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현의 자유는 비판으로부터의 면책특권이 될 수 없다.
모든 표현은 논의의 대상이 된다.
예컨대 테토 에겐 이 구분은 매우 유해하다.
성격 구분이라는 말 속에 은은하게 부적절한 코드가 내포되어 있다.
젠더(사회적 성)ㆍ섹스(생물적 성)를 교묘하게 뒤섞어 젠더 고정관념을 강화한다.
테토남에 대한 은근한 정상화 의도가 깔려 있다는 회의적 의구심을 지우기 어렵기도 하다.
정치적 올바름이라 비판해도 할 수 없다.
적절한 건 각자 판단할 문제고 표현의 자유는 보장된다.
그러나 표현의 부적절성은 명백히 존재하고 그에 대한 비판을 그냥 면제 받을 자유까지 있는 건 아니다.
이 맥락에서 '싫으면 보지 말라'는 말은 고도로 위험하다.
그것이 공론장을 더욱 좁히고 듣고 싶은 말만 듣고 소통하지 않아 오늘날의 폐쇄적 음모론 자생 환경ㆍ포퓰리즘의 대두를 만들어 냈다.
토론ㆍ담론ㆍ공론이 없고 칭찬만 있는 사회는 죽은 사회다.
어떤 문화적 코드나 매체에 불편함이 있다 해도 그것이 정당화되는지를 또 논의해야 함은 물론이다.
그것이 성숙한 민주사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