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위헌계엄 사태와 그 해소의 과정은 명과 암이 교차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다음 장으로 넘어왔지만, 위헌계엄 사태의 배후에 있던 근본적인 시대의 위기는 해결된 것이 아니다.
위헌계엄을 진압하고 극복할 수 있도록 해 준 것은 당시 윤석열 전 대통령 이하 계엄 주도자들의 허술함, 우리의 민주주의-법치주의 제도의 면역력, 국민들의 민주적 의식이었다.
그러나 동시에 군, 법원, 정부 등의 대응은 '소극적'이긴 했지만 계엄의 기획과 집행이 더 체계적이고 강하게 이루어졌을 경우 과연 사태가 어땠을 것인가를 의심하게 만들기도 했다.
게다가 국민의힘은 부지불식 간에 벌어진 국난 속에 계엄해제의결에 소극적으로 대응하는 등 수상쩍은 모습을 보였다.
또한 국민들은 처음에는 계엄에 대해 '대명천지에 이 무슨 황당한 짓이냐'라는 반응이었는데 탄핵심판 종결 즈음에는 여론의 40% 가까이가 사실상 소추 인용 반대에 서기도 했다.
계엄에 대한 정당화와 책임 희석 등을 위한 당시 여권 일각과 극우 세력의 적극적인 정치사회적 가스라이팅이 통한 부분도 있겠지만, 감정적인 영웅 서사 및 권위주의, 우익포퓰리즘 문화에 시나브로 물든 사람들도 상당했다는 시사점을 남긴다.
게다가 그 반대 측에서도 계엄심판론을 전 국민적-국가적 통합으로 만들지 못하고 탄핵 국면부터 이미 '진보 대 보수' 구도로 다시 귀결된 것처럼 보이게 만든 면이 있었다.
민주진보진영이 강경한 친명 중심 민주당으로 재편되면서, 민주적 다원성이 소멸하고 민주당 내외로 민주당의 감성과 논리를 극단화한 흑백, 선악 논리를 지닌 이들만 남았으니 통합이 될 리 없었다.
정치인들은 탄핵심판 과정에서도 정국을 수습하지 못하고 계속 서로 충돌하고 밀리면 진다는 듯이 싸워댔다.
위기 대응에서 최소한의 숨 고르기조차 없는 나라가 된 것이다.
이처럼 계엄 극복은 다른 나라들에게서 찬탄을 받았지만 우리 내부적으로는 한계나 우려의 지점들도 여실히 드러난 과정이었다.
앞으로 우리 사회가 한편으로는 계엄과 탄핵으로 인해 치명상을 입은 사회자본을 치유하고 통합을 도모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겸허하게 시스템과 규범이 중심이 된 내실 있는 민주주의를 만들어 나가는 데 집중해야 하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