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운동권 중심 대학 문화에 동의하지 않지만, 운동권을 아예 '특정 정치 이념 강요'라는 식으로 몰아붙이는 것 또한 동의하지 않는다.
대학 문화의 일부로서, 운동권은 토론과 성찰 문화 활성화의 촉매로서 기능할 필요가 있다.
건전한 논쟁은 운동권에 동의하건 그렇지 않건 서로에 대한 이해와 자신의 논리 강화 나아가 상호작용을 통한 학습과 발전에 기여한다.
그러지 않는다면 그저 감정적 말싸움, 배설에 불과하게 되며 대개의 경우 그렇게 귀결된다.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 학부 시절 내가 대학의 학생자치에 잠깐 참여하게 되면서 본 장면들은 오늘날 한국정치의 코드가 되어 있었다.
적어도 몇몇 MZ들은 본인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자유주의적'이지 않다는 것도 확인할 수 있었다.
우리 학교 성평등위원회 폐지 과정은 과거 보수 정권이 사회운동을 탄압하던 과정과 유사했다.
'일부 과격분자들만 통제하자는 것이지 전체의 취지에 동감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이 주장은 이론적으로만 가능한 것이고, 실제 결과는 십중팔구는 전체 운동이나 담론을 포괄적으로 억압하는 결과로 귀결된다.
그 논리를 그나마 온건파들이 폈고, 강경파들은 전체의 취지에 동감하지 않는 것을 넘어서 이해 자체를 하지 못했다.
방금 분명히 표현했는데, '동감'과 '이해'를 구분해서 썼다.
이해는 '지피지기면 백전백승'과 같이 '적을 알고' 나를 알아서 전쟁에서도 이길 수 있다는 것이다.
페미니즘은 매우 오랜 역사를 가진 철학적, 사회학적 사상이며 나아가 여성학의 기반 사상이기도 하다.
또한 페미니즘이 한국사회와 대학 내 젠더문화 등을 얼마나 설명할 수 있고 얼마나 필요한지 역시 논쟁이 필요하다.
하지만 대체로 학생회와 성평위 간의 감정 싸움, 학내 운동권들의 다소 미숙한 현실 감각(사실 이건 운동의 취지나 바이브상 태생적으로 별 수 없는 부분도 컸다), 다수 학생들의 사실상의 무지(아예 알고자 생각 자체를 하지 않는)가 기반이었다.
나는 인사와 활동이 문제라면 그런 부분들을 수정할 수 있는 데까지는 한 연후에 폐지를 논해도 늦지 않다고 의견을 밝혔다.
토론은커녕 폐지 반대론자들만 발언하고 다수가 일방적으로 폐지안을 가결해 버렸다.
오늘날의 정치문화, 행태와 기시감이 크게 들지 않는가?
이 사람들이 후에 사회경제 지도층이 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는데, 오래 갈 필요도 없이 당장 몇 년 후 윤석열-이재명 주도 포퓰리즘의 개막과 더불어 '과잉감정-다수압박' 등으로 표상되는 시대가 열렸다.
기본적으로 표현의 자유와 소수에 대한 존중, 절차적 민주성, 담론의 논리적 타당성과 대안 중심성 등은 어느 공동체에서나 꼭 필요한 원리들이다.
이 모든 것들이 내가 본 학생자치에서는 완전히 무너져 있었고 사실상 무지성적 다수주의에 가까웠으며 나아가 한국정치도 세대 교체도 되기 전에 벌써 이러한 문화가 되었다.
비단 성평위 폐지 때만이 아니라 활동했던 학부 학생회 내부에서도 공개적 대화와 토론보다는 뒷담화 및 린치와 개인에 대한 감정에 근거한 시비 걸기가 성행했다.
새로 학생회에서 설치한 감사기구에도 잠깐 참여했었는데, 회칙에 대해 대놓고 '그건 문구일 뿐이고 활발하게 활동하라'는 식으로 말했다.
그 기구는 학생처에서도 사실상 인정하지 않았고 의대 등은 자체 회계감사를 받고 있어서 거부감도 컸다.
현실적으로 이 기구는 진보 성향 교지를 압박하기 위한 정치적 의도가 강했다.
그럼에도 학생자치 회계 투명성을 위해 민주적으로 운영될 여지는 있었다고 생각했으나, 정치적 감각이 심하게 떨어졌다.
대화와 소통을 통해 투명성 컴플라이언스 제고에 초점을 두어야 할 활동이 존재하지 않는 회칙의 권위에 기초해 무슨 대단한 권력기구인 것처럼 굴었다.
결국 더는 참지 못하고 나는 입장문을 내고 사퇴해 버렸고 1-2년쯤 뒤 사실상 그 기구는 식물기구로 전락해 있었다.
이런 경험들은 근본적으로 인간에 대한 회의감을 커지게 했다.
사람들은 대화와 소통을 통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들도 구태여 감정을 섞어가며 독재적이거나 침묵하는 무지성적 다수의 힘에 의해 밀어붙이거나 타협하지 않고 투쟁만을 내세운다.
대학교라는 작은 사회와 대한민국이라는 전체 사회가 그렇게 다르지 않음을 나는 실감했다.