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의 길(Third Way)을 다시 생각하며
싱크탱크 등을 통한 정책적 준비 없이 해외 견문만 다니다 반사적 이익으로 압승해 집권한 키어 스타머 총리가 영 쉽지 않아 보인다.
새로운 신노동당('New' New Labour)이라는, 블레어-브라운 시절 노동당을 미묘하게 새롭지만 새롭지 않은(?) 식으로 그냥 가져왔다는 말도 있다.
신노동당 노선은 일리가 있는데, 스타머 총리는 그런 흐름에 딱히 진심으로 동의하거나 하는 것 같지 않고 자기만의 신념 또는 노동당에서 종래에 내려오던 이념 중 어느 것도 분명해 보이지 않는다.
차라리 신노동당 시절의 이념을 제대로 가져왔으면 나쁘지 않았을 수도 있다.
물론 거시경제 자체가 견조했던 그때와 지금은 매우 다르지만, 노선을 잘 수정하면 모델의 골격 자체는 쓸만하다.
사실 어떻게 보면 내 정치 성향은 지나간 시대(bygone era, 새삼 생각나서 써 본 영단어)의 것이긴 하다.
정책적으로 보면 90년대-2000년대 '리뉴얼'된 '제3의 길(Third Way)' 버전 중도좌파(사회자유주의/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이 대대적으로 부상하고 집권했는데, 이 맥락에 동의하게 된다. (일본 민주당, 한국의 국민의 정부+참여정부, 미국의 카터 행정부&클린턴 행정부, 영국의 블레어 내각&브라운 내각 등)
물론 제3의 길 정치의 몇 가지 특징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예컨대 세계화에 대한 과도한 의미 부여 / 지식정보 기반 경제에 대한 과도한 신뢰 / 노동시장 유연화 등이 그렇다.
그러나 분명히 제3의 길은 종래 관성적 케인지안 확대재정에 의존하고 있던 세계의 중도좌파 정당들에 경종을 울렸다.
지금 생각해보면 단순한 신자유주의에 대한 항복이라기 보다, 근본적인 사회변동이 이미 발생하고 있었다.
그것은 사실 산업구조의 전환에서 온 것이었다.
국가가 부양하고 제조업이 융성한 시대에서, 복잡한 시장과 첨단산업의 시대로 넘어가고 있었던 참이었다.
한편으로 80년대의 급진적인 신자유주의 구조개혁은 사회에 깊은 상처를 남기기도 했다.
그래서 90년대에는 경제도 중요하지만 사회문화에도 균형적으로 신경을 써야 한다는 입장이 대두했다.
행정학적으로는 신공공관리에서 신공공서비스/뉴거버넌스로의 이행이라고 할 수 있겠다.
시민사회&사회투자국가가 개발국가&복지국가와 야경국가&시장의 대안으로서 제시되었다.
개인적으로는 현재에도 모델의 기본 골격은 필요하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다만 종래의 계급 정치에 기반한 사회민주주의로는 그러한 골격은 계급 배반이요 보수 세력과 크게 다를 바 없는 것처럼 된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이념적 충성도에 얽매이지 않는다면 배신이랄 것도 없다.
현실적으로 불안정노동이 만성화된 상태에서 노동조합을 강화하고 실효성 있는 노동권 구제 주체로 두기가 쉽지 않다.
노동시장 유연화보다는 생활자의 생계 안정을 최우선으로 두는 것이 필요하고, 이러한 맥락에서 비정규직의 단계적 축소와 대우 보장 및 고용 창출이 가능한 신산업의 창출 등이 요구된다.
물론 국가가 그러한 일들을 전담할 수는 없고, 공공 일자리가 마중물이 된다는 견해도 순진한 발상이다.
시장은 현실적이고 가장 타당한 메커니즘인데, 그것을 존중하면서도 신중한 정부 개입과 중기 재정건전성 유지를 위한 전략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