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적 보수주의자

by 남재준

나는 보수주의자다.


현실정치의 맥락이 아닌, 이론적 또는 방법론적 의미에서.


인간의 본성에 대해 신뢰하지 않고, 더구나 집단의 본성은 더욱 불신하며 따라서 민주주의에 대해서도 다소 회의적으로 본다. (국민들은 자기 스스로 벌여 놓은 결과에 대해 탓하기를 매 선거마다 반복한다.)


(완전히는 아니나) 지속되어 온 것과 역사적 지혜를 믿으며, 거시적 변화보다는 미시적 안정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민주주의는 이론적 모델 그 자체가 완벽해서가 아니라 역사적으로 어떻게든 안착되었고 이제까지 역사적으로 실험해 본 모델 중에는 가장 인간존엄성에 부합한다.


그러나 또한 민주주의는 태생적으로 불완전한 시스템이고 따라서 자유주의, 법치주의, 입헌주의 등의 통제를 요한다.


대개 삶이나 사회는 거시적 변화가 미시적 긍정까지 가져오거나 미시적 변화가 거시적 긍정까지 가져오기 보다는, 거시적 변화가 미시적 혼란을 가져오거나 미시적 복잡성이 거시적 불확실성을 만들어 낸다.


그래서 거시적 변화(내지 충격)를 통해 미시적 혼란을 감당할 것이냐, 아니면 미시적 안정을 확보하는 대신 거시적 불변을 택할 것이냐 라고 본다면 불가피하게 후자를 택하겠다.


그렇지만 동시에 수구와 보수의 구분점으로서, 필요한 변화에 대한 수용과 나아가서는 유기적이고 세심한 능동적 변화의 가능성에 대해서도 완전히 거부할 생각 또한 없다.


인간의 제도나 과학기술 등을 통한 진보에 대해 회의적으로 보며, 결국 인간의 문화변동이 없이 제도나 기술만 가지고서 개선을 이룰 수 없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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