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와 일본의 헌법을 통해 본
대한민국헌법
제20조
① 모든 국민은 종교의 자유를 가진다.
② 국교는 인정되지 아니하며, 종교와 정치는 분리된다.
일본국헌법
제20조
① 누구든지 종교의 자유가 보장된다. 어떠한 종교 단체든지 국가로부터 특권을 받거나 정치상 권력을 행사하여서는 아니 된다.
② 누구든지 종교상의 행위, 축전, 의식 또는 행사 참가를 강요당하지 아니한다.
③ 국가 및 그 기관은 종교 교육, 그 밖의 어떠한 종교적 활동을 하여서는 아니 된다.
1994년 1월 자민당 중의원 의원 가메이 시즈카, 시마무라 요시노부 등이 ‘헌법 제20조를 생각하는 회’를 결성했는데 초선 의원 아베 신조도 참여. 또 가메이 등은 창가학회에 비판적인 종교단체나 전문가들을 불러 ‘종교와 정신성의 존엄과 자유를 확립하는 각계 간담회(통칭 4월회)’ 설립.
설립 총회에 고노 요헤이 자민당 총재, 무라야마 도미이치 사회당 위원장, 다케무라 마사요시 신당 사키가케 대표 출석. 고노가 인사말에서 ‘권력의 중심에 종교단체와 지극히 밀접한 관계를 가지는 정당이 자리잡고 정치에서 권력을 행사하고 있는 상황이다. 또한 이들이 국가에 특권을 가지는 상황이 눈앞에 있다.’라고 하였고 무라야마, 다케무라도 동조.
후에 야마구치 나쓰오 공명당 대표는 ‘일본국헌법에서 정한 정교분리 원칙은 특정 종교단체의 정치활동을 금지하는 것이 아닙니다. 국가가 특정 종교를 우대하거나 배척해서는 안 된다 라는 것이 올바른 해석입니다.’라고 말함.
공명당은 홈페이지에서 ‘국가권력이 특정 종교를 옹호하거나 국민에게 강제하는 것을 금하는 것이 정교분리의 원칙입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우선 전전/전중에 실제했던 군사정권/국가가 국가신토를 강요하거나 천황 폐하를 신으로 모시고 사상 통제를 하려고 했던 것 등입니다.’라고 함.
정교분리는 종교의 자유와 함께 규정되는 것으로서 같은 맥락으로 이해될 필요가 있다.
종교의 자유는 국민의 기본권이고, 구체적으로 국민이 어떤 종교건 자유롭게 믿을 수 있는 권리를 의미한다.
국가는 이러한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할 의무를 지는데, 그 구체적 내용이 정교분리라고 할 수 있다.
정교분리가 되지 않는다는 것은 국가가 특정 종교와 일체화되어 그 종교의 기준에 따라 판단한다는 것인데 그 자체가 정치권력을 특정 종교가 독점하게 되는 것이고 또한 다른 종교에 대한 차별이 일어날 개연성이 매우 높아지게 된다.
결국 종교의 자유의 실질적 보장을 위해서는 국가가 모든 종교를 평등하게 대하여야 하고, 그러려면 정교일체가 되어서는 아니 된다는 것이 정교분리 원칙의 의의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이것이 특정 종교단체가 정치활동 예컨대 창당과 선거 참여 나아가 정권에의 참여 등을 할 수 없음을 의미하는가?
우리나라 정당법상 정당이란 국민의 이익을 위하여 책임 있는 정치적 주장이나 정책을 추진하고 공직선거의 후보자를 추천 또는 지지함으로써 국민의 정치적 의사 형성에 참여함을 목적으로 하는 국민의 자발적 조직을 말한다.
정치사상과 종교사상을 내용적으로 엄밀히 구분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고, 헌법상 정당 설립의 자유가 보장(제8조 제1항)되는 이상 어떤 종교적 원리를 정치사상의 내용으로 하여 창당을 하고자 하여도 그것을 사전에 막을 법적 근거는 없다.
그리고 그러한 소위 ‘종교 정당’이 국회의원 등 공직선거에 후보자를 공천한다 해도, 당연한 말이지만 특정 종교를 믿는다고 하여 국민의 피선거권을 제한할 법적 근거도 전혀 없다.
제한하는 입법을 하는 경우 자의금지원칙에 반하여 평등권(헌법 제11조 제1항) 침해로 판단될 여지가 상당함은 물론이다.
