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누가 보수주의자인가 : 마거릿 대처와 존 메이저의 비교
보수주의자가 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전에 내가 썼던 글인 ‘내가 생각하는 보수와 진보에 대한 오해’에서 일부를 발췌한다.
1959년에 영국 보수당 의장이었던 퀸틴 호그는 말하기를,
“보수주의는 철학이라기보다는 태도, 지속적인 힘, 자유로운 사회의 발전에서의 시간을 뛰어넘는 기능, 그리고 깊고 영구적인 인간 본성 그 자체의 요구에 대한 대응”이라고 했다.
무슨 말인지 잘 이해가 되지 않는데, 다른 정의를 하나 더 보겠다.
1956년 철학자 마이클 오크숏이 쓴 「보수주의자가 됨에 관하여 On Being Conservative」를 보면,
“보수주의자가 된다는 것은 미지보다는 익숙을, 시도하는 것보다는 시도된 것을, 신비보다는 사실을, 가능한 것보다는 실재하는 것을, 무제한보다는 제한을, 먼 것보다는 가까운 것을, 풍부한 것보다는 충분한 것을, 완벽보다는 평안을 선호한다는 것이고 유토피아적 행복에 대해 조소를 보이는 것이다.”
여전히 추상적이기는 하지만, 몇 가지 특징 정도는 짚을 수 있을 듯하다.
1. 보수주의는 이론과 기획이라기보다 태도와 자세에 가깝다.
2. 보수주의는 매우 정중동(靜中動)을 지킨다.
개인적으로 생각하기에 1번의 의미는, 보수주의는 세계적으로 보편적이고 견고한 이론이나 체계가 있는 게 아니라 공통적으로 관찰되는 경향과 비슷한 것이라는 것이다.
2번의 의미는, 어찌 되었건 보수주의는 ‘기존의 것’을 지켜간다는 점을 핵심으로 한다는 것이다.
결국 보수주의자가 된다고 함은 ‘기존의 것을 지키면서 전체 사회의 안정을 위해 변화에 신중하게 접근하는 자세와 태도를 지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생각은 또한 몇 가지 전제를 두는데, 예컨대 ‘인간은 본성적으로 불완전하다.’, ‘역사는 형성되어온 대로 이해되어야 하며 반복되는 어떤 일반 법칙이 있는 것이 아니다.’, ‘윤리나 법은 보편적이고 선험적인 것이 아니라 그 공동체의 관습과 전통 및 경험에 기초한다.’ 등이 있다.
여기에서 좀 더 과감하게 내 식대로 해석해 보자면, 우선 보수주의는 과학적이라기보다 인문학적이다.
인생의 누적된 경험칙이나 공동체의 관습 같은 것을 과학적 법칙보다 더 신뢰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이렇게 보면, 보수주의자가 된다는 것은 사실 이론적 이해 같은 것이 깊어지는 게 아니고 성숙해지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말하자면 어떤 절대적 가치관에 기초한 결론을 내려놓기보다, 인간사의 복잡함에 대한 이해와 이에 기초해 보다 냉철하고 현실적인 판단력을 지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특성의 사람들은 눈에 과도하게 띄거나 돌출되지 않아 최고지도자의 자리에서는 평범하다(Mediocre), 로봇 같다는 등의 말을 듣는다.
하지만 바로 그런 점들이야말로 진정한 보수주의자임을 드러내는 징표라고 나는 본다.
차분하고 신중하며 구체적인 문제에 집중하며 전체적인 조화를 중시하는 태도가 핵심이다.
대강 이런 바이브로 보수주의를 이해한다면, 내가 보기에 전형적 보수주의 정치인들은 로널드 레이건(Ronald Reagan, 1911-2004), 마거릿 대처, 아베 신조(安倍 晋三, 1954-2022)보다는 존 메이저(John Major, 1943-), 테레사 메이(Theresa May, 1956-), 이시바 시게루(石破 茂, 1957-)이며 나는 이들에게 상당히 많이 동감한다.
이 글에서는 특히 존 메이저에게 집중해 보고자 한다.
메이저의 전임(마거릿 대처)과 후임(토니 블레어, 1953-, 노동당 대표, 총리 1997-2007)은 장기 집권을 하고 각자의 존재감과 카리스마가 강렬해서 그는 묻혀버렸다.
