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파를 가리지 않고 더불어민주당의 많은 정치인들이 뉴딜과 FDR을 추앙한다.
뉴딜과 같은 포용적 사회정책과 경제정책을 기반으로 정치적 다수 연합을 형성하자는 것이 요지인 듯 싶다.
또 최근 이재명 후보가 장악한 민주당은 AI 산업 투자, 기본사회론 등으로 종래의 소비-수요에 대한 확대재정을 더 확대하고, 생산-공급에 대해서까지도 '돈 폭탄'과 정부개입을 예고하고 있다.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의 지적처럼 정작 현장의 목소리, 민간의 주도성은 없는 일방적 모양새이다.(민간과 현장의 목소리를 제대로 경청하지 않는 것은 최근 반도체 R&D 노동자 노동시간 규제완화 논쟁 때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산업ㆍ노동처럼 현장에서의 경청이 중요한 분야의 문제를 정치인들이 제대로 다루고 있느냐의 문제이기도 하다.)
게다가 우리 재정도 점점 많은 선진국처럼 재정수지와 재정건전성, 급증하는 지출수요 간의 최적균형점을 찾아야 하는 고민에 놓이고 있다.
실은 국제경제기구들은 우리나라를 온전한 선진경제로 보지 못하는 이유를 과도한 정부개입 심지어는 관치 때문으로 보는 듯도 하다.
여야를 막론하고 현재 대대적 재정 확대와 증세 유보 내지 심지어 감세를 함께 공약하고 있다.
아베노믹스와 비슷하지만 그것의 세 번째 화살이었던 구조개혁에 대한 논의는 부족하고, 두 번째 화살이었던 통화정책의 협조도 부재한다.
아베노믹스 당시 일본의 민주당계 정당들은 지속적으로 중장기 재정 전략 없이 국채 증가와 일본은행의 국채 매입으로 감당케 하는 것은 안 됨을 역설해왔다.
같은 사회자유주의의 자장을 공유하기는 하지만, 후세대인 내 입장에서도 뉴딜 모델이나 최근의 증세 없는 확대재정이 가능한 지 의문이 있다.
후자는 나중에 논하고 전자만 보도록 한다.
뉴딜에는 대공황과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환경이 전제되어 있었다.
이 환경의 사회경제적 조건으로서의 의의는 가계와 기업이 모두 소비와 생산의 여력이 바닥 났다는 점에 있다.
전후 재건 등을 위해서는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 소위 '빅 푸시 Big Push' 전략이 불가피했다.
또 이때는 산업의 측면에서 제조업이 융성하고 자본과 노동을 체계적으로 집약해 성장하는 외생적 성장 이론이 성장의 기본 모델이 되었다.
소비 측면에서 이전지출과 단결권 보장 등을 통해 노동과 복지의 양 측면에서 가계의 힘을 뒷받침하고, 공급 측면에서 부분적이기는 했지만 SOC 공공 사업 등을 통해 공적으로 고용을 직접 창출하기도 했다.
하지만 뉴딜 모델은 점차 민간이 여력을 되찾으면서 한계가 드러났다.
스태그플레이션은 오일 쇼크 등으로 인한 것이기는 했지만, 결국에는 공급 측면에서 더는 국가 주도의 체계적 기획이 통하지 않고 그와 연계된 소비 측면에서도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임금 상승이나 이전지출로는 가계의 구매력을 뒷받침할 수 없음을 의미했다.
그러한 상황 속에서 민영화를 통한 시장 확대와 규제 완화, 외환시장과 환율의 자유화, 자유무역 등을 통해 공급 측면의 활력을 열며, 복지를 축소하고 사람들이 경제적으로 자립하게 하여 재정 부담을 덜고자 했던 것이 신자유주의적 기획의 요체였다.
미국의 경우만 놓고 볼 때, 정치적 차원에서는 기존의 인종 등과 관련한 사회규범이 민주당 행정부의 민권운동의 수용 등을 거치면서 무너지자 남부가 공화당 지지세로 돌아서 보수화되면서 뉴딜 연합이 붕괴했다.
현대의 사회와 경제는 문화적 자유주의를 기반으로 다양한 삶의 방식이 병존하는 동시에 경제적으로는 기술 발전을 기반으로 인적 자본과 기업가 정신을 통해 내생적 성장 모델을 기초로 하고 있다.
사회문화적으로 일관되고 경제 중심의 합리적 사고가 강했던 20세기 후반의 근대성의 시대와는 다른 것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는 국가의 기획이나 규제는 복잡하고 정밀하게 고도화된 민간의 사회와 경제를 통제하기는 어렵다.
국가가 사회경제적으로 대대적으로 뒷받침하는 방식의 경제는 불가능하다.
문재인 정부 당시의 구상이었던 '국가가 마중물 역할을 하는 경제'는 민간 주도의 현대 사회와 경제에는 통하지 않는다.
결국 케인지안적 수요 관리는 단기 차원에서 그것도 수요 견인 디플레이션 등의 특수한 조건에서 유효한 것으로 보인다.
소비를 진작시키면 소비재 등의 수요가 증가하기는 하겠지만 그것만으로는 지속 가능한 성장 전략이라고 하기 어렵고 소비 진작 효과 자체도 불투명하다.
