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이 만들어가는 나라는 사실상 민주당원인 국민이 헌법 위에 있고 그 위에 다시 이재명 대통령이 있는 나라와 다를 바 없다.
현 정권은 아니라고 의식적으로나 대외적으로나 부인하겠지만, 현재 흘러가는 상황을 보면 귀결이 그렇다.
이를 풀이하면 다음과 같다.
1. 당원이 주인인가, 국민이 주인인가?
일찍이 이재명 대통령은 민주당 대표 시절에 '참여민주주의 다음은 당원민주주의'라고 선언했다.
민주당은 이전의 대선 경선들과 달리 국민참여경선제를 축소해 버리고 당원 표심의 비중을 늘렸다.
그래 놓고는 대통령이 되고 나니 이번에는 국민주권을 역설한다.
민주당은 거대 정당으로서 현대 정치와 선거가 정당에 의해 좌우된다는 점을 감안할 때 민주당의 의사결정 특히 후보나 주요 선출직 당직을 고르는 문제에 있어 민심보다 당심이 우선한다는 것은 결국 당심이 민심의 위에 있다는 것이나 매한가지이다.
민주당은 당원이 수백 만이니 민심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실제로 지난 대선 직후 이재명 대통령 재판 계속 관련 여론조사에서 이재명 대통령에게 투표한 전체 유권자들의 여론은 민주당원들과는 달랐다.
민주당은 집권하고 난 후에는 국민주권을 말한다.
그러나 민의를 따르기 보다 자신들을 지지하는 당원들의 의지를 민의라고 참칭한다.
결국 공산당원인 국민이, 공산당이 국가보다 위에 있는 중국과 그렇게 다른 구조일까?
2. 유례 없는 제왕적 대통령
현 정권의 주요 인사들은 보수 정권의 권위적 통치를 비난했는데 사실상 현 정권은 과거 이명박-박근혜 정부보다 어떤 면에선 더 당정이 대통령 치하에 수직적으로 통합되어 있다.
'진보적 박정희'라는 형용모순의 표현을 원한 데 대한 귀결이 아닐 수 없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에도 물론 대통령의 의지가 중요했지만, 생각만큼 잘 되지는 않았다.
이명박 정부 때에는 친박이, 박근혜 정부 때에는 비박이 어느 정도 주류와 충돌했다.
하지만 이재명 정부의 압도적 다수 여당인 민주당 내부에는 사실상 이재명 대통령을 견제할 수 있는 사람이 전무하다.
여당이 다수인 적이 없지는 않더라도 여당 내부에 비주류까지 사실상 정치적으로 무의미해진 역학 구도는 민주화 이후 대한민국 정치사에 없었다.
비명계 정치인들은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이재명을 지지하지 않으면 안 되는 분위기인데, 나중에 이재명 정부가 추락할 때 이들도 함께 책임을 져야 헐 것이다.
3. 행정과 사법에 대한 비합리적 통제 시도
대개 민주당에서 내는 정책 구상들은 설익었거나 엄밀한 설계가 갖추어져 있지 못하다.
그런 고로 예컨대 사법개혁의 경우 법원과의 긴밀하고 심도 있는 협의가 필수적이다.
그러나 모든 것을 다 아는 민주당은 '사고가 깨어 있지 않은 기득권'과는 대화할 여지를 주면 안 되고 속도전으로 밀어 붙여야 한다고 본다.
속도전이 항상 정당화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속도전의 배후에 있는 인식과 의도에 있다.
정부 관료들이나 법조인들을 기득권으로만 보고 전문적 식견은 자신들의 입맛에 맞을 때에만 활용하려고 하는 것처럼 보인다.
사법부에 대해서는 아예 노골적으로 청문회로 대법원장에게 모욕을 주고, 검찰-사법 개혁은 형사와 사법 체계 운용의 엄밀한 합리성이라는 목표를 그다지 고려하고 있지 않아 보인다.
4. 정무와 정치의 비합리적 분리
본래 정무적 계산이나 정치공학이란 정책목표와 신념을 성취하기 위한 도구로서 유의미한 것이다.
그런데 정무적 계산은 오직 더 큰 권력의 획득과 망상적인 정체성 정치를 위해 쓰이고, 국민이 요구하고 국민에게 필요한 민생과 구조개혁의 문제는 뒷전이 되어 있다.
