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부총리 폐지, 지금은 90년대-2000년대와 다르다

by 남재준

이재명 정부가 사회부총리제를 폐지한다고 한다.


절대로 동의하기 어려운 일이다.


물론 사회부총리가 경제-산업-금융 등이 보다 물질적, 유기적으로 연계되어 있는 경제정책 분야에 비해서는 상호 연계성이 떨어져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제는 사정이 달라졌다.


2030년을 향해 달려가는 상황에서 현대사회는 그 어느 때보다 사회정책 분야가 중요해지면서 동시에 만성화되는 경기침체로 인해 재정의 압박이 심해지고 있다.


'사회적인 것'이 사라지기 때문에 반사회적인 행동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지우기 어렵다.


그렇다고 강제로 공동체적 유대감을 형성할 수는 없는 것이고, 결국 개인이 보다 공동체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기반을 사회와 국가가 만들어야 한다.


민주당계 정당의 강점은 교육, 복지, 문화 등 사회정책에 있어 왔다.


1인 가구의 확산과 공동체의 파편화, 저출생-고령화, 삶의 질 개선의 부진 등이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젠더/세대-연령/소득-재산 등 다양한 사회집단과 사회계층에 따라 나뉘는 국민의 생애과정별 돌봄이 중요해진 상황이다.


무상복지를 외칠 필요는 없지만, 공동체가 해체되지 않고 사람들이 자신의 실존적 문제에 주체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사회경제적 기반을 제공하는 돌보는 국가(Caring state)가 필요하다.


사회정책의 분야 간 유기적 연계가 더 중요해진 상황에서 이를 통합/조정하는 사회부총리의 능동적 역할은 이전보다 더 필요해졌다.


더구나 재정의 압박 속에 본래도 역할이 강했던 예산기관에 맞서려면 사회 부처들의 입장을 대표할 수 있는 사회부총리직은 있어야 한다.


한편 과학기술은 이제 경제성장을 위한 인프라에 지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사회와 경제를 체제 원리 수준에서 변동시킬 정도의 변수가 되어 있다.


과학기술의 사회적 통제가 더 중요해졌다는 의미이다.


과학기술 분야를 그간 대체로 정부는 경제정책, 산업정책의 하위 분야로 여겨 왔다.


이로 인하여 자연과학이나 인문사회 분야에게 충분한 여유와 학술 발전의 조건을 제공하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더 심화된 선진국(Advanced-Developed Country)의 조건은 정신 문화의 고도화와 이를 통한 '창조의 토양 제공'과 '안정적인 사회경제적 조건'의 양립에 있다.


결국 정책결정자들의 인식의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하며 기업가들이나 기술자들, 자연과학자들과 더 활발히 소통해 과학기술이 경제 논리 등에 과하게 종속되지도 그렇다고 과하게 윤리에서 일탈하지도 않도록 보다 세심하고 근원적으로 다루어야 한다.


하지만 과학기술부총리제의 신설이 과연 그러한 역할을 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현재 과학기술 분야 부처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인데 그 이외에는 마땅히 과학기술 분야로 볼 수 있는 부처가 없다.


농림축산식품부, 해양수산부, 중소벤처기업부, 산업통상자원부 등은 모두 공업이나 농수산업, 중소벤처기업, 에너지 등 산업 연관 분야들이다.


물론 과학기술과 연계가 되는 건 당연하나 결국에는 국가 주도 산업정책이라는 틀에서 크게 벗어난다고 보기도 어렵고 현실적으로 국가가 기획하는 시대도 아닌 마당에 과학기술부총리가 무엇을 얼마나 할 수 있을 것인가?


이재명 정부의 개편이 실현된다면 결국 경제부총리와 과학기술부총리만 존재하게 되는데, 공공정책이 더 철저하게 경제 논리만 중시해 돌아갈 가능성을 배제하기 힘들어졌고 사회적 가치의 증진이 어려워질 가능성이 상당하다.


이에 사회부총리제 폐지를 반대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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