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식적 자유보다 돌보는 사회가 더 중요하다

by 남재준

국민은 법조인이 아니다.

기본권으로 보장되었다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기본권으로 보장된 내용과 그것의 행사를 바탕으로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가가 사회적으로는 더 중요하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볼 때, 누구든 절박하게 말하고자 하는 바가 있지 않는 한 시간과 심리적 자원을 들여가며 시위를 하지는 않을 것이다.

오히려 시위라는 형식이 아니라 시위의 내용을 보아야 맞는 것이다.

이준석 의원의 논리는 과거에 집회-시위의 자유를 침해할 때 정권에서 흔히 쓴 논리이다.

그러나 그것은 경찰, 검찰과 법원에서나 할 법한 이야기고, 민의를 대의하고 입법하는 정치인들 나아가 위정자들은 그들의 목소리를 듣고 근본적으로 시위가 일어날 필요가 없도록 하는 조건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장애인 시위는 극우 시위와 똑같이 취급되어서는 안 된다.

극우 시위는 이념의 문제이지만 장애인 시위는 생존의 문제이다.

그들의 이동권이나 탈시설의 문제는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더불어 평안한 일상을 영위하고 인간존엄성을 보장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문제이다.

또한 장애인 복지 구조가 얼마나 처참한지와 비장애인도 언제든 장애인이 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시위의 불법성이라는 형식을 가지고 시위의 취지라는 내용을 덮으려 드는 것은 자유롭고 존엄한 정치사회에 부합하지 않는다.

이준석 의원은 정치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에 대해 매우 피상적인 접근을 취하는 경우들이 상당히 많다는 점에서 안 좋은 쪽으로 문제적이다.


[이준석 _ 어릴 적 반미 시위를 테러에 준하는 화끈한 방법으로 하던 사람들이 정부·여당의 수장이 되어서는 반중 시위를 하면 안 된다고 설파하는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입니다.

시위는 그 대상과 메시지가 무엇인가에 따라 판단되어야 하기보다는, 형식이 과격한가, 공공의 안녕을 해칠 정도인가에 따라 판단되어야 합니다.


반중 시위를 하다가 어릴 적 그들처럼 불을 지르거나 점거를 시도하려고 하면 제지해야 하지요. 그러나 그렇지 않다면 기본권은 보장되어야 합니다.


이준석의 삼류 철학이 아니라 헌법 제21조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저는 전장연의 메시지가 아니라 행태를 지적했던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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