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외교안보가 이론적으로나 현실적으로나 큰 국내정치적 변수가 될 수 없다고 본다. (제일의 국내정치적 변수는 경제다.)
왜냐하면 어느 정도 방향이 정해져 있을 뿐만 아니라, 정책 레버만 가지고 되는 문제가 아닌 독자적 판단 주체인 상대가 있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대북 문제의 경우, 우리 정부가 현실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어느 정권이건 간에 북한에 대한 지속적 대화 요청일 수밖에 없다.
단지 좀 더 그것을 성의 있게 하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차이에 불과하다.
우리가 이제와서 군사적으로 북한을 어떻게 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비용이 뒤따르고 한반도를 기점으로 하는 세계대전이 개전될 수도 있기 때문에 절대로 불가하다.
(극단적인 가정을 해보자면, 차라리 이미 전쟁으로 모든 것이 파탄난 마당에 한국전쟁 때 북진통일을 하는 게 나았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이 좁은 땅 안에서 핵까지 보유한 북한을 '날려 버리는 건' 거대한 힘을 보유한 서구 선진국들이 머나먼 이역만리의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리비아 등의 레짐을 날려 버린 것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이다. 서구 국가들에게는 한반도 문제는 여전히 이역만리의 문제지만 우리나라에게는 이 좁은 국토 안에서 우리의 생명과 삶의 방식을 보존해 나갈 수 있느냐 하는 문제이다. 정권을 막론하고 반공이 국시이던 때에도 북한을 침공하자는 데에까지 가지 못했던 것은 이런 연유가 있다고 본다. 예컨대 군사독재 때를 생각해보면, 이제 막 경제가 크고 있고 겨우 정변으로 잡은 권력을 다지고 있는데 갑자기 전쟁이라는 도박을 할 이유가 뭐가 있겠는가?)
그렇다면 남는 것은 대화 뿐이다.
이는 '두 국가론'을 받아들인다손 쳐도 마찬가지이다.
체제가 다른 수준을 넘어서 실질적인 불량국가이면서 핵 보유국인데다 중국과 러시아의 신권위주의에 적극적으로 협력하는 북한을 머리 맡에 두고는 절대로 안보라는 것이 성립할 수 없다.
안보 전략의 근본은 손자가 말했듯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에 있다.
다른 무엇보다 북한의 존재 자체가 내내 우환이 될 것이기 때문에 언젠가는 통일로써 근본적으로 제거해야 한다.
역사적으로 볼 때 1,000년이 넘는 시간(분단이 100년이 가까워지더라도 역사 전체로 보면 그 10배 이상의 기간 동안 한반도에는 하나의 국가만이 존재했다) 동안 한반도에 두 국가가 있었던 것이 아니고, 오늘날에도 일정 부분 정서와 문화 요소 등을 남북한이 공유하고 있으므로 통일의 근거가 완전히 사리진 게 아니다.
게다가 헌법상 우리나라의 영토는 엄연히 한반도와 부속 도서이고 이는 국체에 관한 부분이어서 개헌으로는 고칠 수 없으며 헌법은 우리 정부와 국민에게 평화통일을 추진할 의무를 부여하였다.
양국방안은 양국이 어느 정도 체제나 상호관계 등에 있어 상호 존재에 대한 인정 등을 바탕으로 하는 '항구적 평화'가 보장된다는 전제에서만 고려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 이미 긴 세월의 분단은 둘째 문제고 남북한은 서로의 존재를 용인하지 못하고 있으며 서로가 존재하는 한 안심할 수 없다.
우리나라는 결코 북한을 국가로 인정할 수 없으며 그런 정부가 있다면 헌법이 부여한 사명을 위배하는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점잖은 척하며 말을 다소 두루뭉술하게 했는데, 결국 문재인 대통령과 크게 다를 바 없는 말이다.
완전한 비핵화가 안 되더라도 단계적 비핵화라도 여지가 있다면 추진하는 것이 타당하다, 신냉전의 격화 속에 우리나라는 균형적 위치를 점하는 것이 맞다, 북한을 자극하는 행위를 우리가 굳이 선제적으로 해서 스스로 안보 위협을 초래할 필요는 없다.
이게 요지이다.
맨 처음에 밝혔듯, 사실 북한 문제는 어느 정도 답이 정해져 있는 것인데 어느 정도로 유연하게 조건을 제시하느냐의 차이일 뿐일 것이다.
문제는 북한이 2018년의 경험 이후 개방 및 체제 유지 보장과 비핵화 트레이드 오프의 여지를 완전히 포기한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북한이 그렇게 나온다면, 이제까지 북한에 대해 제재가 계속 이어져 온 상황에서 우리나라가 북한에게 제공할 수 있는 긍정적인 인센티브건 부정적 인센티브건 마땅히 없기 때문에 더 무엇을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본다.
다만 국제사회 전체에서 한국의 위치를 균형자로 보겠다는 것은 점점 비정해져가는 국제사회의 현실을 볼 때 타당하지 않아 보인다.
미국과 중국이 라이벌이라 하더라도 예컨대 후진타오-오바마 체제와 같은 경우에는 그래도 균형자론을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양측이 강 대 강으로 체제 경쟁을 펼치고 있는 상황이다.
비록 구체적으로 바로 '우리는 미국 편이다'라고 선언하기는 어렵다 하더라도, 중국의 압력을 무조건 수용만 하는 것도 더는 용납해서는 안 된다.
이재명 대통령도 일전에 방일-방미 후에 이와 비슷한 입장을 표한 적이 있는데, 이번에는 또 묘하게 다른 말을 한다.
뭐가 뭔지 모르겠다.
하긴, 애초에 위엄과 알맹이가 있는 척하려고 애쓰지만 실제로는 내용이 없는 대통령이니까.
*보론) 우리나라는 모든 정책 영역이 그렇듯, 특정 외국과 외국민에 대한 '정서'와 외교안보를 과도하게 연결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양자는 분리되어야 한다. 중국이 싫고 좋고는 외교안보정책에서 고려 요소가 되지 못한다. 이는 혐중이건 그렇지 않건 매한가지다. 중국에 대적해야 한다는 주장과 중국에 대한 과도한 편견을 버리자는 듯한(그러나 실질적으로는 부당하게 위압적인 중국에 약(弱)한 대응만 존재하는) 입장 모두가 문제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