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보수주의의 스테레오타입 중 대처주의에 대한 반론
보수주의가 줄 수 있는 핵심은 ‘안정감’에 있다.
보수주의는 점진적이고 유기적 변화를 거부하지 않지만, 거대 기획(‘이상사회론’)이나 급진적 변화에 회의적이니 진보주의가 아니다.
하지만 보수주의가 지나간 시대의 관성에 과도하게 기대 현재를 부정하고 이상화된 과거로 돌아가고자 하는 반동주의가 아니라는 점도 매우 중요하다.
이렇게 본다면, 보수주의의 상징으로 알려진 많은 정치인들은 실은 보수주의자라고 보기 애매할 수도 있다. (e.g. 마거릿 대처, 아베 신조)
대표적으로 마거릿 대처(Margaret Thatcher, 1925-2013) 여사가 그렇다.
그가 제창한 대처주의(Thatcherism)의 정체성에 대해서는 보수주의, 자유주의, 자유지상주의 등 말이 많지만 개인적으로 ‘보수주의’라고 보기 어렵다고 본다.
대처주의는 감세, 정부지출 삭감, 규제 완화, 민영화 등의 경제적 자유주의를 간판 정책 기조로 한다.
그 전제에는 사회란 존재하지 않고, 오직 개인들만 존재하며 개인들은 국가에 대한 과도한 의존을 버리고 자신의 경제적 이니셔티브를 쫓고 기업가정신을 발휘해야 한다는 가치관이 있다.
대처 여사 본인이 단순히 제도를 개혁하는 게 아니라, '근본적인 의식의 변화’를 추구한다고 여러 번 강조했다.
이렇게 보면, 대처주의에서 중요한 건 실은 그 ‘의식’, ‘가치관’이다.
그리고 대처주의가 전제한 소위 신자유주의 경제학이라는 것도, 실은 당위론적으로 개인의 재산권과 시장경제를 정당화하는 철학적 성격이 상당히 짙다.
오히려 수학적 엄밀성은 케인지안 경제학이 더 높다고 보아야 하지 않은가 싶다. (물론 오스트리아 학파의 루트비히 폰 미제스는 사회주의 계산 논쟁에 활발하게 참여했었다는 점 등은 안다. 하지만 존 메이너드 케인스 본인부터 수학자 출신이었고, 미국 시카고학파의 밀턴 프리드먼도 자신의 통화주의 이론이 일정 부분은 케인스주의의 영향을 받은 것을 부인하지 않았다. 대처주의가 핵심 이론적 기반으로 한 프리드리히 하이에크의 저서는 철학적으로 자유시장을 옹호한 것이 상당하다.)
하지만 그 가치관, 그리고 그에 기초한 근본적 구조개혁은 과연 타당하고 보수적인 것이었는가?
우선 사회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인식적 틀은 서구의 맥락에서 보더라도 그리 타당하지 않아 보인다.
당장 대처 여사 본인이 수장으로 있는 ‘정부’라는 조직은 실체도 없고 고로 의사표시를 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말인가?
자연인이 아닌 사회조직(그러니까 사단이나 재단 같은)에 권리능력을 부여하는 법인 제도는 유구한 역사를 가지는데, 이를 보는 이론적 전제에는 법인실재설이 있다.
즉 법인은 사회조직으로서 그 독자적 실체가 있다고 이해한다.
정부 또한 법인격이 있다.
법은 사회의 인식과 규범에 기대고 있으므로, 사회가 없다고 본다면 이러한 점부터 당장 설명할 수 없다.
설령 대처 여사가 단지 ‘사회에의 의존’을 비판한 취지라고 하더라도, 타당치 않다.
사람들이 살아가며 겪는 일들은 개인의 선택과 사회의 영향이 복합적으로 합쳐져 나타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이렇게 볼 때, 어떤 사회문제에 대해 대처 방안을 논할 때 무조건 사회에게만 책임을 전가할 수는 없지만 반대로 개인에게만 책임을 전가할 수도 없다.
이 점에 관하여서는 동서양이 대체로 공통되었다고 본다.
유럽의 기독교 원리에 기반한 공동체 윤리에서는 결코 타인이나 사회에 대한 윤리적 책임이 배제되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바로 그 점 때문에 각자도생으로만 흐를 수 있는 자본주의가 어느 정도 견뎌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공동체 원리와 시장 원리 간의 적정한 조화를 꾀하는 것이 전통적인 서구 보수주의의 견해였다.
다만 민간의 힘만으로는 더는 시장의 한계를 충분히 보완하기 어려워 불가피하게 국가가 조금 더 나서 국가의 통합을 유지토록 할 수밖에 없겠다고 한 것이 일국보수주의 (One-nation Conservatism)였다.
하지만 대처주의는 일괄적으로 이러한 종래의 전통을 파괴했다.
19세기의 자유주의와 그에 기여한 민간 중심 기독교 윤리는 보수주의가 지키고자 하는 전통의 일부일 수 있다.
문제는 그 뒤에 산업사회가 일반화되면서 수정된 부분도 전통의 일부가 되었다고 보아야 할 텐데 대처주의는 그것을 거부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대처주의는 축적되어 온 과거의 특정 부분을 선별적으로 골라내 다시 그때로 돌아가자고 주장하는 반동주의에 가까운 것이다.
물론 시대적으로 종래의 수요 관리 중심 대책이 스태그플레이션 등 근본적인 전환기를 맞고 있었고, 무언가 강한 충격과 변동이 필요했다는 점은 맞아 보인다.
대처주의는 정확히 그러한 강한 충격요법이었지만, 보수주의라고 보기는 어려웠고 타당성의 측면에서도 너무 많이 나갔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들이 보수주의를 대표한다 말할 수 있을까?
당장 영국의 맥락에서 나는 그의 후임자인 존 메이저(John Major, 1943-)가 보수주의자에 해당한다고 보고, 또 그에 큰 호감을 가지고 있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다음 글에서 밝히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