고 당신에게 말할 것이라는 점이다.
_ 토니 블레어, 2005년 12월 14일 대총리질문(Prime Minister's Questions)에서


많은 논쟁이 있었고 앞으로도 계속되겠지만, 토니 블레어 Tony Blair, 1953-가 남긴 중요한 자취 중 하나는 ‘사회주의 Socialism’의 개념을 바꾸어 놓았다는 것이다.

토니 블레어가 바꾼 사회주의는 윤리적 사회주의 Ethical Socialism 라고도 불리는데, 이는 사회주의를 유물론이 아닌 관념적으로 접근하여 자본주의 경제를 공동체와 윤리에 복무하도록 변환하는 것을 지향하는 사상이다. (블레어가 시작한 사상은 아니고, R. H. 타니ㆍ클레멘트 애틀리 등이 주요 역할을 했고 블레어는 그것을 '현대화'했다.)

다른 말로는 공동체주의 Communitarianism라고도 볼 수 있겠다.

그는 자신의 사회주의를 사회적-주의(Social-ism)로 표현하기도 했는데, 초선 의원으로서의 첫 의회 연설 때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저는 사회주의자이지만 지적 관심에 끌려 교과서를 읽어서도, 전통을 아예 생각하지 않아서도 아니고 저 자신이 사회주의는 합리적이고 도덕적인 실존에 가장 가깝게 응답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대립이 아닌 협력을, 두려움이 아닌 동료애를 지향합니다. 그것은 평등을 지지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같기를 원해서가 아니라 오직 우리의 경제적 상황에서의 평등을 통해서만 개성이 제대로 발휘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런 말도 남겼다.

“제게 있어 사회주의는 단 한 번도 국유화나 국가의 권력에 대한 것이 아니었고, 경제나 심지어 정치에 대한 것만도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삶의 도덕적 목적이고, 가치의 묶음이며, 사회와 협력에 대한 믿음 즉 우리가 혼자서는 이룰 수 없는 것을 함께 이룰 수 있다는 점을 믿는 것이었죠. 그것은 제가 제 인생을 살아가려는 방식이고, 당신이 당신의 인생을 살아가려는 방식이기도 합니다 – 아주 단순한 사실들인데 – 나는 다른 누군가보다 더 가치 있지 않고, 남동생의 보호자이고, 다른 길로 빠지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단순히 서로에게서 고립된 사람들의 모임이 아니라, 같은 가족, 공동체, 인류의 구성원으로서 영원히 면대면으로 마주합니다.

사람들은 흔히 블레어에게 철학적 기반이 부족하며 모호하다고 지적했지만, 사실은 그렇지만도 않았다.

문헌에 따르면, 블레어는 존 맥머레이라는 철학자로부터 영향을 받았다.

맥머레이는 사회 Society와 공동체 Community를 구분했다고 하는데, 사회는 어떤 목적을 지향하는 조직이지만 공동체는 그 자체가 목적인 집단이라는 것이다.

또한 그는 영국의 대표적인 사회자유주의 철학자인 토머스 힐 그린의 영향을 받았다.

이러한 점들을 보면, 블레어주의의 핵심에는 상호연결성 Interconnectedness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대처주의의 '단절된 독립적 개인'과 마르크스주의의 '계급으로 표상되는 집단'의 중간에 있다.)

동료애, 가족애 등 ‘그 자체가 목적인’ 연결들인 공동체 안에서 우리는 함께 공동 운명체로 묶여 있다는 것이다.

약간 더 개인적인 해석을 덧붙인다면, 블레어는 이러한 ‘공동체’의 의식이 결국에는 사회나 국가라는 조직을 이루는 근간이 된다고 생각한 듯하다.

국가를 운영하는 정치인으로서 그가 밝힌 신념이 단지 정치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도덕적 신념’이라는 점을 항상 강조했다는 점이 이를 방증한다.

공동의 운명은 각 구성원에게 서로에 대한 의무를 부담하도록 한다.


아니면 상호연결성은 경제적 상호의존성(Interdependence)을 의미해 그로 인한 거래의 필요성을 나타내기도 한다.

이를 바탕으로 복지국가의 확대를 위한 부담의 정당화가, 세계화로 인한 자유무역의 확대가, 이라크와 코소보 등 먼 이국에 대한 군사적 개입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블레어의 대내외 정책에 있어 상호연결성을 기반으로 한 공동체주의는 상당한 영향을 미쳤음을 알 수 있다.

정책적, 이데올로기적으로 그에게 큰 영향을 미친 사람들은 단연 사회학자 앤서니 기든스와 정치인 앤서니 크로슬란드였던 것으로 보인다.

