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세로 보는 생활과 정책 : 국민에서 정부수반까지

by 남재준

최근에 재미 있게 보고 있는 일본 애니 중 <출입금지 모구라>가 있다.

사실상 저승에서 '출입금지' 당한 선인 모구라 모모유키는 저승으로 가는 이정표가 되는 '혼'을 모으기 위해 마치 동방삭처럼 이승에서 오래도록 살아 가고 있다.

그러나 그도 이승에 있는 만큼 먹고는 살아야 하는데, 우습게도 '제일 무서웠던 사건'으로 태평양 전쟁도 아닌 '소비세 도입'을 꼽는다.

그러고 보면, 소비세는 일본 애니에서 농담 소재로 은근히 많이 나오는 주제이다.

<크레용 신짱>에선 아예 이걸로 하나의 에피소드까지 만들었다.

일본에선 소비세는 1989년 도입(3%) 이후 계속 인상되어 오늘날의 10%에 이른다.

참고로 우리나라에선 1977년에 도입했고 세율은 10%에서 변동이 없다.

우리나라와 일본이 모두 교육, 주택임대, 의료 등이 면세 범위에 들어간다.

일본의 경우 식료품, 신문구독료는 경감세율 8%가 적용되나 우리나라에는 그런 것은 없고 농수산물이 면세 범위에 들어간다.

일본에서 소비세는 주로 사회보장 재원으로서 기능하지만 우리나라에선 포괄적인 예산의 재원이다.

또 우리나라와 달리 일본의 소비세는 일부가 지방세로 나간다.

OECD 평균 소비세율이 약 19%임을 생각하면 한국과 일본의 소비세율은 상대적으로 높은 편은 아니다.

2,000원 정도 되는 원가의 음료수라 할 때 약 20%면 2,400원이 되고 10%면 2,200원이 될 텐데 서민들의 소비 심리라는 차원에서 볼 때는 (모구라 말마따나 매일 먹는 달걀을 먹을지 말지의 '뇌 내 회의'같은 것) 예민하게 다가온다.

세입 측면에서 볼 때, 우리나라의 소비세 즉 부가가치세는 법인세와 더불어 양대 세수 원천으로서 국세 중 약 30%의 비중을 차지한다.

간접세이기 때문에 직접세보다는 조세저항이 덜한 면(즉 납세의무자와 부담자가 다르다는 점)이 있어 세수 확보 용도로 정부가 소비세를 인상하는 측면이 있다.

하지만 소비세는 역진성이 있다.

말하자면 단일세율을 적용한다면 개별소비세를 제외하고 생각할 때 고가일수록 되려 세 부담이 덜하다는 점이다.

고가품 즉 비필수재일수록 상층이 소비할 테니 소비세에서의 역진성은 결국 단일세율로 상층이 소비에서 이득을 본다는 뜻이다.

게다가 경기침체가 만성화되면서 체감물가는 높음에도 임금이 물가를 따라가지 못한다.

한국에선 실질임금상승률이 약 0.9%를 기록했고 일본에선 아예 -0%대 후반~-1%대 초반을 기록했다.

구매력이 약화되는 상황 속에서 소비세는 가계를 불편하게 한다.

하지만 일본에서 이것이 특히 이슈되는 이유는 결국 정치인들과 정부에서 지난 30여 년 간 계속 소비세를 인상해 왔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 우리나라에선 가계의 반발을 의식하고 정치권에서도 눈치를 봤는지 무려 40여 년 간 세율이 그대로다.

앞서 언급했듯 우리나라와 일본은 모두 OECD 평균 대비 소비세율이 1/2 수준인데다 직접세(소득세, 재산세, 법인세 등) : 간접세의 총 세입 중 비율이 5:4로 대개 6:3 정도인 다른 국가들과 다르다.

사실 진퇴양난이긴 하다.

