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괴한 세상

by 남재준

해괴한 세상이 되었다.

성숙한 척이라도 제대로 하려고 하는 시도라고는 보이지 않고, 구색 맞추기만 심해졌다.

실은 그 본체는 조금도 물러서지 않아야, 더 뻔뻔해져야, 버티면 결국 우리가 이기게 되어 있다는 심리이다.

제도는 사람이 만든 것이고 특히나 정치는 결국 사람이 움직인다.

따라서 민주주의라는 것도 쉽게 중우정치ㆍ포퓰리즘으로 전락할 수 있다.

이는 독재같은 것보다 훨씬 덜 드러나는 침식(내지 후퇴, Backsliding)이기 때문에 더욱 위험하다.

실제로는 침묵하는 (중도적) 다수가 있건 없건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제도권의 핵심을 양측의 강경파와 그 팬덤이 장악한 상황에서 양극화는 극단화되고 계속 그 극점을 경신하고 있다.

지금 민주당에서 주도하고 있는 여러 입법들은 보다 차분하게 여러 논의를 거쳐 제도나 시스템의 운영적 타당성이라던가 현실적인 복잡한 행위 주체들의 심리 등을 감안해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민주당은 국정 전체의 기조는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자신들이 중점적으로 정치적 정체성을 걸고 추진하는 검찰개혁 등에 사활을 건다.

사실 상법의 경우에도 과연 그것이 종래의 회사법 체계를 흐트러뜨리는 게 아닌가 하는 지적이 있었다.

노동법도 노동운동의 활성화를 허용하는 것도 중요할 수 있겠으나, 일전에 국민의힘이 여당 시절에 추진했던 취약 노동자 지원 서비스 입법을 보강하는 것도 실효적 안으로 생각해 봄 직 했다.

국민의힘 역시도 책임 있는 국정 감시자ㆍ비판자보다는 '우리를 멸하려는 좌파 독재 정권에 대한 항쟁'을 재시작한 모양새다.

세간의 시선을 의식해 대화하는 모양새를 취한다지만 길게 볼 때 양측의 극명한 의견 대립은 결국 밑천을 금방 드러내게 만들 것이 자명하다.

강경한 태도와 사고는 쉽게 흑백 논리로 이어지고 대화를 항복처럼 여기게 만들며 현실의 복잡성을 외면하게 한다.

국민주권은 헌법의 기본원리이긴 하나 국정원리일 수는 없다.

이는 체제의 원리이니 결국 이전 정권이 그것을 부인했고 자신들이 이를 회복했음을 강조하는 정체성 정치의 연장선상이나 정작 거기에 국민의 구체적 삶과 정책은 없다.

다만 정적들에 대한 빤히 보이는 적대감과 일방통행식 '대화 요청'이다.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평시 수준에서 한계까지 계속 시험하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는데, 이 역시도 윤석열 정부와는 다른 차원에서 민주헌정의 위기라고 보아야 한다.

특히나 누구도 진지한 위기 의식을 갖지 않고 다시 이전투구로 뛰어든 지금의 상황에서는 더욱.

요즘 우리 정치의 문제의 요체는 구체적인 것보다는 포괄적인 태도와 바이브의 차원에서 인테그리티(Integrity, 무결성ㆍ성실성)이다.

양측이 계속 극렬하게 충돌하는 동안 공고화되었던 민주주의라는 지반이 균열되고 장기적으로 붕괴의 위험을 보이는 것이 이 시대의 가장 심각한 위험이다.

또 하나의 심각한 위험은 상당히 많은 이들이 위기를 지각하지만 아무도 나서지 못하거나 리더십이 없는 상황이라는, 역사적으로 파국으로 향하던 시퀀스와 꽤 유사한 양상을 띤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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