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 설명, 숙의, 공존
설명의 윤리는 대학교수나 정치인 등 사회지도층의 중요 책무이다.
그게 없으면 계층ㆍ권력 등의 균열을 가로지르는 민주주의가 성립이 안 된다.
정보와 권력을 확보한 이들은 설명책무(Accountability)를 진다.
즉 자신의 지식ㆍ결정 등에 대한 맥락ㆍ사유 등을 풀어서 설명하고 납득할 수 있는 조건을 제공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기술관료제의 권위는 그냥 권위주의로서 일반사회를 지배한다.
사람들은 그러한 일방성을 감내하는 데 한계가 있고, 소통의 부재는 감정의 억압과 왜곡을 가져와 음모론ㆍ포퓰리즘ㆍ배외주의 등을 위한 사회심리적 토양을 제공하게 된다.
그러면 민주주의가 중우정치ㆍ다수의 폭정으로 흐르는 것은 순식간이다.
반대로 시민들도 책임 있는 주권 행사의 의무가 있다.
이제는 참여를 강조한 노무현의 패러다임은 유효기간이 다했다.
지금처럼 파편화된 가치관ㆍ라이프스타일과 그로 인한 균열, 불확실성ㆍ불안정성의 시대에는 실존ㆍ공존ㆍ지속가능성의 문제가 정의보다 앞선다.
시민의 지혜는 민주주의라는 말에 자동으로 전제되지 않는다.
참여는 넘쳐나지만 그 질이 심각하게 떨어지고 되려 민주주의에 해악이 되는 경우들이 많아진 것이다.
공론ㆍ담론ㆍ토론이 활성화되어 수평적 대화와 상호 이해를 통해 공존의 초석을 다져야 한다.
또 이를 통해 얼기설기 얽힌 현대사회의 사악한 문제들을 시민숙의를 통해 해결ㆍ돌파의 전기를 마련해 민주담론의 질과 시민의 정치적 책임감ㆍ정치효능감을 높여야 한다.
우리 모두가 공멸하는 길로 가서는 안 된다는 절박한 실존적 합의에서부터 출발해 공동체를 복원하는 것이 필요하다.
인류사회는 완벽한 적은 없었고 최악인 적만 여럿이었다.
그 최악의 새로운 차원이 최근 전 세계적으로 넘실거리고 있다.
민주사회의 최대장점인 회복탄력성을 회복하기 위한 시민들의 각성과 오피니언 리더십이 절실한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