공적으로 고용을 창출하려면 정부가 국영화를 통해 민간 영역의 생산을 직접 하던지 아니면 토건 등이 주가 되는 SOC 사업을 확대해야 한다.
하지만 전자는 시장경제 질서에 반하는 일이고 후자는 전통적으로 정경유착과 인위적 경기부양을 금기시해 온 민주당의 경제정책 방침과는 맞지 않다. (그럼에도 불가피하게 토건 등이 아니라 문재인 정부에서 생활형 SOC 복합화 등의 제안을 내긴 했지만.)
실은 뉴딜은 비유적인 표현이기는 한 것으로 보인다.
소득주도성장에 가리긴 했지만, 그 못지 않게 중요하게 다뤄진 것이 혁신성장이었고 이를 위해 규제 샌드박스 등의 중요한 정책결정들이 이루어졌다.
또한 그린뉴딜의 기획도 살펴보면 정부가 일방적으로 생산 기획과 실행을 하겠다는 게 아니라 에너지 등 친환경 신산업에서 민관협력을 증진하여 산업 체제를 전환하겠다는 내용이다.
중요한 지적은 민주당이 이러한 지점을 살려야 한다는 점이다.
보육과 교육, 노동, 주거, 보건, 안전 등의 영역에서 정부가 생활자, 노동자, 소비자의 보호를 위해 개입해야 한다는 것이 기본적인 민주당의 확고한 방침이다.
산업과 금융 등 경제 영역에서는 민간의 창의와 자율을 최대한 지원하고 정부는 관치로 개입하거나 인위적으로 경기부양을 하지 않는다는 것 역시 중요한 민주당의 방침이었다.
복지와 성장을 서로 선순환할 수 있도록 사회투자와 혁신성장의 기치를 바탕으로 새로운 사회경제 모델로 전환하는 것이 핵심이 되어야 한다.
보통 현대사회의 변화, 민간의 자유와 창의, 복지를 인간존엄성의 차원만이 아니라 사회투자로 생각하는 인식 등 기존 사회자유주의-사회민주주의의 리뉴얼은 이미 90년대-2000년대에 사회학자 앤서니 기든스의 '제3의 길 Third Way'로 집약된다.
이 사상이 신자유주의의 아류 취급을 받으면서 퇴조했지만, 개인적으로는 제대로 운용한다면 지금도 가장 현실적인 사상이며 모델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AI의 부상 등으로 인해 생산과 노동 - 분배 - 소비의 연쇄가 절단되고 민간 주도라고는 하더라도 대내외적 불확실성과 계속되는 위기 등으로 자율적 성장 동력 등이 떨어졌음이 사실이다.
제3의 길이 예상했던 기술 발전이 고용으로 연결되는 경제라는 구상은 현실이 되지 못했다.
인적 자본 확충을 위해 교육에 대한 투자와 혁신을 대대적으로 감행하긴 했지만, 전공과 산업의 미스매칭 문제라던가 화이트 칼라 직종에서의 경쟁 과잉, 고등교육기관인 대학에 산업 인력 양성을 강요하면서 학술 연구가 퇴조하는 등의 문제가 발생했다.
오히려 상당수의 노동자들은 그러한 기술의 고도화에 따라가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노동시장 유연화는 복지 축소 등과 더불어 가계의 생계를 더 어렵게 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들을 반영해, '정부의 역할이 필요하다'라는 점은 가지고 가되 그 내용을 다음과 같이 설계할 필요가 있다.
저출생 기조를 꺾어 사회보장의 지속가능성을 제고하고, AI와 바이오 및 에너지 등 신산업들이 고용을 창출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등의 과제를 위해 구조개혁을 단행해야 한다.
문제는 이것이 장기적 과제이기 때문에, 중기적 차원까지는 앞서 설명한 끊어져 가는 생산과 노동 - 분배 - 소비의 고리를 방어하기 위해 정부가 가계를 재정으로 뒷받침할 필요가 있다.
정보와 금융의 발달을 통해 생겨난 고소득자와 자산가들은 정보-기술 격차와 그로 인한 불평등의 실례들인데, 재원 확보를 위해 이들의 노블리스 오블리주 등을 바탕으로 증세 등에 관한 사회적 합의를 이루어내야 한다.
규제의 설계와 운영 등에 있어 시장, 시민사회 등과 협력적 거버넌스를 구축해 단순히 정부가 위계적 감독자의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라 민간이 자율규제의 주체가 될 수 있도록 컴플라이언스를 지원해야 한다.
사회경제적 변동의 속도가 매우 빠르고 복잡하며 불확실성이 상시화되고 있으므로, 이에 따라 규제의 유효성은 시시각각 그 정도가 바뀌므로 규제의 감독과 통제를 세심하게 진행할 필요가 있다.
이외에도 여러 가지 과제가 있겠지만, 어쨌든 중요한 것은 정부는 이제 보다 세심해야 하며, 큰 정부와 작은 정부의 틀을 넘어 거버넌스의 틀 안에서 조정자, 주도자, 결정자의 역할을 하는 적정 내지 최적(Optimal) 정부가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