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의 전문성에 대한 단상

by 남재준

최근 국민의 집단지성에 대한 회의가 점점 깊어지면서, 과연 어느 정도 층위와 차원으로 '정치(를 비롯한 제반 인문사회계)의 전문성'에 대해 판단해야 할 것인가를 고민할 필요가 있게 되었다.


내 생각엔 결론은 다음과 같다.


1) '논의 주도자의 오피니언 리더십과 그의 전문언어-대중언어의 중간적 구사 능력'이 매우 중요하다.


2) 정치를 비롯한 시사 이슈들을 '소비'하는 자들은 입을 좀 닫아야 한다.


이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해 본다.


1. 문과와 이과


과학은 본질적으로 대중적이기 어렵고 그럴 필요도 없다.


과학적 사고와 방법론을 동원해 지식을 탐구하고 기술을 개발하는 등의 일은 범인(凡人)이 하기 어렵다.


과학이 필요한 건 사실 사람들이 창조론이나 백신음모론 같은 것을 믿지 않을 정도의 '권위'이다.


지식이 없는 건 어쩔 수 없어도 고도로 정제된 결론이나 판단을 부정하는 정도로 사고가 마비되는 건 안 된다.


이 지점에 중등교육까지 수학과 과학 교육이 필요한 이유가 있다.


한편 사회는 어떤가?


인문사회 내에서 언어야 말할 필요도 없이 일상생활에서 필요한 기초 소양임은 말할 나위가 없다.


그러나 사회는?


흔히 '시민교육'을 말하는데, 고교 수준의 사회교육을 받았다고 해서 그게 예컨대 투표에 도움이 되나?


실질적으로 학생이 스스로 건설적인 시민 의식을 형성하는 데 사회교육은 별다른 역할을 하고 있지 못하다.


그 반대가 사실이면 젊은 세대 사이에서 이토록 커뮤니티와 정체성 정치, 극단적 사고가 판치지 않았을 것이다.


차라리 시민교육과 전공 기초 교육을 명확히 분리해 공통사회 교육을 시민성의 제대로 된 함양을 위해 재설계하는 게 나을 것이다.


요는 중등교육 수준의 사회교육만으로는 시민성을 제대로 기르기에는 애매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정도 수준을 가지고 성인이 되었다고 해서 아무렇게나 사회문제 등에 대해 떠들 자격이 생기는 건 아니다.


2. 성인은 공론장에서의 발언권을 위한 최소한의 자격일 뿐이다


그렇다면 성인은 당연히 사회에 속한 '최소한의 판단력이 있는' 이들이니 사회문제에 대해 뭐든 말할 자격이 있을까?


소극적(최소한의 자격)으로 보면 그렇다.


하지만 청소년보다 못한 성인들도 수두룩하다.


우리는 지금 아테네처럼 비교적 작은 도시국가에 살고 있는 것이 아니고, 그 아테네에서는 시민에게 강한 시민적 덕성을 요구했다.


오늘날 형식화된 거대한 대의민주정에서 아무 생각 없이 떠들고 투표해대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아졌다.


사회와 경제는 거대하고 복잡해져서 누군가가 쉽게 말해도 되는 수준이 아니게 되었는데도.


연예 뉴스처럼 정치 뉴스를 소비하고 평가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는 동안에 사회 전체의 지속가능성을 위한 실질적 문제에 신경 썼어야 할 사회적 집중력은 전부 분산되거나 엉뚱한 곳에 집중된다.


3. 오피니언 리더십의 필요성


몽테스키외는 '국민은 국사를 직접 처리할 능력은 없으나 그것을 처리할 사람을 고를 능력은 있다'라고 말하였다.


모든 말이 그렇듯, 이 말도 맥락이 필요하다.


몽테스키외의 말은 국민이 스스로 그것을 자각하고 겸손해질 때 제대로 기능할 수 있다.


오늘날처럼 소수 여론 주도층이 너무나 자존심이 높아 자기라도 정치를 할 수 있겠다는 듯 떠드는 경우 국민의 용인술조차 흐려진다.


국민들은 정치 문제에 있어 감정과 오만을 내려놓고 보다 차분하고 겸손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이는 엘리트들에게 모든 전권을 쥐어 주어야 한다는 의미일까?


그렇지 않고, 그럴 수도 없다.


국민들이 근대 사회와 달리 기계적 전문성의 권위에 굴복하지 않는다.


그들은 단순히 끌고 갈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 최소한의 설명을 해야 할 존재들이다.


특히나 현대의 주요 현안들의 복잡성이 커지고 국민의 교육 수준이 높아진 만큼 설명, 조정, 제안 등의 공론 주도 리더십의 역할은 커졌다.


국회만이 아니라 국민들의 담론장 안에서 선동 없이 충분히 국민들을 이해시킬 수 있을 만큼의 '중간적 언어(과도한 전문성도 아니고, 과도한 단순화도 아닌)'가 매우 중요해진 것이다.


이것이 아예 국민과 단절되어 독단을 펼치거나 기만적으로 국민주권을 강조하면서 국민을 선동하는 엘리트들과 단절하고 생산적이고 지속가능한 민주주의를 유지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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