두 사람 모두 영국 사회주의의 혁신과 재정의를 제안했던 사람들이다.

크로슬란드의 경우에는, 저서인 <사회주의의 미래 The Future of Socialism>에서 자본주의가 필연적으로 붕괴할 것이라는 본래의 예견과 달리 자본주의는 교정될 수 있음이 증명되었으며, 오히려 적절한 정책적 도구의 사용을 통한 점진적 변화가 자본주의 체제의 체질을 바꿀 것이라고 역설했다.

한편 계급이 중요한 정치사회적 구분점이었던 영국에서 노동당의 승리를 위해서는 중산층과 노동계급의 이해를 일치시키는 것이 중요했는데, 같은 시기에 활동했던 노동당 대표 휴 게이츠켈(Hugh Gaitskell, 1906-1963)은 이런 말을 남겼다.

“중산 계급 연대의 성공은 노동계급이 중산 계급의 리더십과 사상을 수용하는 데에 달려있다.”

현실적으로 노동계급이 완전히 일치단결해 자신만의 힘으로 기존 체제에서 권력을 갖는 것은 어려운 일이고, 중산층이 보다 주도적인 역할을 해서 노동계급과 연대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한편으로 이는 화이트칼라 전문직이 증가하면서 그들에게 어필하기 위한 정치적 전략이기도 했는데, 후에 1964년 총선에서 해럴드 윌슨 Harold Wilson이 정권교체를 할 때 이 전략은 제대로 효과를 발휘했다.

90년대 말에는 신자유주의와 세계화라는 시대적 흐름의 변화가 닥쳐오면서, 사회주의는 국가가 통제하는 생산-소비 구조를 일단 부인해야 하는 현실적인 상황을 맞닥뜨리게 되었다.

그래서 사회정의와 복지국가의 대의를 포기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경제적 효율성과 자율의 논리를 수용하는 ‘제3의 길’이 제시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흐름들을 정리한다면, 하나로 뭉치기 어렵고 뭉친다 하더라도 헤게모니를 쥔 지배층을 꺾기 어려운 노동계급을 대표하는 노동당이 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중산 계층과 손을 잡아야 하고, 자본주의 자체를 완전히 전복하기보다는 자본주의를 사회적으로 공동체와 윤리에 복무하도록 변형하는 것이 훨씬 현실적인 대안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한편으로 사회주의의 근간을 이루는 인식의 틀이었던 유물론을 탈피한다는 의미를 지니기도 한다.

사회통합의 기치 아래 계급을 뛰어넘는 공동체의 가치와 윤리를 강조함으로써 생산관계로부터 비롯되는 계급 구조의 역학을 부인한 것이다.

원리적 사회주의의 시각에서 착취적 불평등의 문제가 해결되기는커녕 더 심화되었는데 오히려 시장과 시민사회와의 협력을 강조하면서 사실상 신자유주의의 손을 들어주는 모양새를 취한 블레어주의는 많은 비판을 받았다.

그는 당내의 연성좌파 Soft left보다 더 중도적 성향을 지니고 있었는데, 일례로 공공서비스에 대한 투자를 늘리는 것이 일반적인 정통 사민주의 노선이라면 그는 민간과 공공의 공급자들을 늘려 소비자/시민의 선택권을 늘리고 공급자들 간 경쟁을 유도해 서비스의 질을 제고하고자 했다.

이러한 그의 시각에 대해, 개인적으로는 시간이 흐른 뒤에 와서 볼 때 그가 대처 시절의 구조적 유산에 대해 너무 호의적으로만 생각하고 있었음은 분명해 보인다.

대처 여사는 과하다고 여겨질 정도의 급진적인 시장 중심 구조개혁을 단행했는데, 블레어는 그러한 개혁이 근본적으로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대처가 남긴 제조업 기반의 붕괴와 이로 인한 대량 실업, 과도한 민영화 등의 문제들은 블레어와 같은 철학을 공유하더라도 보다 근본적인 구조적 수정이 필요했음이 분명해 보인다.

이런 점에서 그가 대처주의를 역코스로까지 돌려놓지 못한 것은 사실이어 보이고, 철학적으로는 모르더라도 정책적으로는 비판의 여지가 많이 있다고 본다.

한편으로, 과잉된 공동체 의식과 사회학적 상상력은 국가와 국민을 불필요할 정도로 많은 전쟁의 소용돌이 속으로 몰아넣었다.

그의 의도가 도덕적 의무감에 있었다는 점을 의심할 수 없다고 생각하지만, 바로 그 도덕적 의무감이 이라크에서의 파국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정치인의 신념이 과잉되면 얼마나 큰 재앙이 닥칠 수 있는지를 알 수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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