한편으로 (단기) 경기부양이라던가 (장기) 경제성장 지지 및 저출생과 고령화 지원, 증가하는 사회보장 및 사회간접자본 수요 등 지출 압박이 심화되고 있다.

그런데 어느 세목이건 세수가 들어올 환경이 여의치 않다.

소득세, 재산세, 소비세, 법인세 등 주요 세목 중 어느 것을 올리더라도 조세저항은 둘째 문제고 괜히 민간의 소비, 생산, 분배 심리에 찬물을 끼얹는 게 아닌가 하는 걱정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세수 확보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없으면 지속가능성이 붕괴한다.

대처주의(Thatcherism)와 같이 강경한 긴축재정 즉 예산을 줄여 버리면 되지 않느냐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미 시도된 바, 그 정책기조는 안정적 성장 기반을 만들지 못했고 사회적 균열과 양극화만 극단화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동아시아적 정서에도 맞지 않는다.

실제로 우리나라 개혁신당이나 일본유신회는 그런 기조를 따르는 것으로 보이지만 엘리트들의 한가한 소리에 불과하다.

그런 기조를 따르면 결국 불만을 품은 서민들이 더욱 포퓰리즘을 따르게 될 것이다.

능력주의는 이론적으로나 완벽할 뿐, 설령 그게 공정하다손 치더라도 약자들과 빈자들은 그런 모욕을 참지 않는다.

일본이 그래도 비교적 우리보다는 용기가 있긴 했다.

간접세인 소비세 밖엔 건드리지 못했으나 적어도 재정적 지속가능성을 생각하기는 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전혀 그렇게 하지 못했다.

한일 양국이 모두 단기 경기, 장기 성장ㆍ생산성, 인구구조변동과 디지털ㆍ그린 전환 등 사회변동, 재정건전성 등 여러 지표들을 균형적으로 최적화할 중장기 전략을 필요로 한다.

예컨대 중등교육혁신은 자아가 형성되는 청소년기의 경험을 양질화하는데, 이는 고등교육 역량을 제고하여 학술연구 역량과 기업가정신 등 혁신 역량을 제고한다.

이러한 파급효과가 인적자본의 축적과 국가적 인재 양성 및 생산성 향상을 통한 장기 성장 기반을 마련할 수 있게 한다.

한 청소년기 여성이 있는데, 물리학에 재능이 있지만 집안 배경이 여의치 않다고 하자.

이 여성은 한국의 현실에선 상위권 대학 물리학과 진학을 기대하기 어렵다.

정보와 경제적 여유 부족 등은 경쟁에의 1차적 진입 장벽이 되고 구체적으로 학생부나 주요 과목 성적의 부진 등이 2차적 진입 장벽이 된다.

게다가 설령 고교에서 어느 정도 노력으로 극복이 되더라도 고교에서의 자유롭지 못한 학업 경험과 굳어진 사고 등을 대학에서 처음부터 다시 계발하면서 학비 부담 등도 감당해야한다.

또 대학 졸업 후에도 최소 수년 간의 학업 부담을 감당키 어렵다.

결혼하는 경우 양육 부담의 전가 우려를 배제하기 어려우며 취업을 하더라도 유리 천장이나 미세 감정노동 등이 없기 어렵다.

결국 이러한 생애과정을 간략히 볼 때 우리는 전반적으로 입시 간소화ㆍ구체적 전공적합성 및 역량 중심 대입ㆍ장학 강화ㆍ양육 부담 균등화 등 여러 유기적 정책 패키지를 생각할 수 있다.

이는 청소년기부터의 자율과 책임에 기초한 인격 및 역량 함양ㆍ여성 참획 활성화ㆍ버려지는 인재 없이 적재적소에ㆍ기초연구 활성화ㆍ생산성과 성장 기반 마련ㆍ저출생 극복 등 다양하고 복합적인 정책 효과를 생각할 수 있게 한다.

일본의 경우, 유기적인 중장기 전략의 필요성은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다만 내적인 모순의 문제가 보인다.