게다가 그의 집권기는 검은 수요일과 ERM 탈퇴, 마스트리히트 조약 비준 파동, 계속되는 보수당 의원들의 스캔들, 보수당 장기 집권의 피로감, 복수심에 불타던 대처 전 총리의 정치 개입 등으로 조용할 날이 없었다.
1997년에 보수당이 전후 사상 최악의 참패를 당하며 메이저는 불명예스럽게 퇴장해야 했다.
메이저는 오히려 전임 총리로서 최근 브렉시트에 대한 강한 반대, 보리스 존슨의 총리 시절에 대한 비판, 내셔널리즘과 포퓰리즘 및 신권위주의에 대한 경계 등 더 많은 발언을 하고 원로로서 상당한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그의 총리 재임기는 여전히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한다.
‘인간’으로서의 그를 좀 더 깊이 들여다보면 그의 보수주의자로서의 면모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가 잘 보이며 또한 대처와 비교하면 더 극명해진다.
사람의 가치관은 그 사람의 인생 경험으로부터 형성되기 마련이다.
대처는 본인의 정치도 그랬지만 인생 자체가 성취와 투쟁이었던 사람이다.
식료품점 주인, 목사, 지방의원 등이었던 대처의 아버지는 지역 유지 비슷했다.
학창 시절의 대처는 매우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이었고 수영, 시 낭송, 피아노 등 과외 활동도 활발했으며 학생회장도 했다.
대학에서는 화학을 공부했고 화학 연구원으로서 산업 현장에서 아이스크림 유화제 개발 등에 참여하는 등의 경력을 쌓았다.
정치에 대해서는 제너럴리스트적 접근에서 시작해 보수당 활동을 활발하게 하면서 결국 정계 진출까지 하기에 이르렀다.
교육을 받고 변호사 자격을 취득하긴 했지만 변호사로서의 경력은 없다고 보면 되는 것이 정계 진출의 과정에서 자격을 취득한 것이기 때문이다.
대처는 자신이 최초의 여성 총리라는 것보다 최초의 이공계 출신 총리라는 점에 자부심을 가졌고 또 그러한 ‘과학적 사고’가 통치에도 일정 부분 영향을 미쳤다.
한편 메이저는 전 뮤직홀 연주자이자 정원 장식 사업을 하던 아버지의 늦둥이로 태어났다.
메이저 가족은 ‘비밀이 많았’는데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메이저의 아버지에게 사생아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메이저 본인도 후에 그들의 존재를 알았고 또 접촉하기도 했다)
‘편안하긴 했지만 풍족하지는 못했다’라고 메이저는 유년 시절을 회상했다.
청소년기에는 가세가 급격히 기울어 브릭스턴(Brixton)으로 가족이 이사를 했는데, 그곳은 카리브해 출신 흑인 이주민들이 많은 곳이었고 북적이는 시장이 있는 등 서민적인 분위기의 공간이었다.
메이저는 처음에는 공부를 잘하는 편이었지만 가세가 기울고 이를 학교에서 숨겨야 하는 등의 심리적 어려움을 겪으면서 학업에 열의를 잃고 나아가 학교 자체에 회의를 가지게 되었다.
그가 유일하게 관심을 가졌던 건 크리켓(Cricket) 뿐이었다.
결국 그는 대학을 가지 못했고(또는 않았고), 성인이 된 후 아버지가 사망하고 어머니가 아프게 되면서 아버지의 정원 사업을 이어받아 생계를 꾸려 가야 했다.
그러다 최종적으로는 스탠다드차타드 은행의 은행원이 되었고 점점 사정이 나아졌으며 자신이 어렸을 때부터 관심을 가지던 정치에 더 열의를 품게 되었다.
메이저의 복잡한 인생 역정은 훨씬 더 사람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e.g.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할 수 있다.’), 다양성에 관용적(e.g. 보수당을 은은히 지배하던 인종주의에 대한 강한 거부)이게 만들어 주었다.
메이저가 자신의 주변에서 느낀 주거 문제라는 현실적인 문제의식에서 정치를 시작한 반면, 대처는 훨씬 더 뚜렷한 철학과 가치관 중심으로 정치에 접근했다.
