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애를 한다'는 표현의 어폐 2

by 남재준

실은 이 논쟁은 문형배 전 헌법재판관이 동성애 등의 문제에 관하여 아직 생각 중이라는 취지로 말한 데에서 비롯되었다.

아마도 그에게 당사자성이 없고 장년 세대라 그런 것 같다는 것이 우리의 합의였는데, 그가 동성애를 '해본 적이 없다'라는 표현을 친구가 사용했다.

이 표현을 그는 '끌림과 무관하게 행위로서 연애 관계에 진입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전제에서 사용한 것이다.


내 친구는 무성애(Asexual)자라고 한다.

이것은 누구에게도 끌림을 느끼지 않음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겐 연애 경험이 있었는데 결국 잘 되지 않았다.

관심의 정도가 쌍방이 균일하거나 그렇지 않다 해도 상관없지 않다면 일방이 무성애인 경우 연애가 잘 되기 어려운 게 자연스러울지 모른다.

어쨌든 그는 동성애를 '한다'라는 표현이 무성애자가 유성애(Allosexual)의 관계를 가지고 있는 경우 성립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나는 지향성과 그에 수반되는 행위를 일체로 이해할 때만 그렇게 볼 수 있다고 하였다.

즉 무성애자가 유성애자처럼 연애 관계에 있다 해도 그것은 그냥 관계일 뿐 유성애를 한다고 표현할 수는 없고 관계에 수반되는 행위 역시 예컨대 동성애인 경우 동성 간 성행위를 한다고만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무성애자가 상대의 구애로 인해 성적 지향성이 바뀌지 않은 상태에서 (예컨대 노력이라도 해보려고) 객관적으로 연애 관계에 진입한다고 해도 그는 여전히 유성애자가 아니고(끌림이 없으니) 단지 유성애적 관계에 있을 뿐이다.

성적 지향성의 개념적 본질상 여전히 그것을 한다는 표현은 성립하기 어렵다는 것이 내 결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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