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눌렸지만 억누르지 못하는 세대?

by 남재준

우리 세대가 점점 더 권위주의에서 개인주의로 가는 스펙트럼에 있는 것은 맞다.
*스펙트럼이라는 개념은 중요하다. 우리는 대체로 권위주의와 그 반대가 서로 혼합되되 전자 내지 후자의 볼륨이 더 높은 쪽에 있다. 단순히 권위주의 -1 = 개인주의 +1 이런 식으로 단적으로 이해할 수 없다.

그러한 맥락에서 교권 논쟁처럼 우리 자신은 억눌려서 자랐는데 우리는 덜 억눌러야 한다는 불공평에 대한 지적이 있다.

오히려 너무 자기중심적이고 나약하게 자기의 이익만 주장하는 세대는 아닌가?

생각해보자.

모든 것에는 양면성이 있다.

그러면 교사가 쉽게 학생에게 손을 대는 노골적인 권위주의 체제로 돌아갈 것인가?

미시적으로 보면 예컨대 X세대조차 체벌이 없던 시기가 아니었으므로 지금 MZ세대가 그렇게 투덜거린다면 한심하게 볼 것이다.

미래는 아직 알 수 없고 과거는 이미 지나간 것이므로 우리 세대가 특별히 더 불행하다는 주장은 자기중심적이다. (모든 세대에게는 각자의 독자적 고통과 시련의 맥락이 있다. 그러나 세대 간 비교를 전제하고 불평하는 것은 타당치 않다.)

우리가 원하는 것이 고작 가해자가 된 피해자의 되물림인가?

우리 사회에는 이러한 일이 너무 많다.

자기 단계에서 업의 고리를 끊지 못하고 한에 사로잡힌 것처럼 보인다.

자율은 방임의 다른 말이 아니다.

자율을 표방하지만 방임과 방종이 실체일 수도 있다.

그런 경우의 폐단을 자율의 책임으로 전가하는 것은 그릇되다.

자율은 권리와 의무의 균형 및 자기 절제와 타인 관용을 전제로 한다.

또한 인간이 사회적 존재인 이상 누군가 의도하지 않아도 어떤 식으로건 일상적으로 사회적 영향과 압력 하에 있게 된다.

그것을 가볍게 여기고 자유와 인권의 보장을 방임이라는 것처럼 주장하면서 대안은 내놓지 않고 불평만 늘어놓으니 갈등만 지속되고 진전이 없다.

사제 관계의 배후에는 장유 관계 즉 어른과 아이의 위계적 관계가 이미 있다.

어른은 아이를 지도하는 존재이고 아이의 목소리는 묻히는 경우가 많다.

아이라는 이유로 고등학교 때까지 그들은 침묵을 요구받는다.

이런 사회문화적 맥락과 사회적 관계 등의 본질은 달라진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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