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가능성이나 탈(Post)성장이라는 말은 본래 생태와 환경 운동에서 온 말들이다.
그런데 난 사실 이 개념들이 그냥 순전히 사회만 놓고 볼 때에도 최근 들어 가장 유의미한 개념들이라고 생각한다.
온 정치권과 기업이 성장을 말한다.
그런데 이 나라 국민의 태반이 불안정한 노동자들이고 그들 중 다수가 피로 사회와 감정 노동과 노동조합/국가의 현저히 부족한 뒷받침에 시달린다.
노동시장 유연화는 벌써 20년도 더 된 이야기이다.
그동안 우리 삶의 질이 얼마나 나아진 것일까?
앨런 그린스펀이 말하던 것처럼 아예 최저임금제를 폐지해서 '자유시장'이 되면 최적의 시장균형과 자원배분이 달성되고 경제성장도 이루어지는 것일까?
그런데 가격하한제로 인해 줄어드는 노동수요를 막는다고 쳐도, 국가가 고용조건도 엉망인 그런 저질의 일자리라도 일자리는 일자리니까 만족하라고 국민에게 말해도 되는 건가?
누구를 위한 시장 청산(Market clearing)이고 경제성장인지?
강경한 자유시장론자들은 재산권과 국가로부터의 '경제적 자립'과 능력주의를 강조한다.
아무리 가난해도 노력하면 결국에는 능력에 따라 올라갈 수 있고 그에 따른 재산은 보장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마거릿 대처 총리 때부터 이어져 온 유구한 '복지병' 프레임은 지금까지도 이어져, 테레사 메이 총리는 재임 시절 PMQ(대총리질문)에서 긴축의 문제를 지적하는 제레미 코빈 노동당 대표에게 '우리는 사람들을 일해서 자립하도록 지원하고 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
하지만 이 모든 이야기들은 가스라이팅이다.
사람들은 일하지 않아서 나아지지 않는 게 아니고, 열심히 일한다고 나아지는 것도 아니며, 모든 사람이 똑같은 출발선상에서 자신만의 노력으로 성공하는 것도 아닌데다 재산권은 재산을 가진 사람에게나 유의미한 것이다.
워킹푸어(Working Poor) 또는 노동빈곤층이라는 말이 왜 나오는지를 생각해봐야 한다.
노동수요자인 기업들은 국제적 경쟁력이나 산업 특성 등의 이유로 '불가피하게' 독과점이나 원하청 관계를 형성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그러면 노동자들은 왜 생산요소의 특성 - 특히 인격과 분리될 수 없다는 - 을 감안해 연대하거나 단결하면 안 되는 것인가?
노동시장 유연화가 상정하는 세상은 수리적으로 자원배분이 최적화될 뿐만 아니라 예컨대 경기적 실업이나 지식정보 산업이나 전문직 등이 자유롭게 오가는 상황 등의 장밋빛 미래를 생각하는 것인지 모른다.
하지만 실제로는 육체노동, 감정노동, 지식노동이라던가 하는 종류와 양상만 다를 뿐, 그냥 사람을 그야말로 '생산요소'로 대우하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우리나라처럼 본래 평생직장인 정규직이 그나마 나았던 고용 관행 내지 문화는 미국과는 다르다.
또 우리나라 사람들은 유럽 사람들과 달리 애초에 복지는 권리가 아니라 네가 알아서 살아남아야 한다, 다 힘들다, 열심히 일하는 게 미덕이라고 배웠고 그러고 나서도 복지는 포퓰리즘이라는 소리를 들어야 했다.
게다가 고용 없는 성장이 만성화된 지는 이미 오래 되었고, 가정 배경과 무관하게 집을 소유한 중산층으로의 상승 사회이동은 이미 고난이도가 된 지 한참 되었다.
문재인 정부 때 부동산수요를 일괄적으로 규제해버려 논란이 되었지만, 사실 노후 대책이 마땅치 않은 판국에 가장 안정적인 자산은 부동산 밖에 없는 것도 현실이고 그 부동산을 소유할 재력을 가진 사람조차 많지 않다.
아무리 정부가 노력해도 단기에 노후보장이 향상될 리 없고 더구나 이제 우리나라 재정 여력이라는 것도 중기적으로는 재정건전성을 생각해 가면서 재정지출을 해야 할 판이라는데, 포괄적인 사회보장을 어떻게 기대하겠는가?
살아남자면 돈이 있어야 되는데, 당장 고용과 소득도 안정적이지 못한 마당에 노후를 생각한다는 건 사치일지도 모른다.
사람들이 한탄하고, 꼬이고, 깎아내리고, 자존심만이 아니라 자존감이 바닥으로 떨어져 내려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다.
사람을 갈아 넣어 성장을 한다는데, 기술 발전도 좋고 첨단 산업도 다 좋지만 그래서 결국 우리한테 남는 건 뭔가?
사람이 뭐 그리 대단한 존재는 아니라 하더라도 살아있는 한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들인데.. 예나 지금이나 어떻게 보면 계속 적응하라 적응하라 강요할 뿐, 여유를 가질 수 없게 한다.
더 잔인한 건 그런 세상을 구성한 것도 사람이라는 점이다.
조지 칼린은 개별적 사람은 좋은 이들이지만 집단이 되는 순간 아니라고 했다.
그리고 (좀 더 욕으로 말했지만) 우린 그냥 '다 괜찮다' 또는 '괜찮아질거다'라고 전 사회적으로 거짓말을 해오는 중일지 모른다.
정말 괜찮아지려면, 일단 문제를 냉정하게 직시해야 하고, 그 다음에 그 문제를 점진적으로라도 해결해낼 수 있는 각고의 노력이 있어야 한다.
이 사회가 이대로 가는 경우, 과연 생태와 환경이 아니더라도 지속가능할 지 솔직히 모르겠다.
나는 반(Anti)성장론자가 아니지만, 어쩌면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얘기는 성장이 아닌 다른 무언가일지도 모른다.
그런 점에서 탈(Post)성장이라는 개념을 떠올려 봄 직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