일부분을 보면, 일본 자민당은 한편으론 고용 확대ㆍ물가상승을 상회하는 임금 상승 등을 통해 소비와 내수를 진작하고자 하면서 다른 한편으론 사회보장 등 장기적 재정수요에 소비세 인상으로 대응하려고 한다.

자민당의 주장대로 전자가 단기, 후자가 장기의 문제로 분리해 작용한다면 문제가 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소비세는 역진성이 강하고, 결국 소비를 진작시키면서 찬물을 끼얹는 병 주고 약 주기가 되어 디플레이션 탈출과 성장세 회복이 계속 애매해진다.

즉 단일세율 10%는 고가품ㆍ비필수재 소비일수록 유리하고, 통상 그러한 소비는 상층에 많다.

하지만 중하층 즉 서민에게는 반대로 작용한다.

누진성보다는 역진성이 중장기적으로 경제에 더 치명적이다.

그런데 적어도 일본은 직접세를 건드리지 못한다는 점에서 겁쟁이라 할 순 있지만 소비세를 인상한다는 대안이라도 냈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한국은?

한국은 일본과 달리 재정 운용도 정치저럼 감정적ㆍ이념적ㆍ단기적인데, 대신에 조세정의와 형평 등이 작용해서인지 보수ㆍ민주 정부를 막론하고 직접세를 많이 건드렸다. (노무현 정부의 종합부동산세, 박근혜 정부의 소득 1.5억 원 초과 40% 세율 구간 부활 등)

소비세는 1977년 도입 이후 내리 10%이다.

우리나라의 재정 운용은 세제보다는 예산의 문제가 우선일 수 있다.

말하자면 유기적 구조개혁과 전략적 예산 지출이 없이, 정무적ㆍ단기적ㆍ개별적ㆍ선심성 예산 퍼붓기가 많다.

이는 5년 안에 성과를 내고자 하고 그전부터 심했던 정치적 양극화 하에서의 역사적 정체성 대립에 근거해 어떻게든 민심을 놓치지 않으려는 정무적 고려 우선이 기저에 있다.

일례로, 이번 민생회복지원금제도는 일시적이고 단발적이다.

일시적 펌핑이고 근본적 구매력 상승이 아니니 인플레이션 우려는 과도하다.

하지만 생산성이나 구매력에 기여하는 전략적 지출이나 구조적 개선에 쓸 수도 있는 재원이었다.

놀랍게도 우리 국민의 반절은 증세에 반대하진 않고, 우리의 국채 부담이 일본만큼 심하진 않다.

그러나 '양극화의 극단화' 상황에서 성숙한 중장기 전략을 말하는 것이 사치로 느껴질 만큼 우리의 정치문화ㆍ인식론의 코드는 퇴보해 있다.

정치권과 국민은 운동장에서 공론장으로, 광장에서 도서관ㆍ타운홀로 넘어오는 데 실패했다.

이것이 한국정치의 근원적 문제이다.

결국 선거적 필요성이 정치의 중요 요인이 되는데 어떻게 보면 역설적이게도 일당우위제가 양당제보다 그 점에선 낫게 되는 듯 하다.

그놈의 정무적 필요 때문에 말만 민생이고 정책 논의가 공론의 초점이 잘 안 된다.

5년 단임이면 임기보장이 사실상 없는 일본 총리보다 대한민국 대통령이 조건은 훨씬 나은거다.

의회나 정당에 구속되지 않고 국민에게만 책임지고.

그런데 일본 총리들은 한국 대통령들과 달리 국정 초짜가 드물다.

관료들에게 거부감을 느낀다면서도 중장기 지속가능성 같은 것 자체를 관료에게 의존하게 된다.

일본을 관료국가라 하지만 그래도 자민당의 그립이 강한데 우린 행정권이 분리된 대통령제 국가이면서도 일본보다 못하다고 볼 여지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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