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다240299 판결Memo. (추후 추가/수정)

by 남재준

지난 7월에 선고된 2023다240299 판결에서 대법원은 판례를 변경해 시효이익 포기(민법 제184조 제1항)의 '추정 법리'를 폐기하고 개별적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하도록 하였다.


이 소위 추정 법리란 '소멸시효 완성 후 채무승인을 한 경우 (채무자가) 시효의 완성을 알고도 그 이익을 포기한 것으로 추정한다'라는 것이다.


이는 1967년 66다2173 판결 이후 변경되지 않은 유구한 것이다.


이에 관하여 대법관들 간의 법리 대립이 있었는데, 결론이 같으나 추정 법리 폐기의 판례변경이 타당한 것인지에 관한 의견 대립이었다.


개인적으로 특기할 만하다 본 것은 다수의견에 대해 추정 법리 유지 취지로 낸 별개의견에서의 경제학적 연구 인용이다.


본래 다수의견에서 추정 법리 폐기의 논거 중 하나로 든 것이 '보통의' 채무자라면 자신의 법적 이익을 스스로 포기하고 굳이 불리한 법적 지위를 자청할 가능성이 크지 않다는 것이었다.


별개의견에서는 그러한 '합리적/경제적 인간'의 가정은 최근의 경제학적 연구와 실험에 의하여 인간의 '제한적 합리성'으로 전환되고 있음을 언급한다.


이에 기초해 볼 때, 채무자가 시효이익의 포기라는 비합리적 결정을 내리지 않을 것이라고 단정할 필요는 없고 자신의 빚을 언제든 갚겠다고 할 수 있는 것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시효이익의 사후적 포기가 우리 사회에서 이례적이라거나 경험칙에 어긋난다고 단정해서 말하기 어렵다고 하였다.


그런데 경험적 사실에서 규범적 당위로 넘어가는 데 무언가 좀 더 매개적 정당화가 있지 않으면 이런 논증이 타당한지에 의문이 제기된다.


왜냐하면 법은 사회규범의 하나이고, 규범이란 '일반인의 상식'을 가지고 접근하는데 비록 이례적이거나 경험칙에 어긋나 보이는 것을 반드시 배척할 필요는 없다 하더라도 반대로 그것을 전부 포괄하자고 들면 규범적 판단이 성립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더구나 근대 민법은 '합리적' 행위자들의 권리 본위의 법률관계를 전제로 하여 계약의 자유 등을 보장하고 있는데, '그럴 수도 있다'라는 주장을 받아들이게 되면 오히려 규범적 판단에 혼란이 생긴다.


채무자가 시효 완성을 인지하지 못했거나, 소멸시효가 완성된 채무의 변제라는 인지를 못했거나, 시효 완성을 인지하고도 도의상 변제했거나, 시효 완성을 인지하고도 장래의 신용을 위해 변제했거나 등의 다양한 이유가 있을 수 있다.


이것을 전부 포괄적으로 시효 이익의 포기로 보는 것이 타당한지 의문이 있다.


더구나 '추정(推定)'이라는 법적 개념은 법률관계 또는 사실이 명확하지 아니한 경우에 일반적으로 존재한다고 생각되는 상태를 표준으로 하여 일단 법률관계 또는 사실에 대한 판단을 내려서 법률효과를 발생시키는 것을 말하는데, 이 때문에 '경험칙'이 중요해진다.


왜냐하면 추정을 하게 되면 사실상 구체적 사정의 판단 없이 사실관계를 특정한 경우의 수로 확정하여 법률효과를 발생시키기 때문이다.


이는 구체적 사정들을 살펴 시효이익 포기 여부를 살피는 것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며, 또한 소멸시효 완성 전의 관념적 통지의 형태를 지니는 의사표시인 채무승인과도 차이가 있다고 보아야 한다.


경험칙상 자기에게 불리한 선택을 구태여 한다는 것은 금전거래 등을 내용으로 하는 민사상 법률관계에서 상정하기 어렵고 그렇다면 시효 완성 후 채무의 일부 변제를 사후 승인으로 보아 시효 이익의 포기로 추정하는 법리는 그 자체로 이미 개념상 문제와 경험칙상 문제로 인하여 추정 자체가 불성립하게 된다.


별개의견에서는 해당 사건의 원심에서 추정 법리를 적용할 때 여러 가지 사정들을 고려해야 하나 그러지 않았고, 만약 그리 한다면 결론이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 추정법리 폐기의 판례변경이 타당하지 않다는 이유 중 하나로 제시한다.


그러나 추정 법리는 그 자체로 이미 불성립하기 때문에 판례변경이 필요한 것이라는 점은 앞에서 언급하였다.


또 설령 해당 판결에서 그렇다고 하더라도 외형상 동일한 다른 사건들의 경우에도 추정 법리를 적용하는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의 결론이 달라질 수 있는데 개중에는 타당하지 않은 결론이 도출될 수도 있다.


따라서 이 사건에서 결론이 다르지 않다고 해서 판례변경이 타당하지 않다고 주장함은 납득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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