따라서 종교 정당이 있는 것과, 그 종교 정당이 단순히 개별적인 신도들이 결집하여 만든 정당이건 특정 교단이 주도적으로 영향을 끼친 정당이건 그 설립과 활동을 막을 수는 없다.
또한 종교도 엄연히 대표를 인정받아야 할 국가사회의 목소리 중 하나라는 사실도 부인하기 어렵다.
그런데 문제의 핵심은 더 나아가 그러한 정당이 ‘정권에 참여’하는 경우이다.
공명당이 창당된 지 벌써 30여 년이 지난 마당에 새삼스레 자민당이 공명당을 정조준한 것은 결국 당시 신진당의 지지 기반의 주요 원천이었던 창가학회를 바탕에 둔 공명당을 끊어내겠다는 정치적 의도가 전제된 것이었다.
그리고 고노 요헤이, 가메이 시즈카 등 자민당 측 비판의 핵심 전제는 ‘공명당이 정권에 참여’한다는 점이었다.
일본국헌법에서는 정교분리 원리가 조금 더 구체적으로 명기되어, ‘어떠한 종교 단체든지 국가로부터 특권을 받거나 정치상 권력을 행사하여서는 아니 된다.’라고 하였다.
공명당 측은 이를 동조 제2항, 제3항과 연계하여 ‘국가 및 그 기관은 종교 교육, 그 밖의 어떠한 종교적 활동을 하여서는 아니’ 된다는 맥락에서 국가가 국민에게 특정 종교를 강요하지 말라는 의미로 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정치상 권력을 행사하여서는 아니 된다’라는 말은 말 그대로 해석될 것이지, 반드시 ‘국가가 특정 종교를 국민에게 강요’하는 맥락에서만 이해될 것은 아니다.
‘정치상 권력’은 통상 공직선거에 참여하여 당선자를 내거나, 심지어는 비선으로 정권에 영향을 끼치거나 하는 것이 있을 텐데 엄격히 해석하자면 결국 종교단체는 어떤 형태로건 조직적으로 공직선거에 임할 수는 없고 신도들은 단지 개별적으로 피선거권을 지닐 뿐일 것이다.
문제는 양자를 구분할 방법도 명분도 달리 없으므로 현실적으로는 앞서 언급했듯 종교단체가 정당을 만들고 선출직 공직자를 배출하는 것까지는 막기 어렵다는 것이다.
하지만 만약 특정 종교단체의 정당이 단독 집권을 한다고 생각하면, 이것은 우리나라 헌법에서건 일본의 헌법에서건 정교분리 원리 위배의 소지가 상당하다고 본다.
앞서 설명했듯 정교분리 원리는 국가가 모든 종교를 평등하게 대하는 것 즉 구체적으로는 특정 종교에만 편중된 지원을 하는 것에서부터 특정 종교를 국교로 공인하기에 이르기까지의 일체의 행위들을 하지 않음으로써 국민의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런데 특정 종교단체가 정당을 통해 사실상 단독으로 권력을 장악한다면 그것은 문언적, 실질적으로 정교분리에 반하는 상태인 것일 뿐만 아니라 특정 종교에 편중될 개연성이 매우 높아져 결국 헌법상 정교분리 원리의 본령인 종교의 자유를 침해할 가능성이 커지게 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종교단체의 정당 설립과 선거 참여 등은 불가피한 일이지만, 특정 종교 정당이 단독 집권하거나 그에 준하는 영향력을 확보하는 경우에는 정교분리 원리에 반한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견지에서, 호소카와 내각과 하타 내각 당시 대략 20여 인이 되는 국무대신 중 공명당은 4~6인 정도의 각료를 맡아보았는데 이는 중의원 원내 4당(51석)이었던 공명당의 위상을 반영한 것이고 8당 연정이어서 이 경우 공명당의 정권 참여를 불가하다 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다만 공명당 서기장 이치카와 유이치가 오자와 이치로와 더불어 정권 실세라고 알려져 논란이 커지기는 하였으나 8당을 전부 합쳐도 과반이 되지 못했던 당시 비자민-비공산 연립정권, 제1당인 자민당이라는 거대 야당의 존재 등의 사정을 감안하면 공명당의 이때의 정권 참여를 헌법에 위배된다 할 것까지는 아니라고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