그런 영향이었는지 몰라도, 대처는 ‘모두가 의존하고 남 탓하는 자세를 버리고 자신의 성공과 이니셔티브를 추구해야’라는 ‘자신의 정답’을 관철하려고 했고, 메이저는 ‘좀 더 관용적으로 있는 그대로의 현실적 변화를 유연하게 수용하여 전체적으로 조화와 안정을 추구해야’라는 자세를 보였다.
물론 메이저도 정치인으로서 야망을 지니고 있었지만, 기본적으로 메이저는 훨씬 더 합의와 조화 지향적인 리더였다.
대처 집권기의 요란하고 시끄러운 개혁의 시대를 지나, 메이저 집권기에는 큰 틀에서 기조를 유지하되 그 시대의 상처를 보듬고 나름대로 약간의 수정을 가하게 되었다.
‘일국보수주의자(One-nation Conservative)’, ‘계급 없는 사회(Classless Society)’, ‘스스로에 편안한 나라(A Country at ease with itself)’ 등은 메이저의 그러한 면모를 잘 보여준다.
개인적으로 메이저를 좋아하는 이유에는 약간의 편견도 깔려 있다.
우선, 나는 이공계만 겪은 사람이 정치를 하는 것을 그리 탐탁지 않게 생각한다.
좀 엄격하게 보자면 어떤 전공이 되었든 인문사회계가 정치를 하는 것이 타당하다.
꼭 전문성 때문은 아니다.
내 생각에 정치는 과학이라기보다 기술(Art)이다.
정치는 가치 지향적이고 불완전한 상황 속에서 선택을 강요받는 행위이다.
또 인간과 사회에 대한 감수성을 요구한다.
이공계적 사고는 분석 지향적이거나 정답 지향적인 경우가 상당히 많은데, 그런 사고가 대처처럼 편협한 경험과 가치관(중산층 가정, 모범생, 보수당 활동, 일반론적 지식, 개별적인 철학서 등 탐독)과 결합하면 정말 위험하고도 비현실적인 독선적 정치인이 탄생할 소지가 크다.
가치나 경험의 상대성, 인간의 복잡성과 다양성, 사회문화적 맥락 그에 따른 대처나 정책의 유연성 등을 충분히 감안하지 못할 가능성이 큰 것이다.
물론 인문학이나 사회과학을 대학에서 전공했다고 해서 그런 역량이 반드시 길러지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그런 경험을 한 것과 하지 않은 것의 차이는 있다.
좀 관대하게 보자면 적어도 인생 역정 속에 좀 더 이런저런 고뇌가 있고 불행을 아는 사람이 정치를 하는 게 맞다.
그런 사람은 어떤 의미에선 대학에서 문과를 전공한 사람보다 더 문과적 역량을 갖춘 사람이다.
자기가 보기에 이상적인 어떤 상태를, 그것도 현재와 매우 다른 방향으로 사람들의 의식 변동을 급진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보수라고 보기 어렵다.
메이저는 큰 틀에서 대처의 정책 기조에 동의했고 그의 판단력을 고평가했으나 내각에 있을 때 장애인 지원 예산 삭감 등에 반대하며 대처와 논쟁하기도 했다.
지금에 와서 볼 때, 훨씬 더 진정한 의미의 보수적 리더십을 구사했던 것은 대처보다는 메이저였다.
존 메이저는 분명 역사적으로 독보적인 리더십을 보인 총리는 결코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재임 6년간 대처주의가 남기고 한 거대한 상처를 나름대로 수습하고자 노력하였으며 이는 대처와는 반대의 리더십을 요했기에 애초에 호평을 받기가 어려웠다.
실로 그 과정은 그 자신이 사임을 생각할 정도로 매우 고통스러웠다.
그러나 그는 결국 그런 역경들을 어떻게든 헤쳐 나갔으며, 자신의 자서전에서의 평에 의하면 좀 더 견실한 경제를 후임자인 블레어에게 넘겨줄 수 있었다.
보수적 리더십은 그렇듯 눈에 띄지 않고 필요한 일들을 해내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존 메이저는 일정 부분 재평가받을 수 있고, 또 진정한 보수주의자라고 말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