게다가 그 정무적 계산이 확실히 적들을 제압할 수 있는 것인가 하면 그렇지 않다.
어제와 오늘이, 오늘과 내일이 다른 민심이다.
어제는 윤석열 정부를 누르기 위해 민주당을 썼다면, 내일은 이재명 정부를 누르기 위해 국민의힘을 쓸 수 있다.
선거제도개혁을 어떻게 하건, 민주당이 절반이나 되는 거대한 국민을 계몽이 덜 된 존재로 생각하건 그렇지 않건, 결국 민심이 정치 구도를 결정한다.
이 정권은 민주주의를 강조하면서도 정작 민주적이지 않다.
입법부, 행정부, 사법부에 이르기까지 국가권력 전체를 진영 내 포퓰리즘으로 자기 수중에 넣으려고 하는 중이나 매한가지다.
처음에 보수 진영에 대해 가졌던 적대감은 내부에서 지속적으로 다른 의견을 낸 이들에게 향했고, 한 번이라도 다른 의견을 낸 이들에게도 향했으며 결국 이제는 한 번이라도 다른 의견을 '낸 것 같은' 이들에게까지 이르렀다.
이것이 어지럽지 아니한가?
Cf. 보론
1. 당내 논리와 국가 전체 논리는 다르다?
층위를 혼동하는 게 아니라 실제로 정당 내부 논리라는 것은 일반론일 뿐 거대 공당의 경우에는 성립하지 않는다.
현대 민주정치의 핵심인 선거에서 선거권자는 거대 정당의 후보를 뽑아야 사표가 되지 않게 되고 피선거권자가 정치인이 되길 원하면 거대 정당의 공천을 받아야 사실상 가능성이 있다. 그러한 정당의 영향력을 감안하면, 적어도 거대 공당의 경우에는 정당 의사결정은 당원이 한다는 상식이 반드시 옳다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따라서 층위를 혼동한 비판이 아니다. 현대정치에서 정당이 가지는 위상을 생각할 때, 당원 그것도 팬덤정치에 잠식된 당원이 거대 공당의 의사결정을 좌우하고 그들에 의해 결정된 후보를 택하거나 그렇지 않게 되거나 한다면 결국 당심이 민심 위에 있는 것과 같다. 그나마 다른 거대 정당이 있지만 민주당과 국민의힘이 지금 같은 논리를 취하고 있어서 무의미하다.
2. 이재명 대통령의 상황이 유례 없다 할 수 없다?
유례 없다. 전례를 하나씩 따져보면 :
1. 노태우 대통령 재임기는 극초에만 압도적 민정당 다수였고 바로 다음 해부터 여소야대, 그리고 삼당합당 후에는 내부에서 YS와 JP의 견제를 받았다.
2. 김영삼 대통령 재임기도 기본적으로는 민자당-신한국당 내부에 JP와 민정계가 있었고 재임 중 총선에서 신한국당은 사실상 패배했다.
3. 김대중 대통령의 여당인 새정치국민회의-새천년민주당은 재임 내내 소수여당이었다.
4. 노무현 대통령은 정치권 내 지지 기반이 애초부터 취약했고, 보스급 정치인도 아니었다. 열린우리당이 일시적으로 근소한 과반을 차지했지만 곧 무너졌고 대통령이 당정분리를 엄격히 했다.
5. 이명박 정부는 초기에 범보수가 압도적 과반을 차지했지만 내부적으로 박근혜라는 거대한 견제구가 상존했다.
6. 박근혜 정부는 내부에 힘은 약해도 비박이 있었고 비박이 된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와 갈등하기도 했다. 19대 국회에서 보수정당은 완벽하게 압도적 우위를 점하진 못했다.
7. 문재인 정부는 재임 중반까지 소수여당으로서 협치가 불가피했고, 압도적 다수 여당이 되었을 때에도 애초에 문재인 대통령이 적극적으로 당을 통제하는 식은 취하지 않았다.
8. 윤석열 대통령은 당을 강력하게 장악했지만 재임 내내 국민의힘은 압도적 소수였고 결국 이것을 극복하고자 계엄이라는 극단적 무리수를 두었다.
그러나 이재명 대통령의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현재 국회에서 압도적 다수이고 당내에도 이재명 대통령에게 저항하는 유의미한 세력은 전무하다. 그리고 이재명 대통령은 당대표를 2차례나 하면서 당에 대한 장악과 통제를 완벽하게 갖추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