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찰 없는 자기비하의 이기심과 짜증스러움
언뜻 보면 부드럽고, 예의 바르며, 자기비하적인 말투를 쓰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의 말은 조심스럽고, 피해의식을 앞세우지 않고, 오히려 자기 잘못을 자책하는 듯 보이기 때문에 상대는 순간적으로 동정이나 공감을 느끼게 되고, 판단을 유보하게 된다.
하지만 그런 태도 속에 감정만 있고 성찰이 없는 경우, 그 관계는 결국 파국을 맞게 된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신의 고통을 표현할 줄 알지만,
그 고통이 어떻게 타인에게 영향을 주었는지는 돌아보지 않기 때문이다.
이들은 종종 이렇게 말한다:
"나도 내가 싫다."
"나는 늘 상처받는다."
"내가 부족해서 그런 것 같다."
이런 말은 한편으로는 겸손해 보이고, 한편으로는 불쌍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그 말들 속에는 사람과 맥락에 따라서는 자기 감정에 대한 과잉 몰입만 있고, 상대방이 느꼈을 불편, 상처, 무력감에 대한 반성은 없다.
관계에서의 실패를 이야기하면서도, 그 원인을 상대가 나를 거절했기 때문이라거나 상대가 나이 차이를 이유로 멀어졌기 때문이라는 식으로 단순화한다.
하지만 실상은, 그들 스스로가 관계 안에서 어떤 단점들을 보였고, 어떤 방식으로 감정을 나누지 못했으며, 어떤 맥락에서 상대의 마음을 잃어갔는지에 대해서는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는다.
그래서 그들은 계속 “자기비하→자기연민→반복된 좌절”이라는 감정 회로 속에 갇히고, 다음 관계에서도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표면상으로는 무해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상대에게 감정적 부담을 주고, 자신은 항상 피해자 서사 안에서 면책받는 관계—그건 결국 불균형하고 위험한 구조다.
겉으로만 깊어 보이는 이러한 이들 중엔 철학이나 감정, 자기성장을 이야기할 때조차 그 언어들이 자신의 정당성을 강화하는 도구로만 작동한다.
철학을 삶의 태도로 사유하는 것이 아니라, “나는 이런 걸 생각하는 사람이다”라는 정체성의 껍질로 소비한다.
결국, 그 말은 부드럽지만 감정은 이기적이고, 그 고백은 아파 보이지만 성찰은 없고, 그 태도는 조심스러워 보이지만 책임은 없다.
그런 사람을 가련함이라는 감정의 포장지 너머로 볼 필요가 있다.
그들의 자기비하가 더는 자신을 흔들지 않도록, 그들의 말투 뒤에 감춰진 무책임과 자기중심성을 놓치지 않도록 해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