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우정치는 언제나 '오래된 미래'에 가깝다.
그들이 인식하는 현실이나 지향하는 이상은 사람들의 마음 속 깊은 곳에 있는 어둠(e.g. 외국인 혐오)이다.
이 점에서 그들은 항상 사람들의 본능적 어둠을 자극해왔다.
그러나 실제로는 순혈 국가와 같은 것은 존재한 적이 없고, 가장 빛나던 시대(e.g. 제국주의 시대)조차도 근본적 병폐(e.g. 극단적으로 열악한 노동조건)들이 여럿 있었다.
이민자들은 긍정적 영향과 부정적 영향을 둘 다 미쳤다.
이것은 객관적 사실이다.
그러나 세계는 분명 이주와 교류가 더 활성화되는 방향으로 흘러왔다.
민족이라는 것은 국가의 응집력을 위해 만들어진 개념이라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자국 전통문화의 보존은 필요한 것이지만 사람의 자유로운 이동이나 문화적 출신 등에 따라 차별하는 등의 행위는 차원이 다른 문제이다.
어려운 문제일수록 직시하고 함께 대책을 논의하고 기획함이 타당하다.
극우 세력의 경제정책이란 일관성이 거의 전무하다.
극단적인 시장근본주의는 일시적으로는 경제적 기득권층을 만족시키겠지만 장기적으로는 사회적 모순을 극대화한다.
극단적인 적자지출 구조와 부채의 축적은 결국 어느 순간 근본적인 재정위기를 가져오고 더 큰 긴축을 감당하게 만들 수 있다.
무역 장벽은 보복을 가져오고 우호 관계를 손상시키며 장래에는 결국 외교안보 차원의 위기를 유발한다.
트럼프 행정부의 예처럼 극단주의 정권이 특별히 복지에 더 신경을 쓰는 것조차 아니다.
각별히 계급배반적 투표니 하는 것을 언급할 필요 없이, 결국 다소 답답하고 싫더라도 지속가능한 방향을 택하느냐 아니면 단적으로 스펙터클하고 그럴 듯해 보이지만 결국 지속불가능한 파멸을 택하느냐의 차이이다.
자유민주주의 원리를 지키는 문제는 단순한 반공주의나 냉전적 사고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삶의 방식(Our Way of Life)'을 지키는 문제이다.
인류사회라면 모두 병폐가 있지만, 그것을 스스로 고치고 학습할 가능성이 있는 체제와 그렇지 않은 체제의 역사적 운명 간의 차이는 크다.
또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를 보장하는 체제와 그렇지 않은 체제의 운명의 차이도 크다.
우리 세대의 세계가 이 점을 좀 더 중하게 생각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