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바름Correctness? 실존Existence!

극우 정권의 성소수자 인권 침해 규탄

by 남재준

이탈리아의 조르자 멜로니(Giorgia Meloni) 정부는 연구 대상으로 주목할만하다.


왜냐하면 주요 선진국 중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에 이어 극우 성향으로 분류되는 정권인 몇 안 되는 경우이기 때문이다.


보통 현대의 극우 성향 정권은 내셔널리즘에 기반한 이민과 난민에 대한 강한 통제 외에는 다른 분야에선 정책적으로 그렇게 일관된 편이 아니다.


다른 중요한 특징은 소수자에 대한 탄압이다.


특히 학교에서의 성소수자 교육 및 지원에 대한 규제 입법을 추진한다는 점이 강한 반발을 사고 있다.


이것은 ‘정상적인 가족윤리’의 회복을 도모한다는 측면의 접근이 아닌가 싶다.


1980년대에 영국의 대처 내각의 ‘Section 28’(지방정부 차원에서의 동성애에 대한 '긍정적' 교육을 규제하는 입법. 2009년 데이비드 캐머런 보수당 대표가 이에 대해 사과했다.)도 동일한 취지를 담고 있었다.


전형적인 우파 진영의 저열하고 무지한 성소수자에 대한 시각이다.


성소수자에 대한 무식에서 비롯되는 잘못된 전제에서 잘못된 정책이 나온 것이다.


성적 정체성(e.g. 여성)과 성적 지향성(e.g. 이성애)은 서로 구분되며, 무엇보다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따라서 성적 정체성과 지향성은 스스로 가지거나 버리기를 선택할 수 없으며, 또한 그것들을 가지거나 버릴 수 있다거나 가지거나 버리도록 세뇌하는 것은 심각한 인권 침해이다.


이는 어떤 성적 정체성이나 지향성이건 마찬가지이다.


기본적으로 종래의 젠더와 섹슈얼리티에 대한 규범과 주류문화는 생물학적 성(sex)=사회적 성(gender)인 시스젠더(Cisgender)와 이성애인 헤테로섹슈얼리티(Heterosexuality)로 되어 있고 자연스럽게 그에 따라 사회화되게 되어 있다.


따라서 성소수자 교육은 ‘간혹 당신은 그와 다른 정체성이나 지향성을 가진 이들을 보게 되거나 스스로 그러한 정체성이나 지향성을 가질 수 있을 것이며, 그것은 문제나 이상하게 생각할 것이 아니다.’라는 점만을 가르치는 것이 전부이다.


그나마도 이것은 대개 대부분의 국가에서 강력한 사회문화적 보수주의와 종교적 우파의 영향으로 애초에 정규 교육과정에서는 매우 제한적으로만 다루어지거나(e.g. 그렇게 차별받는 사람들이 있다는 점을 언급하는 정도), 또는 아예 언급하지 않는다.


이탈리아에서도 성소수자 관련 내용이 포함된 시민교육이 제도화되긴 했으나 관련 내용에 대해서는 학교별로 자율 선택이 가능한 것이었다.


사실 학부모가 교육 내용까지 간섭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교육적 차원에서도 매우 부적절하다.


부모나 가정이 자녀 교육에서 절대적 영향력을 행사해야 한다는 발상 자체가 그릇된 것이다.


왜냐하면 부모 본인이 완벽한 교육자일 수 없기 때문이다.


학교와 가정이 균형적으로 교육과 사회화를 담당해야지, 그러지 않으면 자칫 부적절한 세뇌가 이루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교육에서 중요한 것은 아동과 청소년이 주체적으로 자아를 성찰하고 발전시킬 수 있도록 선택의 기회를 제공하는 데에 있다고 본다.


이미 학교별로 교육의 방향이나 내용이 미세하게 다르고 부모가 이를 선택할 여지가 있는 상황에서 나아가 학교 교육 내용까지 부모가 컨트롤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은 문제 소지가 많다.


그럼에도 멜로니 정부에서 이와 같은 인권 침해의 조치를 취한 것은 매우 심각한 일이며, 젠더를 섹스(생물학적 성)와 구분하지 않고 말한 도널드 트럼프와 유사한 경우라 할 수 있겠다.


이러한 일련의 백래시(Backlash)에 대해 지적할만한 점은, 이는 ‘올바름(Correctness)’이 아니라 ‘실존(Existence)’의 문제라는 것이다.


시스젠더이자 헤테로섹슈얼인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자신들이 성소수자를 수용하거나 거부하는 것이 단지 불편함을 감수하거나 그렇지 않음의 문제일 뿐이겠지만, 당사자들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존재의 중요한 일부분이 사회적으로 용인되느냐 그렇지 않으냐의 문제인 것이다.


이런 점에서 성소수자 인권에 대해 거부하는 도덕윤리적 독트린을 쉽게 설파하는 것은 매우 가소로운 일이며 용납되기 어렵다.


본인들은 대단한 신념이고 도덕인 것처럼 말하지만, 당사자들에게는 도덕이나 신념에 불과한 문제가 아닌 존재에 대한 인정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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