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보통국가화를 위한 조건
한일관계가 좋다고 생각하는 국민들이 양국에서 모두 50%를 넘었다.
한국과 일본은 민주주의ㆍ시장경제 체제를 공유할 뿐 아니라 공동체, 조화, 상호연결성 등을 중시하는 동아시아적 가치도 공유하고 있다.
이를 기초로 구체적으로 어떤 인식적 틀을 통해 미래 한일관계를 설정할 것인가는 중요하다.
특히 역사ㆍ안보 문제는 한일관계의 제일 중요한 관건이다.
김대중ㆍ오부치 선언에는 한일이 군사협력을 도모한다는 말이 없다.
국제평화와 군축 등에서의 협력이 명시되어 있다.
당연한 것이 일본국헌법상 군을 보유하고 있지 않으니 군사동맹도 어불성설이다.
이미 아베 내각에 이르기까지 '해석개헌'을 통하여 자위대를 사실상의 군으로 보고 나아가 보통국가화 정확히는 군을 보유한 국가가 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일본에서 나오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김대중ㆍ오부치 선언에서는 또한 일본의 식민지배에 대한 역사적 책임도 명시하고 있다.
일본이 최근에 역사적 과오를 모호하게 넘어가거나 심지어는 왜곡된 인식을 하는 흐름들이 나타나기에 이르렀다.
우리나라에서도 그에 부화뇌동하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로서는 일본이 그렇게 나오는 한 일본의 보통국가화는 군국주의 시절의 망령이 보통국가라는 외피를 뒤집어 쓰고 되살아났다고 볼 수밖에 없다.
일본이 보통국가가 되는 것 자체는 막을 수 없고 막아서도 안 된다고 본다.
단, 일본이 군국주의 시절의 책임을 완전히 청산했을 때에만 그렇다.
그러지 않는 한 우리가 일본과 군사협력을 적극적으로 도모한다는 것은 일본의 역사왜곡ㆍ2차 인권침해를 방기하면서 해석개헌을 추인하는 꼴이 되므로 불가하다.
일본의 책임에는 크게 식민지배에 대한 포괄적ㆍ역사적 책임과 위안부ㆍ강제노역자 등 개인에 대한 구체적ㆍ인권적 책임이 있다.
내 생각으로 수십 년의 역사적ㆍ외교적 과정을 통해 전자는 충분히 매듭지어졌다고 본다.
그러나 후자에 관하여서는 아직 충분치 않다.
배상의 문제는 부차적인 것이고, 핵심은 일본의 국민과 정부가 일관되고 확실한 반성ㆍ성찰의 의식ㆍ자세를 지니고 보이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이제 '일본이 한국에 사과'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폭력에 대해 인권의 차원에서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사과하는 것"으로 나아가야 한다.
일본에선 국가 자존심이니 심지어 자학사관이라는 말까지 나오지만, 과거를 직시하는 자만이 강자라 할 수 있다.
일본이 그렇게 하지 못하는 한 '아름다운 일본'은 외피일 뿐 실상은 자존감은 없고 자존심만 세우는 셈이 된다.
우리나라에서도 이제 내셔널리즘을 넘어, 국가폭력에 대한 사죄의 차원에서 그 문제를 볼 필요가 있다.
그래야 한일관계와 역사ㆍ인권 문제를 부적절하게 연계하지 않을 수 있다.
신냉전 시대를 맞아 한국ㆍ일본은 주요 비서구 선진국들로서 특히 중국에 맞서 우리의 생활과 삶의 기초가 되는 원리와 가치를 지켜야 한다.
그러한 원리와 가치가 또한 한일관계의 긴장된 부분을 발전적으로 해소하는 실마리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양국 모두 진정한 화해와 발전으로 나아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