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래 알고 지낸 지인은 자기 이야기를 하는 것을 부끄러워 하는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어느 날 자신의 이야기를 했다. 나는 조금 놀랐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별말이 없던 그가 그를 알게 된 후로 가장 많은 말을 했으므로. 그의 지옥은 매우 평범하게 생겼다. 다른 어떤 이들과 마찬가지로, 그는 생지옥인 가정환경을 지니고 있었으며 쫓고 쫓기며 살아왔다. 그렇게 살 때의 그는 어느 순간 자신이 붕괴할 것이 무서웠다고 했다. 그래서 어떻게든 지푸라기라도 붙잡으려고 애썼지만 그것마저도 실은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 끊어지는 썩은 동앗줄이었다고 말했다. 재미있는 것은 정작 붕괴하고 나니 무서울 정도로 아무렇지도 않아 하는 자신이라고 했다. 이대로 안주하는 게 아닐까 생각할 정도로 그저 그런 자신 말이다. 너무 많은 것을 느끼고 생각하다 보면 어느 순간부터는 아무것도 느끼고 생각하지 못하게 되는 것 같은데 그런 데 이른 것 같다고 그는 내게 말했다. 인생이 노도 잃고 닻도 끊고 키도 빠진 배가 되었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잃고, 끊고, 빠지기 전에는 배가 어디로 흘러갈까 두려워 했으면서도 정작 그리 되고 표류하니 도리어 아무 생각이 없어졌다는 것이다. 될대로 되라지. 하는 생각인 것이다. 거기엔 만성이 된 냉소와 피로가 함께 하고 있었다. 그것이 어떤 느낌일지 나로서는 가늠할 길이 없었다. 그는 한동안 창 밖 하늘을 멍하니 보더니, 하늘도 주위의 꽃도 좀 보고 살라는 말을 들었어도 그저 빠르게 걷느라 그러지도 못했다 했다. 그렇다고 자신이 무조건 쉴 새 없이 앞만 보고 달려오지도 못했노라고 그는 씁쓸하게 웃었다. 하지만 지금도 그는 하늘과 주위의 꽃을 보지 못하고 그저 걷는 것이 습관이 되어버린 사람이었다. .. 그의 지옥은 참으로 평범했다. 그의 고교 시절에는 학교 앞편에 쓰임새를 잃은 듯한 황량한 밭 같은 것이 있었다. 학교는 언덕 윗편에 있었기에 그 땅을 내려다보는 듯한 모양새가 되었다. 그는 홀로 그것을 자주 응시했었다고 말했다. 이제 어떻게 흘러갈 것인가, 가끔 그런 우울한 자문을 하면서. 그 후 상당한 세월이 지나 그때의 안개를 걷어내고 나니 그에겐 여느 사람처럼 영도 있고 욕도 있었다. 지금 그의 배는 목적지를 잃었다. 태풍이나 해일을 만나 고생하더라도 목적지를 향해 가는 배들과 달리 말이다. 배를 처분하고 싶지만 바다 한가운데에선 그럴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죽음과 은퇴 사이엔 중요한 차이가 있었다. 번복이 불가능하다는 것이 말이다. 하지만 그대로만 있기에는 이렇듯 소리없이 죽은 듯 살아가는 자신의 어딘가 한구석이 스스로를 견딜 수 없게 했다. 그는 더이상 내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나도 그에게 건넬 말이 없었다. 우리는 이제 30년을 가까이 알아 온 사이였음에도 그랬다. 나 역시 자기 자신을 무력하게 방치하는 그를 방치할 수밖에는, 그가 공유한 거대한 파고를 감당할 수 없었다. 나는 그의 노도 잃고 닻도 끊고 키도 빠진 배에 승선해 있었다. 그 망망대해 위에서, 나는 푸른 하늘과 파란 바다의 접선을 그저 한없이 보았다. 이 대양이 어디인지조차 알 수 없게 시린 바다 뿐이었다. 그 청량한 지옥에 그와 나는 함께 있었다.
https://youtu.be/yVnCRhME2hg?si=V8D9EVf4VPZgm8IZ