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www.khan.co.kr/article/202506302107005/amp
극우라는 건 어쨌든 한 스펙트럼 안의 일부이다.
그런데 이대남이라는 집단(?)을 그 개념으로 이해하는 건 부적절하다.
사실도 아니거니와 자칫 유시민식 '내재적 접근법'으로 인하여 혐오와 반사회성의 정당화로 이어지는 미끄러운 경사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대남이라고 통칭하기는 하지만, 이들을 관통하는 세계관이나 시대정신은 딱히 없다.
이들에게는 파편적인 불만과 반대들이 있을 따름이다.
병역이건 반페미니즘이건 뭐건 간에 말이다.
더구나 이들이 무슨 연대나 조직화를 하는 것도 아닌데, 단순한 특정 온라인 커뮤니티의 이용은 그런 양태로 보기 어렵다.
그러니 이들을 집단적으로 묶어 보기 어려운 것이 당연하다.
애초에 그들을 가로질러 존재하는 것은 단지 어떤 감정 내지 경향 같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
문제는 그러한 감정이나 경향이 왜곡된 인식에 기초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대남 극우 프레임은 이를 적절히 설명하지 않고 단지 이념적 극단성을 띠는 스펙트럼 끄트머리의 젊은이들인 것처럼 규정한다.
내가 학원강사로 있을 때 아이들에게, 그리고 내 동생에게 이렇게 말했다.
"어떤 정치성향을 가져도 좋지만 제발 커뮤니티로 정치를 배우진 마라."
나는 이 말에 소위 '이대남'을 이해할 수 있는 실마리가 있다고 본다.
이대남은 버려진 세대ㆍ집단일지도 모른다.
신자유주의적 사회변동ㆍ경제침체 만성화 등은 청년세대에 미래에 대한 희망을 잃고 사회에 대한 냉소만 남게 했다.
더구나 남성들은 가부장제가 해체되어가는 상황이지만 동시에 권위주의적 패러다임의 관성 속에 여전히 의무는 있지만 발언권은 적은 가장이라거나, 군대로 인해 젊음을 깎이지만 취업조차 쉽지 않거나 하는 상황들에 처해 있다.
페미니즘은 분명 타당한 인식이지만 문제는 계급과 달리 젠더 그리고 섹스는 사라질 수 있는 것이 아니므로 남성들을 위한 대안적 남성성 같은 것이 있어야 했다는 것이었다.
우리 사회의 구조 변동의 직격탄을 맞은 집단 중 제일 큰 이들일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 결과로서의 그들의 경향이 정당화되진 않는다.
그들 중 상당수가 자신이 디디고 선 사회경제적 배경이 능력과 경쟁력의 발휘에 있어 큰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 같은 것을 깊이 보지 않는다.
일례로 조국 사태 때 나는 친구(남성)와 언쟁하며 '그 학생들의 시위의 대의가 도대체 뭔가.'라고 했는데 친구는 '정치적 의도가 있는 게 아니라 다만 절차적 공정성에 대한 분노'라고 강변했다.
하지만 정치적 의도가 없다면 그것대로 문제인 게, 그러면 그들은 고작 조민을 입학취소시키기 위해 나왔단 말인가?
그리고 그런 집합행동은 왜 정치와 무관한가?
또 절차적 공정성이라는 것도, 이미 수시가 압도적인 대입에서의 비중을 차지하고 부모의 사회경제적 계층과 그에 따른 정보력ㆍ사교육 동원력 등에 능력ㆍ경쟁력의 발휘 여부가 상당히 좌우되며 본인들도 그 수혜를 입은 이들이 아닌가?
조민같은 부정행위는 후에 드러났듯 조국을 공격하던 대학교수나 법조인 등 상층 자녀들에계서도 유사하게 나타났다.
일반고 출신의 입장에서 볼 때는 조민처럼 부정은 아니더라도 특목고ㆍ자사고 출신 명문대생들은 상당한 구조적 모순의 특혜를 누리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워낙 사회경제적 환경이 척박하다보니 우리 청년들 중 상당수가 '자신의 억울함'만에 집중해 뒤틀린 사회적 감수성과 인식을 지니기에 이르렀다.
자신이 처한 사회경제적 구조의 개혁ㆍ혁신이 아니라, '위선자들'처럼 보이는 자들을 공격했다.
이준석 의원은 이대남을 대표하는 게 아니라 그런 울화(?)와 반대의 정서를 일정 정도 담았거나 반영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준석 의원의 최저임금 지역별 차등화, 법인세율 조정권 지자체 이양, 교육부ㆍ과기정통부 통합 등을 관통하는 신자유주의 정책ㆍ이념을 '이대남'이 정말 지지한다 말할 수 있는가?
이념ㆍ진영이 분리되어 정책 기반 이념적으로는 그렇게 보수적이지 않은데 진영 논리로 보면 산업화 세대와 같은 선택을 하게 되는 이대남들도 있다.
이상할 것이 없는 게, 이대녀도 그렇지만 지금 세대ㆍ역사적 정체성을 기준으로 갈라진 진영 정치에서 청년세대의 목소리를 대표하는 세력은 없다.
그런 목소리가 있는지도 의문이긴 하지만, 어쨌든 청년세대의 선택은 다만 어쩔 수 없는 '이당제당'과 비슷한 느낌이다.
어렸을 때부터 선택권이 제약되어 미시적으로 자아를 규제받았고 결국 성인이 되어서도 방황하며 정치적으로도 '이쪽이냐 저쪽이냐'의 선택을 강요받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결국 소위 이대남은 상당수의 사회현상이 그렇듯 사회구조적 문제의 영향으로 사회문제가 되었고 피해자이면서 가해자라 볼 수도 있다.
더구나 이제까지 밝혔듯 이는 '은은한 코드'와 비슷한 것이지 그들이 분명하고 뚜렷한 대의를 가지고 정치사회적 움직임을 보이는 것도 아니어서 대처라는 것이 요원하다.
구조개혁 등에 박차를 가해 전체 사회ㆍ경제 나아가 국가의 체질을 변환하는 수밖에는 없다.
개인의 정체성이나 집단의 경향을 '교정'한다는 건 바람직하지도 실현가능하지도 않다.
결국 그러한 영향을 전체적으로 통제하고 완화할 수 있도록 적정한 오피니언리더십, 청년들이 마주한 교육ㆍ취업ㆍ주거ㆍ자산형성 등의 구조적 문제들의 해결이 최선의 대안일 것이다.
이 나라는 결국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모두의 나라이며, 그들 모두를 포용하고 상생할 수 있는 길을 찾는 것 이외에는 방법이 없다.
다만 문제나 현상을 볼 때에는 양태나 본질을 정확히 보는 것이 타당한데 그렇지 않으면 이상한 결론과 행위 지침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