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탈민주'한 이유

나의 이념 변천사

by 남재준

어렸을 때부터 정치에 관심이 있었는데, 그때는 아주 급진적인 사상에 동조했다.

사회주의나 진보주의, 우리나라 맥락에서 통합진보당 정도를 말이다.

무엇을 구체적으로 알아서 라기 보다는 오늘날 민주진보진영을 장악한 아주 강경한 기치인 '보수비정통론(보수는 자격이 없다)'에 기반했다.

그러나 시간이 조금 지나 중고등학교 정도 수준이었을 때에는 '역량 있는 진보'와 '비주류적 개혁 감성'에 동조했다.

사회자유주의~사회민주주의 중도좌파 쯤 되었다.

다시 대학 졸업 즈음 되면 더 중도화되어 중도~중도우파 정도 성향이 된다.

지금은 독자적인 사상 - 동아시아적 중도 공동체주의, 버크식 온건보수주의 등 - 을 지니고 있다.

이 글에서는 그 이유를 '내가 탈민주당한 이유'로 설명해 본다.

1. '권력을 잡아 진보를 이룬다'는 거짓말

민주당이 기울어진 운동장을 극복하도록 권력을 달라 해서 주었다.

그런데 결국 대놓고 퇴행적이었던 보수정당보다 더욱 가증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예컨대 소수자에게 불리한 구조ㆍ구도(진보정당만 보편적 인권의 문제인 성소수자 문제를 다루는 현실을 두고 그 이슈가 진보만의 것처럼 비치게 상대주의화하는 언론의 미필적 고의라던가.)를 스스로 재생산하기에 이르렀다.

2. 상징정치에만 강하고 현실정책에는 약하다

대단한 진보까진 아니라 쳐도, 민주당이 뭘 이뤄놨느냐 하는 의문이 있다.

이 지점은 노무현 대통령이 재임 기간 내내 고민하던 문제고("말은 좋은데.."), 문재인 정부 말엽에 '국민이 체감하는 변화'를 강조한 이유이기도 하다.

포괄적으로 국정 제반에 대해 현실성ㆍ유효성 있는 정책ㆍ입법들을 냈느냐에까지 회의가 많다.

패러다임ㆍ감성은 강한데 구체적 정책 성과ㆍ이니셔티브를 모르겠거나 엉망이다.

일례로 '학생들을 시험 부담에서 해방시킨다'라는 명목의 자유학기제가 있었다.

내가 중학교 때 후배들이 그 제도의 첫 적용자들이 되었다.

그러나 교육과정ㆍ교육평가 등 전반적인 제도ㆍ구조개혁이 없는 상황에서 그 제도는 결국 교사들부터 '그 기간에 국영수 사전 대비'를 권유하는 상황을 만들어냈다.

결국 사교육 좋은 일만 했던 것이다.

정책의 현장에서의 귀결을 예측 못한 건 1차적 치명타였다.

2차적으로는 권한의 문제로, 한국교육의 구조적ㆍ문화적 문제는 교육과정평가와 학사 운용 방향 등에 영향을 끼치는 교육청 차원에서는 애초에 해결할 수 없다.

그런데 정작 필요한 교육개혁이 아니라 교육자치분권에만 집착하는 민주당은 안 그래도 이해관계자가 많고 가치ㆍ서비스 중심이라 어려운 교육혁신을 두고 권한ㆍ업무를 국가교육위원회ㆍ교육부ㆍ시도교육청으로 계속 쪼갠다.

서울대 10개 만들기 같은 정책도 교육을 교육 중심으로 접근하지 않고 자꾸 지방자치분권 등의 차원에서 접근하는데서 비롯한 아마추어리즘이다.

냉정하게 말해 노무현은 아이디어는 많았지만 체계성ㆍ구체성이 부진했고, 문재인은 너무 소극적이고 구체적이고 강력한 포괄적인 드라이브가 없었다.

사실 노무현도 아이디어들이 많지만 다소 두서가 없고 하나로 체계화가 안 되는 느낌이었다.

말하자면 참여정부는 국정의 키가 뭔지가 다소 모호했다. (참여민주주의ㆍ균형발전ㆍ동북아시대.. 전부 따로 놀았다고 본다)

문제의식ㆍ정책의제 제기에는 강하지만 정책설계ㆍ현장에의 파급효과 고려ㆍ체계적 국정관리 등에는 약한, 그러니까 비주류 소수파 야당ㆍ운동권처럼 정권 운영을 했다. (후에 일본의 간 나오토 총리도 받은 지적이다)

다만 투쟁적 좌파 운동권이 아니라 생활형 시민 리버럴 운동권 정도의 차이였달까.

노무현 대통령은 투쟁적인 스타일은 아니었다.

좀 독특하고 논쟁에 뛰어드는 성격이었을 따름이지. (지금은 그런 지도자 한 명이 아쉽지만)

다만 한국정치가 그런 코드에 익숙지 못했고 또 그런 코드만 가지고 국정설계ㆍ주도를 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과연 인간이 아닌 정치인 노무현이 돌아온다면 받아들일 것인가가 별도의 문제가 된다)

개인적인 경험으로서는, 내가 이해당사자인 대입제도ㆍ로스쿨제도 등을 개혁하지 못했거나 제도의 희생자가 되게 만든 민주당 정권에 대해 원망이 큰 것이 중요한 이유로 작용했다.

다른 정책 영역에서도 전반적으로 솔리드한 전략ㆍ정책수단 조합ㆍ설계 능력이 부족했다.

어차피 민주당이 집권해도, 내가 이익 보는 것 내지 내가 믿는 바가 단기적으로 실현되어 체감하는 건 안 되는 것조차 이해했다.

그러나 최소 중장기적 개혁 의지도 안 보였다는 건 마지노선을 넘었다.

3. 추상적ㆍ사회적 담론과 도그마, 정작 학생을 대하는 데에서의 미숙함

대학에서 진보적 교수들이 추상적ㆍ감성적 정의론은 있지만 한 사람을 제대로 성의있게 대하는 법은 모르는 것 같았다.

202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다수의 독재ㆍ흑백논리ㆍ포퓰리즘으로 흐른 데 대한 반감과 피로감은 물론이었다.

4. 그래서 어디로?

그래서 세계적 차원에서 일국보수당, 수월회, 온건공화당 등 냉정하고 바닥에서부터 체감할 수 있는 현실적이고 체계적인 정책설계ㆍ국정 역량에 집중하는 세력에 눈을 돌리기에 이르렀다.

정책의 현장에서의 파급효과, 정책 간 연쇄작용, 정책시차, 정책수단과 전략 등 구체적인 문제에 대한 관심이 중요하다.

그것이 결국 국정의 성패와 국민의 삶의 안녕 여부를 가른다.

나는 이것이 제일 중요하다고 보았고, 민주당이 그러한 점을 충분히 중요하게 보는지 또 정책의 가치적 차원에서 일관된 원칙이 있는지 등에 대해 판단한 결과 거대한 회의를 더는 이기지 못하고 등을 돌리게 되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고생을 많이 한 얼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